Jacques Mattheij의 글을 축약 번역했습니다.
4대 1로 알파고는 이세돌에게 승리했다. 이 대결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 에너지 효율성의 측면에서 말이다.
거칠게 계산했을 때, (알파고가 승리하기는 했지만) 비슷한 수준의 대결을 하기 위해 이세돌이 쓴 에너지는 대략 20 와트 정도다. 반면 알파고는 1920개의 CPU와 280개의 GPU를 사용했고, 이 때의 에너지 소비는 1 메가와트 정도가 된다. 즉,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이세돌은 알파고보다 5만배 정도 더 효율적이다.
시간을 조금 돌려, 1996년 컴퓨터와 인간의 체스 대결을 보자. IBM의 딥블루와 가리 카스파로프의 대결이다. 당시 딥블루는 인간을 상대로 승리했지만, 30대의 컴퓨터를 사용해 경우의 수를 계산했고, 컴퓨터의 프로세서를 돌리는 데에만 900 와트의 에너지를 사용했다.
그랬던 것이 2009년에 “포켓 프리츠”라는 모바일용 체스 프로그램이 나왔고, 이 프로그램은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 효율성으로 사람을 이길 수 있게 됐다. 사족이지만, 작년 4월 한 체스 선수가 이런 점을 악용해 경기 도중 화장실에 가서 스마트폰으로 컨닝을 하다가 걸리는 일이 있었다.
체스의 경우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 효율성을 달성하는데 13년이 걸렸다.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지금은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이면 지구 상 거의 모든 인간에게 체스로 승리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렇다면 과연 알파고는 인간의 에너지 효율성을 따라잡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스마트폰 하나로 체스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 건, 더 효율적인 알고리즘과 무어의 법칙 덕분이었다. 알파고도 알고리즘이 점점 더 효율적으로 변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반면, 현재 무어의 법칙은 끝이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무어의 법칙이 끝나가는 게, 컴퓨터 발전의 끝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전력 효율성을 극대화한 프로세서, 특정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프로세서 등등 컴퓨터의 발전은 무어의 법칙에서 벗어나 하나의 목적을 위해 디자인된 컴퓨터를 지향하며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후, 주머니 속 알파고를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승리한 것은 AI의 승리가 아닌 인류 역사의 승리였다 — 그래서 딥마인드 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첫 승리를 인류가 달에 착륙한 것에 비유했다. 후일, 알파고가 이세돌과 비슷한 에너지 효율을 보여준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또 다른 인류 역사의 승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