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재명 시장님. 저는 한심한 대학생입니다. 오늘 18일 오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기셨죠.
“들은 바로, 상당수 대학생들이 이번 선거일에 MT를 간다고 한다. 대학은 우리 사회 최고 교육기관이고, 대학생들은 최고 지성집단으로 불린다. 그런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구성원이자 미래를 짊어질 대학생들이 선거일에 MT라니..”
더불어 이런 말도 남기셨더군요.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에 관심도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정치가 자신을 배려해주길 바라는가? 청년의 정치무관심이 오늘날 청년문제가 심각해진 원인의 하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같은 대학생인 제가 봐도 참 한심하지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일에 MT를 간다니. 그것도 상당수 대학생들이 그렇다니요. 한국의 미래, 민주주의가 참으로 암담합니다. 그렇습니다. 시장님 말씀대로 이 청년 문제는, 투표 날에 MT나 가는 무관심한 청년들 탓인 게 분명합니다.
MT는 누가 가나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제 주변의 그 누구도 총선일에 MT를 가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그렇습니다. 4월 13일은, 그 상당수 대학생들이 리포트를 쓰고 있거나, 시험공부에 파묻혀 있거나, 조별과제를 준비할 시기거든요. 보통 중간고사는 4월 20일쯤에 치러집니다.
게다가 평일에 MT를 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학기 중이니까요. 수업을 들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대부분 MT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갑니다. 수요일이 ‘휴일’이기 때문에 화요일에 간다 해도, 돌아와서도 투표를 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대체 시장님께서 그런 말씀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마법 대학교에 다니는 이들이 투명망토를 쓰고 투명엠티라도 가는 걸까요. 저는 시장님이 왜 투명 MT를 거론하며 청년들을 비난하려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20대는 죄인이 아닙니다
아니, 사실 너무나 잘 이해가 갑니다. 얼마 전 소셜 네트워크에는 이런 글이 떠돌았죠. 프랑스 대학생들의 투표율은 80%에 가까운데,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투표율은 고작 37%에 불과하다. 투표를 해라. 너희들의 등록금이 비싼 이유는 너희들이 투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투표를 한다면 총선 후보들이 대학교 앞에 가서 유세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없었습니다. 대학생들의 투표율을 따로 집계하지도 않을뿐더러, 지난 대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은 오히려 큰 상승 폭을 기록했으니까요. 그런데도 등록금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팍팍한 경제 탓에 등록금 부담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투표를 많이 한다고 대학교 앞에서 유세를 할 리도 없습니다. 대학교에는 그 지역에 사는 학생들만 다니는 게 아니니까요.
“20대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다. 20대가 투표해야 세상이 바뀐다.”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을 하기 위해 차별적인, 어쩌면 혐오적인 수사를 동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20대는, 대학생은 죄인이 아닙니다.
MT를 간다고 해도
설령, 그날 정말 MT를 가기로 했다고 해도, 그들에게만 책임을 모두 묻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왜 선거를 하지 않고 MT를 가려 했을까요. 정치가 무엇도 바꾸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누구를 뽑든 그놈이 그놈이고, 내 삶에 악영향만 끼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20대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이 과연 청년들의 탓일까요. 청년들에게 아무 변화도 보여주지 못한 채, ‘야당의 힘듦’과 ‘소수정당의 어려움’만을 토로하던 기성 정치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지, 저는 궁금합니다.
그런 청년들을 투표장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시장님이 오늘 그러셨던 것처럼, 청년들을 근엄하게 꾸짖는 것일까요. 아니면 계속 시정을 통해 보여주셨던 것처럼, 누구를 뽑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투표가 전부는 아닙니다
저는 또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과연 20대가 많이 투표를 한다고, 세상이 달라질까요. 그렇다면 20대가 과연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 투표한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20대가 진보적이라는 것도 그저 편견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시장님께 근엄한 꾸짖음을 받은 20대들이 새누리당에 투표한다면요? 어디에 투표를 한다고 천지개벽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투표율이 오르면 등록금이 떨어질 거라는 말. 한국장학재단과 국가장학금 제도가 그나마 등록금 부담을 덜어준 것은 투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청년이 거리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2011년, 많은 대학생이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했고, 그 결과 약간이나마 그 무게를 덜 수 있었던 겁니다.
투표,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투표가 민주주의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투표하지 않는 청년들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양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20대가 투표하지 않는다고 탓하기 전에 20대가 정말 투표하지 않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20대가 정말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왜 투표를 하지 않는지를 생각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한심한 대학생으로부터, 이재명 성남시장님께.
원문: lupinnut.kr
※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