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레이트의 「Everything Is Crumbling」를 번역한 글입니다.
20년 전,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부부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다이앤 타이스는 자제력에 관한 기념비적인 실험을 생각해냈습니다.
연구실의 작은 오븐에는 초콜릿 칩 쿠키가 구워지고 있었고, 실험실에는 초콜릿과 빵 내음이 가득했습니다.
3,000번이 넘게 인용된 논문의 한 문장입니다. 심리학 실험의 역사에서 이보다 초콜릿이 더 중요했던 적은 없습니다.
실험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바우마이스터와 타이스는 학생 자원자들 앞의 테이블 위, 한쪽 접시에는 갓 구운 초콜릿 쿠키를 두었고 다른 접시에는 무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대기하는 동안 한 그룹에는 무만 먹을 것을, 그리고 다른 그룹에는 초콜릿 쿠키만 먹을 것을 지시했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이들은 각각 풀 수 없는 퍼즐을 풀도록 지시받았습니다.
바우마이스트와 타이스는 학생들이 이 퍼즐을 얼마나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지를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초콜릿 쿠키를 먹은 이들이 아무것도 먹지 않은 이들과 비슷한 시간인 평균 19분 동안 퍼즐을 푼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반면 무만 먹은 이들은 훨씬 빨리 퍼즐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겨우 8분 동안만 퍼즐을 시도했습니다.
저자들은 이 효과를 “자아의 고갈(ego depletion)”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현상이 인간 정신의 근본적인 특성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의지력은 한정돼 있으며, 그 양은 의지력을 씀에 따라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초콜릿 쿠키를 눈앞에 두고 무만을 먹는 것은 극도의 자제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바우마이스터와 타이스는 의지력이 정신의 에너지를 소모하며, 또한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생각이지만, 이 가설은 심리학 분야에서는 매우 혁명적으로 보였고, 수많은 후속연구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 후 수년 동안 바우마이스터와 타이스의 연구실, 그리고 다른 여남은 이들은 위의 실험과 유사한 수십 건의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먼저 연구자는 참가자들에게 초콜릿 쿠키를 먹지 못하게 하거나 슬픈 영화를 보면서 반응을 참게 하는 등 참가자의 자제력을 요구하는 과제를 주어 의지력을 고갈시킵니다. 그리고 몇 분 뒤, 이들은 퍼즐이나 게임, 혹은 다른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한 일을 시켰습니다.
의지력이 고갈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빼앗고 의지력을 줄이는 수많은 과제를 발견했습니다. 인도 시골 지역의 극도로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비누를 살지 말지 결정하는 문제만으로도 의지력이 줄어든다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개들도 음식을 먹지 못하게 했을 때 의지력이 감소했습니다. 백인들이 흑인 과학자와 인종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경우 정신적 에너지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2010년, 마틴 해거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분야에서 발표된 연구들을 모아 이 분야가 진정 의미 있는 분야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메타분석을 실시했습니다. 83건의 연구에서 소개된 198건의 독립된 실험을 종합한 결과, 이들은 “의지력의 고갈”이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11년 바우마이스터와 뉴욕타임스의 존 티어니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과학에 기반을 둔 자기계발서적을 출간했습니다. 의지력의 고갈 현상을 어떻게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인 『의지력의 재발견』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설탕으로 당도를 높인 한 잔의 레모네이드만으로도 한 사람의 자제력이 상승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의지력은 근육과 같아서 일상에서의 훈련을 통해 이를 신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우마이스터는 자신에게 12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한, 종교적으로 편향된 과학연구 지원단체인 템플턴 재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인간은 실제로 자신의 인격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틀란틱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1990년대 시작한 이 분야가 증명된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연구실에서 같은 결과가 재현되었습니다. 나는 이 효과가 실재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다음 달 《심리과학 전망(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지에 실릴 한 논문은 이 분야의 여러 효과를 재현하는 데 필요했던 수많은 노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러 대륙에 걸쳐 스무 군데가 넘는 실험실에서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이 효과를 재현하려 했지만, 이들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곧, 자아력이 고갈된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심리학 분야에서 이런 일이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이런 현상을 ‘재현성 위기(reproducibility crisis)’라 부르며, 다른 분야에서도 이는 흔한 일입니다. 지난 여름 발표된 한 연구는 심리학 실험 100건 가운데 단 40%만이 성공적으로 재현되었음을 보고했습니다. 이 연구에 대한 비판이 지난주 《네이처》에 소개되었지만, 이 비판 또한 희망적 사고로 가득 차 있고 증거를 무시했다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과학자와 과학 언론인들에게 이러한 혼란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연구논문이 심사를 통과해 학술지에 실렸다면, 적어도 그 결과가 진실일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아의 고갈에 관한 새 연구는 이보다 더 큰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그 연구는 이 분야의 어느 실험 하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한 분야 전체, 곧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기본 아이디어 자체가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의지력 이론을 검증하다
바우마이스터의 의지력 이론과 그의 기발한 실험 방법은 수많은 실험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수백 가지 다른 방법으로 그 효과는 재현되었고 메타 연구 역시 이를 확증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우연한 실험 데이터에서 등장한 황당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단단한 벽돌들 위에 수년 간 쌓아 올린 견고한 건축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이 자아의 고갈이라는 아이디어는 모래 위에 새겨진 헛소리처럼 보입니다. 이는 이 몇몇 과학자들의 경력의 상당수를 포함한 이 분야 전체의 연구가 잘못된 가설 위에 서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확실해 보였던 학설이 송두리째 무너진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에반 카터는 “자아의 고갈” 이론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연구자 중 한 명입니다. 마이애미 대학의 대학원생이던 그는 2007년 처음 알려진, 당분이 든 음료가 의지력을 보충해준다는 레모네이드 효과를 재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모을 수 있는 만큼 많은 참가자를 모았고, 결국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 실험 능력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지요.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카터는 83개의 연구에서 198개의 실험을 수집해 분석했던 2010년의 메타-분석 연구를 조사했습니다. 그 논문을 자세히 살펴볼수록 그는 점점 더 이 연구의 결론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선 그 연구는 학술지에 실린 연구만을 다루었으며, 이는 그 연구들이 이론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편향돼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각 연구는 자제력에 대해 상반되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는 의지력이 떨어진 참가자들이 더 많은 돈을 기부했다고 가정했지만, 다른 연구에서는 의지력이 떨어진 이들은 낯선 이를 잘 돕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카터와 그의 지도교수였던 마이클 맥클러는 2010년 논문에 실린 데이터들을 최신 통계기법을 이용해 재분석했고, 결국 ‘의지력의 고갈’ 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카터와 맥클러가 지난해 출간한 두 번째 메타-분석 연구는 논문지에 실리지 못한 48개의 실험결과를 더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도 그들은 ‘의지력의 고갈’ 효과에 대해 “거의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카터는 이제 서른한 살이지만 아직 대학에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방향을 잃었죠. 평소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자, 이를 지지하는 연구 결과만 100개가 넘어. 그러니 안심해도 돼. 이건 확실한 거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거죠.
모든 이가 카터와 맥클러의 주장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사용한 통계적 방법은 상당히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못했습니다. 이 분야의 몇몇 저명한 연구자들은 그들이 섣불리 결론을 내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주장 중에는 다른 문제점을 가진 것들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레모네이드 효과는 사실 그 자체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입니다. 한 잔의 레모네이드에 담긴 당분은 그렇게 빨리 뇌로 전달될 수 없으며, 또 어떤 차이를 만들 만큼 많은 양도 아닙니다. 게다가 한 연구는 그저 사람들에게 레모네이드로 입가심만 한 후 뱉어내도록 했을 때도 의지력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의 믿음이나 마음가짐이 의지력의 고갈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비판들이 원래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정도로 치명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의지력은 제한된 자원이지만, 단지 자신이 가진 동기의 영향을 받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 소비도 그런 것이지요. 한 사람의 소비 습관은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돈을 가지고 있는가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도 영향을 받습니다. 어쨌든 위의 메타-분석 연구와 관련된 논란과 함께, 의지력의 본질에 대한 이 모든 질문은 이 분야 자체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다른 실험
2014년 10월, 미국 심리과학회(Association for Psychological Science)는 이 문제의 해결을 공언했습니다. APS는 중요한 연구 아이디어를 검증할 수 있는 하나의 실험을 여러 다른 실험실에서 수행하도록 하는 “등록 재연 보고서(Registered Replication Report)”를 제안했습니다. 2010년 메타-분석 연구의 저자인 마틴 해거가 주 저자를 맡았으며 로이 바우마이스터가 실험방법을 도왔습니다.
이 재연 팀은 먼저 구체적인 실험방법을 정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100여 개의 자아 고갈 연구 중 어떤 연구를 재연해야 할까요? 바우마이스터는 자신이 선호하는 몇 가지 실험을 제시했지만, 그 가운데 상당수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재연 실험은 서로 다른 환경의 연구실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초콜렛 칩 쿠키 실험은 동일한 반복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연구실에서 쿠키를 태워버린다면, 그 실험은 다른 실험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바우마이스터의 조언에 따라, 해거의 팀은 2014년 발표된 미시건 대학의 연구를 재연하기로 했습니다. 이 연구는 표준적인 자제력 과제를 사용했습니다. 곧, 참가자들은 화면에 떠오르는 간단한 단어들을 봅니다. 그 단어들에는 level, trouble, plastic, business 등이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그 단어에 e가 존재할 경우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단, e 앞 두 글자와 뒤 두 글자에 다른 모음이 없어야 합니다. 즉, trouble을 보고 나서는 버튼을 눌러야 하지만 level이나 business를 본 뒤에는 버튼을 눌러서는 안 됩니다. 미시건 대학의 연구에서 이 과제는 자제력을 심각하게 고갈시켰습니다. 이 과제를 먼저 수행한 이들은 그다음 과제에서 성적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24곳의 다른 연구실에서 이 실험을 재연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인도네시아에서는 그 나라 언어에 맞게 과제가 조금 변형되었습니다. 실험이 이루어진 24곳 중 단 두 곳에서만 유의미한 효과가 발견되었습니다. (심지어 한 곳에서는 자제력이 상승하는 역효과가 관찰되었습니다.) 모든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이 실험에서는 바우마이스터와 타이스가 주장했던 효과는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위의 e 단어 과제는 참가자의 의지력을 감소시키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또는 두 번째 과제가 의지력의 고갈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 바우마이스터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이 실험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는 호주에서 수화기 너머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아의 고갈이 실재한다고 믿습니다. 이 실험은 실패했지만, 개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우마이스터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이번 재연 실험의 결과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곧, ‘글자 e’과제가 연구마다 다르게 수행되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은 이렇게 실험을 진행했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참가자들에게 e가 포함된 모든 글자를 고르도록 하여 이를 습관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다음 그는 두 번째 규칙, 곧 앞뒤로 두 글자 안에 모음이 없는 e에 대해서만 그 단어를 선택하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많은 자제력을 사용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컴퓨터가 아닌 종이와 연필을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경우 팔을 크게 움직여야 하므로 그저 키보드를 클릭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제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바우마이스터는 이번 재연에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로, 심리학 분야에서 컴퓨터가 과도하게 사용되는 것을 꼽았습니다. “과거에는 실험을 진행하는 어떤 기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직접 상대해야 했고, 그들을 원하는 심리적 상태로 만든 후 그 결과를 측정해야 했지요. 요즘 사람들은 모든 실험이 온라인을 통해 자동으로 되었으면 하는 것 같아요.” 그는 갈수록 이 행동 과학 분야에서 실제 행동을 보는 경우가 적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지문을 읽게 할 뿐입니다.”
‘빅 아이디어’의 맹점
나는 이번 재연 실험의 실패에 바우마이스터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편입니다. 그의 말대로, 실험에 사용된 과제가 잘못되었을 뿐, 자아의 고갈은 실재하는 현상이라고 해 봅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자아의 고갈이 생각만큼 확실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가 널리 퍼진 이유가 바로 이 아이디어가 매우 다양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초콜렛 칩 쿠기와 무 뿐만 아니라, 단어 게임이나 백인과 흑인의 대화, 그리고 비누를 살지 말지, 심지어 개의 행동을 설명하는 일에도 이 개념은 사용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수행된, 그 많은 연구들이 다 틀린 것일 수 있을까요?
적어도 우리는 이제 이 개념이 매우 불안한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실험 도구를 연필과 종이에서 컴퓨터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사라질 수 있을 만큼 민감하기도 하고요. 만약 그렇다면, 위의 모든 다양한 상황이 이 효과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 ‘대단한 아이디어(Big Idea)’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이는, 이 분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자아의 고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저 실제 효과를 관측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수의 실험대상만으로 실험을 하는 것이 이 분야의 문제라고 여기거나, 또는 과학자들이 자신이 원할 때까지 통계를 주무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수가 한 분야 전체에 발생할 확률은 낮으며, 따라서 자아의 고갈 효과는 존재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결과가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면, 정말 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겠지요.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론이 있습니다. 이들은 잘못된 결과 하나가 다른 잘못된 결과를 양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곧, 자아의 고갈은 단순하면서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며, 따라서 사람들은 수천 가지 방법으로 이를 실험했을 것입니다. 쿠키를 굽는 대신, M&M을 한 소쿠리 가득 담아둔 이도 있습니다. 다른 인종과 대화를 시키는 대신, 인종 차별의 피해자가 되었던 경험을 떠올리도록 유도한 실험도 있습니다.
같은 패러다임 아래서 조금씩 다른 수많은 실험들이 모두 같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게 ‘대단한 아이디어’의 특징일 겁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 개념을 조금씩 바꿔가며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실험을 계속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경우라면, 이 실험이 원래의 개념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수많은 방법을 시도한 끝에, 자신의 가설이 성립되는 실험을 찾은 것에 불과하지요.
물론 이번 APS의 ‘등록 재연 보고서’가 우리가 생각하던 의지력에 대한 모든 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자제력은 당연히 줄어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자제력이 언제, 왜 감소하는지를 모르는 것일 뿐입니다. 심지어 바우마이스터의 원래 주장, 곧 사람들의 정신력은 일정한 양이 있고 이를 사용할 때마다 줄어든다는 그 주장이 실제로 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단지 바우마이스터와 타이스가 20년 전 고안한 그 실험 방법이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분야는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시작
언젠가 우리는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시작’이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겁니다.
토론토 대학의 마이클 인츨리흐트는 단지 이번 자아의 고갈 연구만이 아니라 사회심리학 분야 전체에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과거의 모든 연구들이 의심받고 있습니다. 한때 다수의 연구를 평가하는 표준으로 여겨졌던 메타-분석 연구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츨리흐트는 내게 경고했습니다. 곧, 200건의 엉성한 연구를 모아봤자 그 결과는 엉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메타-분석은 쓰레기예요.
한편 바우마이스터는 자신의 방법으로 재연 실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는 피곤한 듯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하면서도 정직한 방법으로, 20년 전에 보였던 것 같은 방식을 통해 이 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리려 합니다. […] 한 분야를 무너뜨리는 내용을 출판하는 것은 그 분야를 세우는 것보다 더 쉬운 법이지요. […] 좋은 때는 아니에요. 즐거운 일은 아니지요.
자신이 일생 동안 했던 일을 의심받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이 분야를 미심쩍게 바라보던 이들도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인츨리흐트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실이 아닌지 더 이상 알 수가 없구나.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