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대한 편견은 잊어라
달랏(Dalat)은 람동(Lam Dong)주의 주도이다. 여느 베트남 도시와는 이곳에 들어서면 때깔부터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첫 인상은 “이곳이 베트남 맞아? 마치 유럽 같아”다. 그럴 수밖에. 이곳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그 사람들, 좋은 곳은 알아서 알박이를 열심히 했다. 나 역시 이곳을 처음 보고 말한 첫 마디는 “이곳에 살고 싶다”였다. 여긴 지상낙원이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그랬고, 또 짧은 방문기간 동안 이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그 속살을 들여다 본다면 생각 같지 않은 면을 만나겠지만, 일단 이곳은 좋아 보였다.
론리 플래닛의 소개를 한 번 살펴보자. 프랑스 알프스의 봄으로 뛰어든 느낌, 정말 그대로이다.
Dalat is quite different from anywhere else you’ll visit in Vietnam. You would almost be forgiven for thinking you’d stumbled into the French Alps in springtime. This was certainly how the former colonists treated it – escaping to their chalets to enjoy the cooler climate. (론리플래닛)
달랏, 베트남 남부의 해발 1,500 미터 중부고원 지대에 위치해 있는 도시다. 위도 11.5도 정도에 위치한 열대지방이지만 평균기온은 14°C 정도로 완연한 봄 날씨가 특징이다. 아무리 더워도 30°C를 넘어가는 날이 거의 없다. 평균적으로 15°C~ 24°C 사이의 전형적인 봄 날씨를 나타낸다. 그래서 ‘영원한 봄의 도시’라 불린다. 5월에 우기가 시작되어 10월이 되면 끝난다. 물론 요즘은 기후 변화 영향 때문인지 한 달 정도는 오락가락한다.
캄랑을 지나 린투안성에서 람동성 쪽을 바라보면 거대한 산맥이 평원을 가로막고 있는게 보인다. 한참을 산 위를 바라다 보면 산 정상 부근에서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왔다가 사라지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하는 게 보인다.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기를 거부하는 몸짓처럼 요동친다. 쟤들 왜 저래, 별로 높아 보이지도 않는데, 라며 무심코 지나쳤다. 담두옹 댐의 물줄기를 돌려 수력발전을 하는 거대한 도수관이 기괴하게만 보였을 뿐이다.
차를 타고 바라만 보던 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은 가파르다. 굽이굽이 돌아 오르고 오르다 보면 어느새 그 구름 속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발 아래 대평원을 사진에 담고 싶지만 그런 행운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게 로또보다 어렵진 않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행운은 아니었다. 기대를 품고 더 깊은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영원한 봄의 도시, 달랏
안개가 연중 계곡을 감싸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도시 근처 숲을 메우고 있다. 자주 내리는 비와 안개는 붉은 황토를 더 붉게 느껴지게 만든다. 밭에 들어가면 신발에 진흙이 잔뜩 묻어 날 것 같은 찰진 흙이 이곳이 풍요로움을 말해준다. 두꺼운 토양과 연중 온화한 기후, 풍부한 강수량은 이 지역을 최적의 농업지역으로 만들었다.
도시 주변으로 테라스식 밭이 만들어져 있고 딸기, 피망, 감자, 배추 등 우리나라에 보는 흔한 채소들이 재배되고 있다. 여기가 열대지방이란 생각은 금새 잊어 버린다. 여기는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딸기가 나오는 곳이고, 하우스에서 연중 생산된 채소는 전국으로 판매되어 쌀국수에, 다양한 베트남 요리에 풍미를 더 한다.
달랏역과 그 주변
이번 방문은 목적은 여행이 아니었다. 농업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잠시 들른 것이었다. 그래서 도시를 자세히 보진 못했다. 지나가며 밥을 먹고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잠깐 멈추었다. 그래도 눈을 감고 지날 수는 없는 법이다. 눈에 띄는 건축물이 있어서 들어가 봤다. 달랏역이다. 물론 기차는 다니지 않는다(?). 엄격히 말하면 다니긴 다닌다. 역내에서 수십 미터 정도를 관광용으로 운행한다.
달랏의 철도역은 1938년에 건설되었다. Art Deco 스타일로 디자인 되었는데 프랑스 건축가 Moncet와 Reveron이 설계했다. 세 개의 뾰족한 지붕은 노르망디 Trouville-Deauville 역의 Art Deco 버전이다.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달려 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베트남에 천 년 만 년 붙어 있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철도역을 이렇게 멋있게 만들다니. 달랏역은 2001년 역사 건축물로 지정 받았다.
달랏역과 그 주변을 둘러 보면서 프랑스인들이 왜 그렇게 베트남을 떠나길 거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욕심에는 댓가가 따랐다. 프랑스인들에게도 아픈 경험이었겠지만, 프랑스인들의 미련은 여러 사람들의 불행으로 끝이 났다. 베트남전에서 미국, 한국, 베트남인 등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프랑스인들은 이곳 달랏에서 영원한 봄을 즐기고 싶었겠지만, 그들의 욕심이 역사의 물결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달랏은 베트남인들에게 다시 돌아갔다.
달랏의 간략한 역사
1890년대 프랑스 식물학자인 안렉산드레 예르신에 의해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그 당시 이 지역은 코진차이나의 일부였다. 프랑스 총독이 이 지역을 휴양지로 개발했다. 1907년 지금 달랏역의 위치를 결정했고, Ernest Hébrard에 의해 도시계획이 세워졌다. 스위스 식의 거리 이름과 거리 구조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건강센터, 골프코스, 학교, 집이 만들어졌지만, 산업시설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지역 학교에는 인도차이나 전역에서 온 학생들을 선교사들이 가르쳤다. 이 선교사들은 1969년까지 남아 있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인도차이나 연합의 수도(1939-1945)였고, 1950년대에는 베트남 스카우트 연합이 이곳에 설립되었다. 베트남전 기간 동안은 베트남과 베트콩 간 전투가 벌어져 200명 정도의 베트콩이 전사하기도 했다. 베트남 군이 이 지역 전투에서는 우수한 방어진지 덕분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베트남이 무너지는 것 까지 막지는 못했다(위키피디아에서 인용).
달랏 교외의 관광지
달랏은 도시 그 자체로도 좋다. 적도의 고원지대에서 프랑스 풍의 도시를 본다는 건 새로운 느낌이다. 도시를 벗어나 거대한 소나무 숲의 향기를 맡아 보는 것도 좋다. 붉은 흙을 일구는 농부들을 만나는 것도 좋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함께 농삿일을 하는 광경을 아직도 가끔 마주친다.
달랏을 벗어나 교외로 가다보면 이곳 사람들이 추천하는 폭포가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하지만 장중한 느낌을 주는 폭포이다. 이 지역의 풍부한 수량이 만들어 내는 장관이다. 또한 주변으로 산악스포츠나 트래킹을 하는 외국인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다음번에 들르면 그린디스커버리(Green Discovery)를 통해 이런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조인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여유는 바쁘게 지나가는 출장자의 것은 아니었다.
정신없이 다녀온 곳이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다시 베트남을 들른다면 아주 오랫동안 묵고 싶다는 느낌을 들게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노이의 분답스러움과 후덥지근한 날씨도 없었고, 나름 프랑스 알프스를 느낄 수 있는 동양의 진주라고나 할까.
뚜렷한 사계절이 뭐가 중요해, 내겐 영원한 봄이 계속되길. 달랏은 베트남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날려 보낸 멋진 도시였다. 영원한 봄의 도시, 달랏. 그곳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
원문: 에코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