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단원고의 희생자 교실 강제 집행이 논쟁거리가 되었다. 온통 유가족을 비난하는 여론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만합시다”라는 비난이다. 마치 재학생들의 피해를 무릅쓰고 버티기를 하는 악랄한 이기주의로 몰면서 말이다.
유가족들의 이기주의?
2016년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2주기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이제서야 2차 청문회를 개최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몇 번씩 개최가 연기되고, 장소가 바뀌었다. 그리고 차수마다 오랜 기간 청문회를 개최하지도 않았다. 2차 청문회는 3월 28일과 29일 양일 간 이뤄진다. 장소는 서울시청이다.
미국에는 NTSB가 있다. 미연방 교통조사기관으로 대통령이 의장을 임명하고 상원의원의 인준을 받은 5명의 위원이 독립적으로 조사활동을 벌인다. NTSB는 모든 교통사고에 대해서 조사 우선권을 가지므로 유관기관이 조사를 방해할 수도, 제약을 걸 수도 없다. 즉, 미국에서 대형 교통 사고가 발생하면 의회의 특위가 만들어지지 않고도 곧바로 조사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위원들이 분석한 결과에 따라 관련자를 검찰이 기소한다. 그리고 위원들의 최종 보고서는 권고사항으로 정책에 반영된다.
대한민국은 지난 2년 간 이 작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상식적인 입법자라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난 ‘국가재난지역’ 또는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면 의무적으로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개최되도록 법률을 작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다음 절차로 넘어가야 할 문제로 1년 반을 허비했다. 언론에서는 유가족 보상금과 혜택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왔지만 집행된 것은 거의 없다.
유가족은 세월호 추모 공간에 교실을 이전하길 원했다. 만약 상식적인 정치인이라면, 그리고 행정 관료라면, 세월호 추모 공간은 ‘국정조사’와 ‘특위 구성’ 논쟁에 앞서 선행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가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2014년부터 이야기가 나왔다.
정부는 할 수 있었던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년을 허비했다. 임시 공간도 마련할 예산과 절차도 마련하지 않은 채, 그 싸움을 재학생 학부모와 유가족의 대치구도로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교육청은 애로사항을 대중에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관할 행정청과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시간은 ‘피해자’의 편이 아니다. 언제나 가해자의 편이다. 그 결과 오늘날 많은 대중들조차 이 교실 문제를 “세월호 유가족의 이기심”으로 매도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에는 자명한 절차들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며칠 이내에 장례를 치르는 예법처럼, 아이가 태어나면 며칠 이내에 출생 신고를 하는 것처럼, 대형 인명 사고가 나면 그 추모 시설을 건립하거나 추모비를 건립하는 절차는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 특히나 2014년 여름, 추모 물결이 이어지던 그때, 세월호 아이들의 교실 보존 문제가 논의 대상으로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 점을 외면하고, 지금까지 지연시켰던 것은 ‘유가족’이 아니다. 이 이슈는 협상의 대상도 아니고, 논쟁의 대상도 아니다. 정부는 추모관 건립 문제가 어려웠다면 임시 보관 장소를 선정하는 것이라도 했었어야 했다. 이럴 수 있는 재량을 위해 예비비라는 예산도 있다. 만약 추모관과 세월호 조사 및 특위 구성 문제를 협상의 카드로 활용했다면 그것은 온전히 정치의 책임이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에 대한 반성적 태도로 대규모 인적 피해가 있는 재난지역선포를 하면 국회가 의무적으로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해당 사건에 대해 진행할 수 있는 근거 법률을 만들 수도 있다. 또는 미국의 NTSB 처럼 최우선 조사권을 가진 독립기구를 만들 수 있었다. 국민안전처와 같은 바보 같은 대책이 아니라 말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오늘날에 세월호 유가족만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 당하고 있다.
분할통치
1992년 10월 4일 EL-AL 747 항공기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을 이륙한 뒤 암스테르담의 아파트에 추락했다. 집에 있던 43명의 사람이 희생되었다. 손상된 아파트 구역은 철거했지만 그 아파트는 재건축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는 아파트 한 구석에는 ‘추모비’가 있다.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불쾌해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강남 아크로비스타. 그렇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난 그곳이다. 현재 그곳에서 참사의 흔적은 어디에도 발견할 수 없다. 삼풍 참사의 추모비는 멀리 떨어진 양재 시민의 숲에 있다. 그것도 산책로와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있다. 삼풍 참사 주기 때마다 유가족들은 조촐하게 추모 행사를 연다. 그곳을 5월의 그날 방문해보라. 아직도 부모와 자식, 이모와 사촌에 대한 그리움의 편지가 쓰여진다. 그들은 여전히 지옥을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분할통치(Divide and Rule)’라는 것이 있다. 국가가 사람을 통제할 때 쓰는 수단이다. 집단을 이해관계에 따라 갈라놓고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면 바로 갈등이 해결되지만, 그 갈등을 일부러 조장하여 분쟁으로 키운다.
주로 식민 지배를 하던 나라들이 쓰던 방법이다. 르완다에서 후투족과 투치족을 나눠버린 벨기에가 그랬다. 결국 독립한 후 르완다 내전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주의가 그 일종이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경상도와 전라도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없었다.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 그 둘은 과연 싸울만 한 이유가 있었을까? 정부가 임시보관소라도 예비비를 집행하여 만들었다면? 지금 우리들의 비난 속에 ‘대한민국 정부’는 쏙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