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에서 정권 교체를 쉬운 일처럼,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간주하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최소 동아시아에서는 정권 교체, 즉 ‘레짐 체인지’는 거의 혁명에 준하는 발생하기 매우 어려운 이벤트다. 왜냐면 동아시아 국가에서의 집권당은 단순히 수권을 노리는 여러 정당 중 하나가 아니라 동아시아적 국가 운영 모델의 한 파트에 속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압축적 근대화 경험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처럼 수 백년에 걸친 점진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발전을 경험하지 못했다. 서구의 국가들은 수 백년에 걸친 점진적인 변화와 발전을 통해 자본가, 노동자, 중산층 등 각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들이 서로 주도권 경쟁을 하며 집권에 필요한 역량을 쌓을 시간과 기회가 충분 했다. 그래서 다양한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들이 서로 교차하며 집권하는 전통이 쌓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 세기의 전근대 중앙집권 국가 체제 기반 위에서 외부 충격에 의해 강제적으로 근대화를 받아 들이게 된 동아시아에서는 국가 주도의 급진적이고 빠른 산업화와 경제 개발이 진행 되었고 당연하게도 사회의 각 계층을 대변하는 여러 정당들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집권에 필요한 노하우를 쌓을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
당연히 강력한 국가 체제의 하위 파트로 집권당은 국가 경제 발전과 운용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노하우와 역량을 독점하게 된다. 초고속 경제 성장 시기 동안 대부분의 기간을 집권하면서 집권당은 경제 운용과 산업 정책, 각종 재정과 과세 등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경험을 계속해서 쌓고 축적을 하게 된다.
대안세력으로서의 야당은 제도적이든 사회적이든 정치적이든 여러 가지 이유로 집권과 국정 운영에 참가하여 경험과 노하우를 쌓을 축적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격차는 점점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결국에 국정 운영을 전면적으로 할 기회가 온다 하더라도 경험과 노하우 부족으로 참담한 실패를 겪고 다시 권력을 국가 파생 정당인 집권당에 주게 된다.
일본, 중국의 경우
2008년 자민당 60년 권력 독점을 깨고 단독 정권 교체를 이루어낸 일본 민주당의 실패 사례는 가장 전형 적이다. 일본 민주당은 처음에는 미국 기지 이전 등 대미 외교 면에서 미숙하고 아마추어적인 모습으로 흔들리며 1기 총리가 1년 만에 낙마 하더니 2기 총리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자연 재해에 집권세력으로서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고 또 참담하게 낙마하게 된다. 3기 총리를 거쳐 민주당은 일본 국민들에게 철저히 버림받고 아베 자민당 출범 후 완전히 소수 정당으로 몰락하고 만다.
사실 일본 민주당은 실체가 없는 구조개혁과 재정 개혁에 집착하여 당시 대지진 같은 참사 와중에 일본 경제에 가장 필요한 강력한 통화 재정 정책 시행은 철저히 무시하였고 악화되는 경제 사정은 자민당 집권에 가장 좋은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결국 자민당 아베의 강력한 통화 재정 정책은 일본 경제의 희생의 전기가 되었고 대졸자 구인난 까지 발생하는 경기 회복 와중에 일본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아베는 전후 최장 총리 임기까지 도전하며 승승 장구를 하고 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는데, 나는 중국이 설사 다당제와 자유 선거 등 전면적인 정치 제도적 민주주의가 도입 된다 하더라도 최소 50년은 공산당이 집권할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면 중국에는 집권 공산당에 대해 그 어떤 정당도 대안 세력으로 존재하는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60년이 넘는 장기 집권을 거치며 유럽 연합 수준의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국가를 운영하고 인류 역사 가장 빠른 속도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이룬 공산당의 집권 경험과 노하우 축적과 독점은 중국 내에서 어떠한 대안 세력이나 저항 세력도 넘볼 수 없는 수준이며, 만약 어설픈 수준으로 다른 세력이 갑자기 우발적인 상황 속에 집권하여 국정 운영을 할 경우 발생할 극심한 혼란과 충격은 국가 체제 붕괴를 걱정 할 수준까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본능적으로 아는 중국 인민들은 내심 민주주의를 원하지만 당장 집권당 반대에 나서지 않는다. 단지 반체제 세력 탄압만으로 중국 공산당이 안정적으로 일당 독재를 설명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한국? 미국의 양당 집권이 차라리 현실적이다
한국에서는 그 동안 한국이 분단과 지역 대립 구도 덕에 집권당이 손 쉽게 집권 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 통념으로 자리 잡았으나 중국과 일본 까지 넓혀서 보면 집권당이 쉽게 선거에 이기는 상황이 의외로 잘 설명이 된다.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의 새누리당은 한국의 대부분의 군부 독재와 초고속 산업화 시간 동안의 집권당의 후계 정당이며 한국에서 국정 운영 경험과 노하우 축적을 거의 독점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국가 부도 위기의 경제 위기와 집권당의 분열이라는 우연이 겹치지 않았다면 한국에서도 지금 까지 선거로 정권이 바뀐 적이 단 한번도 없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거기다가 그 첫 번째 야당 집권의 대통령이 김대중이라는 매우 걸출하고 역사적 수준에서 뛰어난 인물이 아니고 그냥 평범한 야당 정치인이 었다면 그 한번도 일본의 민주당 사례처럼 아주 예외적인 사건 이었을 뿐 완전히 몰락한 야당에게 다시금 집권할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나는 그래서 단지 야권 진보세력과 야권 지지층 내부의 파이팅만을 강조하며 야권진보의 내부 결집과 사악한 집권 세력에 대한 반대와 저항에만 의존하면 자연스럽게 정권이 교체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걸 볼 때마다 그러한 주장의 나이브함에 한숨이 나오곤 한다. 게다가 더 나아가 새누리당을 없애서 민주당-정의당 등 진보정당의 보수 진보 양당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을 볼 때마다 뜻은 좋아도 너무 의욕만 앞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소박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죽기 전까지 그냥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미국 공화/민주 양당처럼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는 게 정치 체제적으로 굳어지는 것 정도만 봐도 소원이 없겠다. 한국의 수준은 일본 중국 처럼 집권당의 초장기 집권에 더 가까운 수준이니 유럽 처럼 다수 보수-진보 정당들 경쟁 체제는 고사하고 미국 수준의 양당 경쟁 체제만 정착 되도 대성공이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은 솔직히 지금 수준을 유지한다면 내 생각에 100년이 지나도 단독 집권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영상은 귀엽다.
내가 처음에 이야기 했듯이 동아사이에서 레짐 체인지는 거의 혁명에 준하는 수준이며 설사 그 혁명이 성공한다 치더라도 그 혁명이 성공적으로 안착 되는 건 혁명 자체 보다 더 훨씬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은 물론 일본보다도 훨씬 운이 좋았으며 일본의 레짐 체인지 결과가 혹독한 실패로 끝난 거와 달리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금 정권 교체를 노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것도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며 야당 자체의 노력 뿐 아니라 여러 가지 행운이 겹쳐야 가능한 일이다.
분통이 터질 때는 중국, 일본을 보자
그래서 나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분들에게 바란다. 일단 정권교체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항상 마음 속에 염두해두고, 기존 전통적 선거 전략과 노선에 탈피해 중도층 위주의 새로운 전략과 노선이 설사 자신의 구미와 정치적 취향에 맞지 안아 분통 터지고 화가 날지라도 좀 참고 인내할 필요가 있다.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질 때마다, 같은 동아시아 이웃은 일본과 중국의 정치적 사례에 눈을 돌렸으면 좋겠다. 중국과 일본을 보면, 성에는 안 차더라도 어느 정도 집권당에 대등한 수준에서 대항세력으로 존재하는 야당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원문: 한청훤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