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이 뜨겁다. <슈퍼스타 K>를 통해 전국민을 오디션 무대 위에 올려놓았던 엠넷이 이제는 다시 그 국민을 심사위원 석 위에 앉혀 놓았다. 엠넷은 이런 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걸그룹의 최종 멤버는 100% 국민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국가대표 걸그룹이 되기 위한 치열한 연습과 잔인한 방출! 당신은 어느 소녀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인가! 당신의 한 표가 소녀의 운명을 결정한다!”
101명의 멤버들 중, 걸그룹으로 활동할 열한 명을 뽑는다. 엠넷은 이를 두고 치열하고, 또 잔인하다고 표현했다. <슈퍼스타 K>를 비롯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한경쟁’은 흥행보증수표였다. 그 방식이 자극적이고 잔인할수록, 경쟁상품이 화려하고 현란할수록. 맞다. 제작진의 말대로, <프로듀스 101>은 잔인하고 치열했다.
엠넷의 여느 프로그램이 그렇듯, 논란이 이어졌다.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들과는 다르게, 준비부터가 폐쇄적이었다. 국민들이 걸그룹이 될 기회는 없었다. 모두 다 저마다의 소속사를 가지고 눈에 띄어 보겠다고 방송에 나왔다. 시작 자체가 이미 공정하지 않았다. 개인연습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들이 몇 있었지만, 시청자들은 그들을 흙수저라고 불렀다. 그들에게는 자본도, 빽도 없었다.
네가 뽑을 사람은 내가 정한다
사실이 그랬다. 결국, 카메라가 더 많이 비추는 것은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신분이거나, 이미 한 차례 데뷔했던 이들이었다. ‘국민 프로듀서’들이 그들의 무대, 캐릭터, 실력을 평가할 시간이나 자리 따위는 없었다. 방송국은 그들이 원하는 이들을 더 많이 비출 수 있었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편집할 힘이 있었다.
조금 멋있게도 들렸다. 시청자에게 권력을! 당신이 원하는 사람을 뽑아주세요! 그러나 이것은 위대한 착각이었다. 내가 원하는 소녀 자체가 방송국에 의해 결정되었다. 시청자들이 누군가를 뽑을 수 있는 건, 방송국에 의해 한 차례 추려진 모습들을 본 후였다. 방송국은 오히려 시청자가 뽑게 할 만한 멤버를 만들 수 있었다.
이들의 첫 무대는 엠카운트다운에서 불렀던 <픽미(Pick Me)>라는 곡이었다. 픽미픽미픽미업. 나를 뽑아달라고 간절히 노래하는 소녀들. 하지만 그 무대에서조차 주목받을 수 있는 건 소수였다. 98명의 소녀가 한 무대에서 공평한 주목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이들의 시작 자체가 불공평했다. 나를 뽑아줘. 이 간절한 외침은, 필연적으로 선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국민이 국회의원이 될 기회는 없었다
사실이 그렇다. 총선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이 시점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공천 상황을 마무리 짓고 있다. <프로듀스101>이 걸그룹이 되어 경쟁을 펼치기 전에 경쟁을 벌이듯, 공천을 위한 경선은 경쟁 전에 펼쳐진 무한경쟁이었다. 누군가는 떨어졌고, 누군가는 무대 위에 올라갈 기회를 얻었다. 그렇지만 왜. 이유를 묻기에는 충분했다.
김광진 의원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내의 청년비례대표 공천 과정을 비판했다. “제도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청년의 아픔에 고민도 없는 분들이 이 제도를 운용”한다고 했다. “청년비례대표 참가비가 100만 원이며 경선에 오르면 수천만 원의 경선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댔다. 준비 자체가 폐쇄적이었다. 가난한 국민이 국회의원이 될 기회는 없었다.
더불어 김 의원은 “단 1분짜리 정견발표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상호 간에 토론회 한 번 없는 상태에서 도대체 누구를 어떻게, 왜 뽑으라는 말인가.”라며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운영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랬다. 국민들이 그들의 정견, 비전, 실력을 평가할 시간이나 자리 따위는 없었다. 공천관리위원회는 그들이 원하는 이들을 뽑을 수 있었다.
정말이다. 청년비례 면접에서 탈락한 김빈 예비후보는 “면접시간 5분도 이해하기 힘든데 결과가 이렇게 빨리 나온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공천 대상자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비단 청년비례뿐만이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과정 내내, 잡음과 시비가 일었다.
그들이 원하는 이들을 뽑을 수 있었다
“새누리당 후보는 100% 국민 여러분이 공천한다!” 반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시작부터 ‘상향식 공천’을 내걸었다. 조금 멋있게도 들렸다. 국민에게 권력을! 당신이 원하는 사람을 뽑아주세요! 그러나 이것은 위대한 착각이었다. 공천 결과가 속속히 발표되는 이 시점에서, ‘100% 상향식 공천’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는지 드러나고 있다.
각 지역에 출마한 모든 예비후보들을 ‘최대’ 5명까지 추린 후에 경선을 치르겠다고 했던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지침 자체도 상향식 공천의 취지를 흐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17일 기준, 경선을 치르는 곳은 141곳뿐이다. 여성, 우선추천 및 단수추천으로 후보자가 결정된 곳은 109곳. 상향식 공천을 하기는 했다. 100%는 아니고 56.4%쯤?
정치신인이라고 나타난 사람들은 이미 데뷔 한 차례 데뷔했거나, 몇 번 얼굴을 비친 이들이었다. 당 대표가 신인이라며 데려왔던 이들은 법조계 출신에 종편 방송인이었다. 이미 새누리당에 넘치는 인물들이었다. 비슷한 장르의 노래를 잘 부르는 이들은 이미 많았음에도 말이다.
거기다가 국민들이 그들의 정견, 비전, 실력을 평가할 시간이나 자리 따위는 없었다. 공천관리위원회는 그들이 원하는 이들을 뽑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뽑았다. “당신의 한 표가 이들의 공천을 결정한다!” 글쎄. 결과를 보니, 아무래도 그건 그냥 거짓말이었던 모양이다.
Pick Me Pick Me Pick Me Up
<프로듀스101> 속 걸그룹 연습생들처럼, 우리의 국회의원 연습생들 역시 눈에 띄어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이것이 운명일까. 이 와중에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의 로고송으로 <프로듀스101>의 Pick Me를 선택했다. 픽미픽미픽미업. 우리는 이제 나를 뽑아달라고 간절하게 외치는 국회의원 후보들을 만나게 되는 걸까. 사실 별로 보고 싶지는 않다.
총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거대양당의 공천은 잡음으로 얼룩져 있다. “당신의 한 표가 이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국민에게 권력을! 당신이 원하는 사람을 뽑아주세요! 이 말이 총선에서도 그저 위대한 착각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인이 이미 당에 의해 결정되었다. 모든 후보들이 각자의 정견을 가지고도 공평하게 주목받지 못한다. 그 과정은 너무 치열해서 잔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에 냉소하고 투표할 권리를 포기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래도 조금 더 나은 멤버, 조금 더 실력이 좋고, 자질이 보이는 이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 그가 아예 방출된다면 방송국에 항의라도 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결국 방송국이 원하는 이들로만 채워진 무대를 보게 될 지도 모르니까.
원문: lupinnu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