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심사의 문제: 그 누구도 과정을 신뢰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청년비례경선이 파행 끝에 전면 중단됐다.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자신이 4년간 데리고 있던 비서관 출신 후보를 최종 2인에 올렸다. 최소한의 염치가 있다면 “내가 심사하는데 어떻게 자네가 출마할 수 있나? 이번엔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노림세”하고 말렸어야 할 상황 아닌가? 정치권의 후안무치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한 여성 후보는 공천을 담당하는 당직자로부터 개인 과외 받듯 의정활동 계획서를 코치 받기도 했다. 정치신인이라 잘 몰라서 일어난 실수라고 인정하고 후보를 사퇴했지만, 이미 본인과 부친의 명예까지 심각하게 훼손된 뒤였다.
컷오프를 당한 또 다른 남성 예비후보는 면접이 사실상 3분만에 끝났다고 한다. 홍창선 공관위원장은 3분만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머지는 “아버지는 뭐하시나?”, “재산은 좀 있나?”는 등의 모멸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시간낭비였다.
애초에 밀실심사로 컷오프하고, 밀실면접으로 최종 경선후보를 선정하는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 면접은 갑을 관계가 명확하고 질문을 하는 면접관에게 주도권이 주어진다. 지원자는 기다릴 때부터 초조함에 마음이 위축된다. 면접장에서도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몰라 수동적이 되고, 혹시 예상질문이 빗나가면 평소 실력발휘도 못하고 나오기 일쑤다.
애초에 특정 지원자를 떨어뜨릴 마음으로 압박면접을 하거나 이번처럼 부실면접을 해버릴 가능성도 언제나 열려있다.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 이유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밀실이 아닌 광장에서의 연설로 검증이 필요하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멘토’로 불린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3선, 4선 정치인들이 공천 면접을 위해 당사 복도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이 분들은 나라의 지도자들인데, 이렇게 대접해선 안된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어떻게 뽑아야 할까? 바로 연설이다. 미국 민주당이 오바마를 면접으로 뽑았나? 클린턴은, 버니 샌더스는 면접으로 정치에 입문했나? 아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연설로 자신의 정견과 철학을 제시하고 검증받았다.
연설은 일단 주도권이 연설자 자신에게 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는 방해받지 않고 쭉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청중을 어떻게 웃기고 울릴지 자기 만의 전략을 갖고 임할 수 있다. 물론 그게 통하고 안통하고는 다른 문제다. 하지만 정치인이 본인의 실력을 가감없이 드러내기에 연설만큼 좋은 방식은 없다.
그런데 연설을 하고 듣는 문화가 우리 정치에서 사라졌다. 연설을 할 사람은 있는데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뽑을 사람을 다 마음에 정해둔 소수의 심사위원을 대상으로 PT하듯 연설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연설은 대중 앞에서 하고, 그들이 직접 가장 잘한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중은 누구일까? 바로 당원이다. 평소 그 정당에 관심을 가지고 위험을 무릎쓰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소액이지만 당비도 꾸준히 내온 당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당원이 바로 정당의 주인이고, 그들이 후보를 선택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신진 정치인, 연설의 무대를 만드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문제는 민주당에 만연해 있는 당원에 대한 불신이다. “우리가 진보정당도 아닌데, 진짜 당원이 있겠어? 그저 후보들이 돈으로 매수하거나 지연을 통해 동원한 조직 아니야? 결국 믿을건 ARS를 통한 여론조사 밖에 없어. 그나마 그게 공정하고 정치신인에게도 유리할거야.” 이런 정서 말이다.
이런 생각이 바로 정당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ARS 여론조사는 돈도 많이 들뿐더러 응답률도 턱없이 낮다.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정당 고유의 기능인데,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이 왜 당의 후보까지 정해줘야 하나? 아까운 예비후보들의 돈으로 여론조사 업체만 배불리는 꼴이다.
결국 다시 정당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평소에 당원 하나하나를 소중히 받들고 꾸준히 신규 당원 가입 운동을 펼쳐야 한다. 혹시 돈으로 당원을 매수하거나 허수 당원을 동원하는 행위는 선거법과 당헌당규로 엄격히 처벌하면 된다. 선거는 항상 상대가 있는 것이니 서로 견제하고 신고하게 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렇게 평소에 잘 모아둔 당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출마한 예비후보들의 연설을 듣고 그들의 투표를 통해 상위 2인을 남긴 후 한번 더 연설을 듣고 최종 후보를 결정하면 된다. 1인 2표나 3표 방식으로 후보들간 합종연횡을 유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후보도 당원들도 그러면서 정치를 배워갈 것이다.
이런 방식은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하기 때문에 돈이 들지 않는다. 후보들은 연설의 내용과 정책만 준비하면 된다. 기존의 당원들에게 친숙한 현역과 지역 토호에게 유리할거라고? 그건 어느정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향식 공천을 하는 미국도 현역의원의 재선율이 90%가 넘는다. 하지만 미국 정치가 우리보다 후진적이라곤 아무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 컷오프된 청년 후보 중에 미래의 대통령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오바마, 트뤼도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연설을 듣고 싶다. 당장 그들에게 연설해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그 연설을 들은 당원이라면 누구에게나 투표할 기회를 주는 거다. 그게 바로 정치인을 뽑는 정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