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으로 인해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되었고, 9일간 38명의 의원이 이에 참여했다. 이 필리버스터는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되었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현장의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다. 필리버스터 발언 내용을 요약하거나, 댓글을 다는 사이트도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국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뉴스나 신문에서 요약해준 대로 봐야 했다면, 이번에는 ‘마리텔(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이름에서 따온 ‘마국텔(마이 국회 텔레비전)’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릴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쌍방향이고 더 생생한 정보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로데이터(Raw Data)를 보았던 것이다.
이런 정보를 본 사람들도 역시, 과거와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지 몰랐다”라든지, “예산만 축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뭔가 이번엔 일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라든지 하는 말을 SNS 등지에서 종종 볼 수 있었는데, 국민이 국회의 신뢰도를 늘 바닥으로 평가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인식의 전환이 조금이나마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정말 밥값 못하던 국회의원들’이 이번 필리버스터를 계기로 갑자기 각성이라도 한 것일까?
국회의원들은 그렇게까지 일을 못 하진 않았다. 우리만 몰랐을 뿐.
혹시 국회회의록 사이트에서 직접 회의록 로데이터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뭔가 국회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선, 지루한 회의록 따위 읽어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 동영상도 보았던 김에, 과거의 회의록들을 한번 찾아서 읽어보길 권한다. 기본적으로 국회의 모든 공식회의들은 발언의 내용이 그대로 기록된다. 말하자면 회의록은 현재 ‘마국텔’의 스크립트 같은 것이다.
예전에 나는 우연히 그 회의록을 읽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겪었던 인식의 전환은, 현재 마국텔을 보고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전의 나는, 대부분의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듯, 국회의원들을 “밥만 축내고 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몸싸움이나 해대는” 사람들 정도로 평가했었다. 하지만 회의록을 읽어보니 웬걸, 회의들은 (내 기대보단) 꽤 수준이 높았고, 그렇게 극한 대립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나름 합리적으로 의안들이 처리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한국 정도의 규모의 나라의 국회가 사람들 상상처럼 매일 파행만을 거듭하고 있다면, 아마 훨씬 일찍 사단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국회가 제 기능을 하고 있을 때는 우리가 거기에 관심을 가질 일이 없다는 점도 있다. 혹시 금융감독원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보통 공공기관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는 뭔가 사고가 났을 때뿐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기억하는 국회는 몸싸움을 하거나, 문을 부수거나, 욕을 하거나, 여튼 뭔가 극한대립을 할 때의 모습이 주가 될 수밖에 없다. 언론들도 그럴 때만 조명하기 마련이었고 말이다.
게다가 국회 본연의 기능이 “의견대립을 잘 조율하고 타협하여 적절한 입법을 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의견충돌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국회이기 마련이다. 근데 그 충돌이 가장 안 좋은 모습으로 드러날 때만 우리가 주목하다보니, 마땅히 받아야 할 신뢰도보다도 훨씬 낮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물론 한국 국회가 이상적으로 운영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들의 “평균적 인식”보다는 더 낫다는 이야기다.)
또한 현재 필리버스터에서 야당의원들만 주목받긴 했지만, 평소에 일하는 측면에서는 여당의원들이라고 아주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 생각해보면 국회의원 정도 될 정도면 전문성이나 경력 측면에서 어느 수준 이상을 다 넘은 사람들이다. 쟁점법안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이견들은 있지만 다들 조리 있게 토론하고 판단한다.
문제는 쟁점법안들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안건들에 대해서는, 국회는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을 많이 보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기록을 읽지 않는 유권자들과, 기록에 남지 않는 곳에서의 의사결정들
어떤 사람이 막말을 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때는 언제일까? 그건 누군가 평가, 감시하거나 지켜보지 않을 때이다. 평소에 아무리 막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고 토론을 시켜보면 최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조리 있게 말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속기록이 남는 국회의 회의들에서 다들 적절하게 행동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대 당으로 붙는 거대쟁점 정국이 되면 평가체계가 달라진다. 극한대립이 붙게 되면 언론이 보도하게 되고, 그 보도를 통해, 유권자들은 자세한 토론내용을 보기보다는 “누가 확실한 우리 편 전사”인지를 기준으로 의원들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이런 큰 문제는 보통 청와대, 또는 고위 당직회의 이슈가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공천권을 가진 주체가 의원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집단의 논리가 우세해지고, 의원 개개인의 합리성이나 판단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이런 의사결정들은 보통 기록이 남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결정이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인지, 유권자들은 알 방도가 없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기록이 남는다 한들, 유권자들이 그런 것들에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사실상 효과적으로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이것이 국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비합리성의 직간접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필리버스터 이후에 남겨야 할 것은
필리버스터 전후의 결정들은, 그렇게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결국 테러방지법은 통과되었고, 의사진행방해 이외에 뭔가 여야 간에 주고받는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야당 지지자들은 끝까지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고 물러선 야당의 모습에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국회방송”이라는 실황, 현재 일어나는 사건의 로데이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결국 입법이 행정에서 완전히 독립해서 삼권분립이 의도했던 견제와 균형을 한 축을 온전히 담당하게 하려면, 유권자들이 이런 의사결정과정의 세세한 부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회의원들을 청와대, 당, 세력의 논리의 종속변수로만 보지 말고, 또는 막연한 정치혐오로서 “모두가 같은 놈”이라는 식으로 퉁치지 말고, 한 명 한 명이 “입법 기관”인 국회의원들을, “그들이 한 일로” 평가하는 사람이 더 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소신을 가지고 투표를 하고, 청와대나 당의 결정에서 더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토양을 유권자들이 만들어줘야 한다. 작은 실천이라면 내 지역구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조금이라도 더 읽어보는 일이 있겠다.
이게 멀리 돌아가는 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국회가 제 기능을 하게 만드는 빠른 길이라 생각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기본 가정이기 때문이다. 로마 공화정 시절처럼 검투사들이 경기장에서 싸우는 걸 보고 함성을 지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문: cfr0g ; 괴골 [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