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벽의 함대
1990년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6년에 완결된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19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에 걸쳐 총 32화의 OVA로 제작이 된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소설을 집필한 인물은 아라마키 요시오(荒巻義雄)라는 SF작가.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만화판도 출간되었고(만화판의 경우,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만화판을 그린 이무라 신지가 담당했다), 심지어 PC와 콘솔용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까지 제작되었으며, 스마트폰용 게임도 등장했다(무려 Mobage, Gree, 야후 재팬 게임즈가 각기 다른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2012년에는 애니메이션 판의 스핀오프 격 외전 작품이 방영되기도 했으며, 파칭코 버전도 존재한다. 라디오 드라마 같은 구성의 CD도 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3년에 걸쳐 출간된 <욱일의 함대(旭日の艦隊)>와 더불어, 일본 극우성향 미디어 물의 양대 산맥이자, 끝판왕 격인 작품이다. <욱일의 함대>는 <감벽의 함대>의 스핀오프 격 작품인데, 역시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제작되었고, 두 작품 모두 후속작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일본판 <LUFT 4>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LUFT 46>을 빨아대는 극우성향 양덕 쓰레기들 사이에선 나름대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솔직히 이걸 ‘작품’이라고 칭해야 할 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만…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연합함대의 사령장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비롯, 당시 일본군의 주요 장성들과 전범들이 사망 후 러일전쟁 시대에 ‘예전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로’ 환생하여 일본의 패망을 막고 미국과의 전쟁에 승리하고 모종의 집단이 지배하는 악의 무리 나치스 독일을 응징하여 세계제일의 국가로 재탄생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대체역사물을 가장한 국뽕과 극우성향의 극치를 달려주는 작품인 셈. 게다가 오버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일본과 전쟁하여 패배한 미국은 일본의 쫄따구 국가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작품의 제목인 ‘감벽의 함대’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한 자들이 모여 편성한 넘사벽급 잠수함 함대의 이름으로, 실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건조한 초대형 전함 ‘야마토(大和)’ 대신, 실제 역사에선 단 3척만이 건조되었고, 이 마저도 특별한 전과를 올리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잠수항모인 ‘이호 제400형 잠수함(伊號第四百型潜水艦)’를 양산하여 편성한 함대의 이름이다.
대체역사물답게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명칭이 실제 명칭과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지만, 등장인물들의 배경이나 성격은 (적어도 일본측 인물들의 경우) 크게 헤치지 않는 선에서 각색이 되었다.
그리고 국뽕 소설인 관계로 처음부터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과 전혀 다른, 초고도의 기술력과 개념 잡힌 군인들과 정치가들이 군림하는 국가로 등장한다. 어디서부터 까야 할지 솔직히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 국뽕의 진수를 보여준다. 레이더도 일본이 먼저 만들고 제트엔진도 일본이 먼저 만들고 로켓병기도 일본이 먼저 만들고 심지어 스텔스 기술도 일본이 먼저 만들었다는 설정(…)
게다가 2차대전 및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당시의 모든 책임을 ‘나치스 독일’에게 덧씌우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으며, 한 술 더 떠서 속편인 <신 감벽의 함대>나 스핀오프 격인 <욱일의 함대>에서는 아프리카나 중남미, 인도차이나 등의 열강 식민지를 ‘해방’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러일전쟁 이후 본격화된 일본의 침략전쟁을 “자국을 지키고 아시아 해방을 위해 싸운 전쟁”이라고 왜곡하는 극우파 세력들의 본심이 담겨있는 판타지인 셈.
스핀오프 격인 <욱일의 함대>는 <감벽의 함대>에 비해 조금 더 판타지스러운 면이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츄신구라(忠臣藏)>의 등장인물들로부터 따왔다. 단, 전개는 과도한 무사정신과 자기희생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츄신구라>가 엄청난 개념작으로 보일 정도로 훨씬 막장이다.
원작 소설은 일본에서 사실 대 히트를 쳤지만, 애니메이션은 극우 성향의 매니아 층을 제외하면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다. 작화 및 등장 병기들의 디테일은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애니메이션의 전개 방식 및 연출이 개판이었기 때문. 성우들의 발연기는 덤이고. 볼만한 가치는 있냐고? 당근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야동을 봐라.
여담이지만, 불법 복제 만화가 판을 치던 90년대에 소설판과 만화판이 해적판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만화판의 경우 일본이 대한민국으로 둔갑한 버전도 존재했다.
2. GATE 자위대, 저 땅에서, 이처럼 싸우도다
원작은 동명의 소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인터넷 소설 투고 사이트에서 동명의 타이틀로 소설을 연재하다가 2010년 4월부터 단행본이 출간되면서 화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2016년현재, 단행본 5권과 외전 5권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야나이 타쿠미(柳内たくみ). 전직 자위대원 출신이라고 하는데 구라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판타지 세계관을 가진 소설을 함께 연재 중.
애니메이션은 2014년 12월에 1기가 방영되었고, 2기가 2016년 1월부터 방영이 되고 있다. 자위대와 일본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방위성에서 공식적으로 스폰서를 하고 있고, 자위대원 모집을 위한 홍보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일본에 미지의 세계와 연결되는 일종의 포털, 즉 게이트가 출현하고, 이 게이트를 통해서 일본을 침략한 미지의 군대를 자위대와 경찰이 간단히 궤멸시킨 후, 그 세계로 자위대를 파견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주변국들과 전세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 우익 정권의 평화헌법 수정을 대놓고 찬성하고 있는 작품이며, 앞서 다룬 <감벽의 함대>가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국뽕 작품이라면, <GATE 자위대, 저 땅에서, 이처럼 싸우도다>는 현재 진행 중인 작품으로, “어여, 빨리 재무장을 해서 우리도 평화유지라는 명목 하에 침략도 좀 해보고 학살도 좀 해봅시다”라는 극우파들의 염원이 담긴 작품이다.
일본 평화헌법의 특성상 해외 파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지의 영역인 ‘게이트 너머의 세계’를 일본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자국민 보호” 및 “평화 유지”를 명목으로 자위대를 파견한다는 내용이다. 게이트 너머의 세계는 이른바 국제 연합과 국제 사회가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미승인 국가이고, 게이트를 넘어 일본을 공격한 이들은 테러리스트라는 설정. 대놓고 평화헌법을 디스하는 설정을 가진 셈이다.
사실 자위대의 활동(그러니까 자위대가 타국의 군대와 전쟁을 벌이는)을 다룬 작품들의 상당수가 평화헌법이라는 제약 때문에 이런 식의 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러한 우익성향의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톱 클래스를 담 직한 작품이다.
작중 등장하는 미지의 세계는 지구로 치자면 중세 시대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세계로, 여기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하여 엘프라던가, 드워프라던가, 드래곤이라던가, 마법사라던가 하는 기믹이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자위대+국뽕+판타지를 믹서기에 넣고 돌려버린 셈. 당근 중세 시대 정도의 기술력밖에 없는 세계이니, 현대 기술의 군대와 맞붙었을 때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지의 세계에 파견된 자위대는 이들 중세 군대를 일방적으로 학살한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고민도 없어 보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미지의 세계, 즉 작품 내에서 특지(特地)로 칭하는 지역에 문명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일방적인 침략 및 학살 행위를 멈추지 않는데, 이것 마저도 “정당한 자위권 행사”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 이 작품은 <감벽의 함대>보다 훨씬 막장이라고 볼 수 있다.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서 일본이 다시 독립국이 되었다고는 하나, 일본은 국제 사회의 일원이고, 국제 연합의 회원국이다. 아무리 이세계라고 하지만 일본이 단독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전쟁을 벌일 수 없다.
게다가 이세계에 문명 국가의 존재가 확인된 만큼,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국제연합에서 안보이사회가 소집이 되고, 이를 통하여 결의안을 채택한 후 교섭이 시작되거나, 혹은 현지 조사를 위한 조사대가 파견되거나, 아니면 국제연합의 승인을 받은 연합군이 결성되어 최소한의 무장을 한 상태로 파견이 되는 것이 기본일 텐데, 이 작품에선 그러한 요소가 전혀 없이 “공격 당했으니 전쟁을 벌인다”라는 것은 작가가 국제사회의 ‘룰’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을 가진 작품이 소설과 만화로 출간이 되고,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여 코스프레 이벤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우려할 만한 상황인 것.
미국이나 중국, 대한민국 등 주변 국가들이 모두 찌질하게 묘사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 “이세계에 거점을 마련하여 무한의 자원을 얻은 일본을 질투하는 병신국가”들로 묘사되고, 그에 대한 이들 국가들의 조치 또한 NGO를 가장한 테러집단을 일본에 파견하여 방해공작을 펼치다가 자위대에 의해 순삭당하는 존재들로 등장한다. 그나마 작중에서 미국은 약간 개념을 탑재한 것처럼 묘사되는데, 아무래도 미국은 “형님 국가”니까 대놓고 디스하긴 어려웠나보다.
정식수입이 되고 있지 않은 이 작품이 한국에서 정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해들도 있다. 제발이지 개념 좀 탑재하자. 이런 쓰레기 작품이 아니더라도 볼 만한 작품들 수두룩한데 이걸 들여와서 뭘 하겠다는 건지.
당근, <감벽의 함대>와 마찬가지로, 볼 만한 가치는 전혀 없다. 손과 발과 눈과 귀가 오그라들어가는 경험을 하고 싶으시다면 적극 추천하겠다만.
3. 기신병단
1974년에 문단 데뷰를 한 이래, 약 100여편의 SF소설을 집필한 일본의 중견 작가, 야마다 마사키(山田正紀)가 1990년에서 1994년까지 총 10권에 걸쳐 간행한 소설을 베이스로, 1992년에 총 7편의 OVA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일단 장르 상으로는 거대 로봇물. 1998년에는 DVD로도 발매되었으나, 블루레이는 발매되지 않았다.
전후사정 따지지 않고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액션물”로서의 가치만을 따져본다면 사실 오늘 열거한 다른 애니메이션들에 비해 꽤 개념작에 속하고, 또 등장하는 메카들의 설정이 하이테크가 아니라 스팀펑크 요소가 가미된 부분(진공관이 막 터지고 그런다)이 많아 꽤 볼 만한 작품이지만,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역사관이 가히 충공깽스럽기 그지 없다.
<기신병단>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 시대인데, 태평양전쟁 및 중일전쟁의 책임은 모두 “관동군”과 “미지의 세계에서 온 에일리언 침략군”, 그리고 “나치스 독일”에 있으며, 일본은 전쟁의 책임이 없고 오히려 이들과 맞서 싸운 정의의 국가라는 설정이다.
게다가 사실 이 <기신병단>은, 중일전쟁 당시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해군의 상해특별육전대(上海特別陸戦隊)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작품. 상해특별육전대는 1927년에 결성되어 1945년에 국민당에 의해 강제해체 되기까지 18년간 존속했던 일본 해군 소속의 특수전투 담당 부대로, 일본에 의한 중국침략의 첨병역할을 한 부대이다.
소설과 애니메이션은 약간 그 방향성이나 설정이 조금 틀리다. 1937년 8월에 중국에서 활동 중이던 상해특별육전대가 미지의 세계에서 온 에일리언 부대와 치열한 사투를 벌인 후, 그 전투에서 발견한 거대 로봇의 잔해에서 자가증식이 가능한 이른바 “모듈”이라는 유닛을 발견, 이를 이용하여 일본을 비롯한 당시 열강국가들이 모두 미지의 기술을 응용한 거대 로봇, 즉 기신(機神)의 개발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소설과 애니메이션이 동일하나, 소설에 등장하는 기신병단은 상해특별육전대 소속 장병들을 중심으로, 일본군으로만 편성된 부대로 등장한다. 반대로 애니메이션의 경우, 여기에 영국, 미국, 프랑스로부터 각각 1명씩 조종사가 파견되어 편성된다는 설정.
스토리의 대부분이 유럽전선에서 “나치스 독일” 및 “외계인”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주요 등장인물들 및 기신병단의 주요 멤버들이 일본인들인데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서의 일본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2차 대전과 태평양전쟁 발발의 책임은 일본에 있지 않다는 우익 사상이 그대로 녹아있는 셈.
여담이지만, 이 애니메이션, 국내에서도 투니버스를 통하여 방영된 적이 있고, 한때는 로봇물을 지향하는 매니아들로부터 “나름 볼 만한 개념작”으로 통하기도 했다.
Aㅏ. 원자폭탄을 뚜드려 맞는 곳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아닌, 에일리언 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유럽으로 등장한다.
4. 라임색 전기담
러일전쟁을 테마로 삼고 있는 동명의 에로 게임을 뽕빨물 애니메이션으로 승화시킨 괴작 중 하나. 원작 게임은 2002년에 처음 등장했다. 개발 및 제작사는 역시 에로게임과 미연시로 유명한 élf. TV 애니메이션은 2003년에 방영되었으며, OVA는 2004년에 제작되었다. 스핀오프격의 <마작게임>이나, 선정성을 낮춘 전연령판이 플레이스테이션2용 버전으로 2004년에 등장했다. 속편도 존재하는데, <라임색 류기담X(らいむいろ流奇譚X)>이라고 한다. 게임이 먼저 출시되었고, 이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이 되었다.
일단은 “학원물”이라는 배경을 잡고 있지만, 이들 다섯 소녀들이 모두 악의 무리와 싸우는 비밀 조직에 속해 있다는 설정. 참고로 애니메이션과 게임 모두 주인공은 이들 다섯 소녀의 “담임 선생님”이다. 이것만 봐도 이미 막장인 셈인데..ㅎㅎ
작품은 뤼순 전투를 메인 스토리의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들을 모티브로 한 “라임(礼武)”이라는 파워드 수트같은 갑옷 병기에 탑승하는 미소녀들이 “악의 무리(제정러시아군)”을 처단한다는 황당무계한 스토리. 제정 러시아군의 뤼순 요새는 단순히 악의 무리인 정도가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지구 정복을 꿈꾸는 사악한 악마가 지배하는 성채로 묘사된다. 약간 수위를 낮춰서 각각 TV 애니메이션과 OVA로 제작이 되었다.
속편인 <라임색 류기담X> 역시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봉천 전투를 테마로 삼고 있다. 여전히 제정 러시아군과 그 배후세력은 사악한 악의 무리라는 설정. 당연한 일이지만, 러일전쟁의 피해 당사국인 중국과 한국에 대한 묘사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전작 및 속편에 대한 솔직한 감상평은, 역시 일본의 국뽕이 마구 들어간 <사쿠라대전>에 에로이즘을 적당히 섞어서 믹싱을 한 졸작이라는 느낌.
게임, 애니 모두 쓰레기에 불과하니 혹시 기회가 되더라도 볼 생각은 하지 말자. 그냥 미소녀+약간의 메카물+뽕빨물이라는 차원의 작품을 원한다면, “스트라이크 위치즈”나 “스카이 걸즈”같은 걸 보시는 게 더 좋을 듯 하다. 스트라이크 위치즈 조차 사실 우익 성향이 약간 녹아들어가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진 못하지만. 뭐, 스트라이크 위치즈 같은 경우에는 상대가 “미지의 생명체인지 유기물인지 무기물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추축국이고 연합국이고 뭐 이런 구분 자체가 없으니까. (모에선을 타지 못한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의 경우 에르빈 롬멜을 제외하면 그 묘사가 상당히 각박한 것도 스트라이크 위치즈의 특징인데 뭐 그건 다음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자)
5. 마법과고교의 열등생(魔法科高校の劣等生)
역시 원작은 소설. 일본의 모 인터넷 투고 사이트에서 연재를 하던 사토 츠토무(佐島勤)에서 연재하던 소설이 2011년 3월에 이르러 덴게키문고에서 정식 라이트노벨 작품으로 출판하면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소설이 정식 간행되면서 투고 사이트에서 연재하던 분량은 현재 모두 삭제 처리된 상태.
인터넷에서 떠돌던 이 소설을 발굴하여 세상에 내놓은 이는 덴게키문고의 괴물 편집자로 유명한 미키 카즈마. 그가 발굴한 소설들은 히트작이 많은 편인데, 대표작으로 <작안의 샤나>, <소드 아트 온라인>,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등이 있다. <금서목록> 시리즈와 <초전자포> 시리즈를 세상에 알린 인물도 미키 카즈마.
동명의 애니메이션은 2014년 4월에 방영되었다. 소설의 일본 내 인기를 고려한다면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속편 애니메이션이 제작, 방영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당연히 소설은 국내에선 정식 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애니메이션의 경우 어둠의 경로로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나이 어린 덕후들 중에선 이 작품을 상당히 선호하는 경향까지 보여 마냥 두렵기만 하다. 적어도, 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이런 애니메이션은 보지 말자. 작품성은 쓰레기에 가깝고, 내용은 말할 것도 없이 쓰레기다.
제목만 보자면 뭔가 판타지계열의 이야기인 듯 싶고 실제로도 판타지적 요소(마법)을 가미한 SF 작품이지만 껍질을 까서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일본”의 이야기다. 기본 플롯을 요약하자면, 우연한 계기로 마법의 존재가 세계적 규모로 인지되고 있고, 이 마법이 중요한 에너지원임과 동시에, 사회 활동을 하기 위한 기본 소양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는 근미래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학원물”이다.
단, 일단 세계관은 마법이 발견되면서 세계대전이 한차례 크게 발발했고, 그로 인하여 세계의 세력구도가 변모해버린 미래세계라는 설정이지만, 북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이 모두 큰 변혁을 겪은데 비해 일본은 현재와 동일한 영토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전쟁에서 일본이 상당히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 그리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제국주의 국가로서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는 등, 지극히 우익적 사상이 짙게 깔려있는 작품이다.
즉, <감벽의 함대>와 <기신병단>, <라임색 전기담>이 과거의 일본을 한층 치켜세우는 국뽕 작품이라고 한다면, <Gate>는 현대 일본의 우경화를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 <마법과고교의 열등생>은, 우경화된 일본이 세계 전황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국가로 변모한 미래세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시바 타츠야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마법실력을 갖춘 능력자로, 세계 전황을 뒤흔들어놓은 숨은 전쟁영웅이라는 설정.
이 주인공의 경우에는 “능력만 있으면 다소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대놓고 차별해도 문제없고 능력이 없으면 차별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요상망칙한 사회 진화론을 탑재한 인물인데, 작중에선 차별당하는 사람들이 이에 반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게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다.
<GATE 자위대, 저 땅에서, 이처럼 싸우도다>가 해외에서 “일본판 인디펜던스 데이”라는 정도로 받아드려지고 있는 데 비해, 본 작품은 “심각한 역사왜곡 및 위험한 제국주의적 발상과 요상망칙한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차별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작품”이라고 처절하게 까이고 있다. 특히 영미권 국가들에서 그 비판의 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영미권 최대의 일본 애니메이션 전문 리뷰 사이트인 마이아니메리스트에서는 “사회진화론에 입각하여 차별을 정당화시키고 있으며, 일반적인 작품에서는 악역이 가질 법한 사상을 주인공이 갖고 있는데 심지어 이를 시청자들에게 강요하고 있으며, 제국주의적 선민사상과 침략주의를 정당화하고 있고, 마지막으로는 여성에 대한 정형화된 남성우월주의자들의 편협한 사고방식까지 강요하고 있는 쓰레기 작품”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시아 국가들, 특히 과거 일본에 지배를 당하거나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받았던 국가들에서 비판을 받는, 우익 성향의 일본 애니메이션들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경우가 많은 영미권 덕후들 사이에서 이 정도 평가가 나왔으면 뭐, 할 말 다 한 셈이다.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이가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 없어>를 담당한 일러스트레이터와 동일한 관계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디자인은 모두 예쁜 편인데, 이런 부분에서 낚이지 말자. 손발이 오그라들고, 정신이 멍해지고, 화가 치밀어오르는 내용으로 가득찬 쓰레기 작품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아래는 끝판왕 5선에 넣을까 고민하다 제외시킨 다른 “우익성향 애니메이션 3선(덤)”이다.
우익성향 애니 덤 3선
A. 헤타리아 ( ヘタリア Axis Powers )
뭐든지 의인화시켜 버리는 일본에서 등장한 국가를 의인화한 웹툰 베이스 애니메이션. 사실 애니메이션보다 웹툰이 더 유명한 편.
심각한 역사 왜곡과 식민주의/제국주의에 대한 왜곡된 논리가 펼쳐지고 있는데 캐릭터 디자인은 의외로 귀여운 편이라 해외 코스프레 행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각 국가의 묘사에 대해서는 납득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유머 감각이 유쾌하지만도 않다. 뭐 굳이 찾아서 읽거나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거나 하는 것을 추천해드리고 싶지는 않다.
<헤타리아>는 솔직히 개인적으로 우익 애니메이션/만화라기보다는 그냥 작가의 역사인식 수준이 심각하게 낮은 저질 코메디물이라고 생각한다.
B. The Cockpit
마츠모토 레이지의 OVA 작품인 <The Cockpit>을 단순 극우 성향 애니메이션이라 분류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 3개의 짧은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작품인데, 1화는 공상과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3화에서는 나름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기 때문.
문제는 2화. 이 작품을 옹호하는 분들은 카미카제(神風) 공격에 오오카(櫻花)에 탑승하는 자살특공대원들의 고충을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 좀… 아니… 많이 껄끄러운 게 사실이다. 故 타카쿠라 켄이 출연했던,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특공대원이 전쟁이 끝난 한참 뒤에 같은 부대에 있었던 한국인 조종사의 집에 찾아가 사죄를 한다”는 이야기를 그린 <호타루>라는 영화가 있는데, 오히려 그 작품을 감상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 <호타루> 조차 한국에서는 ‘우익 영화’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C. 반딧불의 묘
사실 <반딧불의 묘>라는 작품은 우익 성향의 작품은 전혀 아니다. 원작 소설을 집필한 故 노사카 아키유키는 생전 일본의 우경화를 통렬히 비판하고 평생을 평화주의+진보 노선의 길을 걸은 시민 운동가였고, 감독을 맡은 타카하타 이사오 역시 그러하다. 이 작품은 노사카 아키유키 본인의 경험담을 소재로 한 작품이기도 하다.
유독 한국에서만 “우익 성향의 애니메이션”으로 소개가 되는 경우가 잦다. 아무래도 스토리 전개상 주인공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일 것이다. 주인공 세이타와 세츠코는 아버지가 일본해군의 장교인, 나름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즉 세상 물정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고, 이 아이들의 눈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것이기 때문.
그러나 노사카 아키유키와 타카하타 이사오는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도 고생했다”는 식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려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세이타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고 결국에 자신의 여동생이 영양실조로 죽어버리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것=당시 일본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일본의 문부성이 이 애니메이션을 “피해자 코스프레용”으로 남발 상영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애니메이션 역시, 원작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신랄한 비판이 많이 중화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 그래서 이 작품은 좀 애매모호하다.
원문: 성년월드 흑과장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