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의원이 컷오프됐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컷오프는 ‘설마 정청래를…’이라는 생각 때문에 애써 외면했던 것일 뿐, 실상 최근 김종인 대표의 언행에서 이미 예상되어 있었다. 많은 이들과 ‘애석함’을 공유하면서도, 몇 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햇볕정책 재고 가능성 시사, 여기저기 나대지 말고 본인들 일에나 집중하라는 민주노총에 대한 훈수, 필리버스터 중단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김종인 대표가 이끄는 현재의 더민주당은 그들이 불필요하고 이로울 게 없다고 여기는 ‘곁가지’들을 계속해서 쳐내면서 전선을 좁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경제/민생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경제/민생에의 집중
나는 이런 입장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유능한) 경제정당’, ‘민생정당’이라는 모토는 언제나 내걸었던 게 사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이제껏 그런 시도들은 물거품에 그쳤고, 뭔가 비전문적인 ‘뭘 모르고 하는 소리’ 정도로 치부되어 왔다. 바로 그런 면에서 이번 김종인 체제는 그 어느때보다도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실제로 어떤 ‘실력’을 갖췄는지와 무관하게, 그의 말에는 ‘무게’가 있고, ‘권위’가 있다. 실제로 만약 더민주당이 경제/민생 영역에서 핵심 전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그들에게 ‘승리’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이 ‘승리’라는 게 실제로 어떤 내용이냐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김대표 스스로는 현재 의석수를 확보하는 선 정도를 염두에 둔다고 밝힌 바 있다.
둘째, 위와 같은 취지에서 ‘막말 정치인’의 입을 막고 그에게 공천을 주지 않는 것을 이해하더라도 이러한 소극적인 조치들 말고 경제/민생을 위한 적극적인, 좀 더 포지티브한 조치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새로 영입한 경제전문가라고 해봐야 주진형 사장 정도뿐이고, 나오는 정책들도 새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을 공약들이 김종인 대표의 ‘권위’가 얹히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과연 앞으로 한달 이상의 기간을 끌고갈 수 있을까? 지켜볼 지점이다.
기존의 야당이 고수해왔던 노선과의 ‘성격 차이’
셋째, 김종인이라는 인물 때문인지, 현재 더민주당이 내놓고 있는 경제/민생 공약들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 공약의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이제껏 우리나라 야당이 표방했던 어떤 ‘성격’과는 다소 차이가 느껴진다는 얘기다.
‘경제민주화 1호 공약’으로 제시된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안만 봐도 그렇다. 정확히 말해 이것은 국민연금기금으로 공공투자(임대주택 건설 등)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현재 국민연금기금 중 120조원 정도가 국채에 투자돼 있는데, 이 국채투자액을 매년 10조원 씩 늘리겠다는 것일 뿐이다. 물론 정부는 그 10조원을 공공주택건설에 써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국민연금기금의 관심사는 아니다. 만약 이번 더민주당의 공약이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안’이라면, 그간 국민연금기금은 120조원만큼 ‘공공투자’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더민주당의 ‘경제민주화 1호 공약’은 공공임대주택을 더 짓겠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토건 공약’일 뿐이다. 과연 이것이 극단적인 양극화 시대에 대한민국의 제1야당이 내놓을 법한 ‘경제민주화 1호 공약’인가?
이러한 변신(?)에는 양가적인 성격이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그간 야당의 취약점으로 꼽히던 부분을 아주 ‘그럴싸하게’ 메워줬다. 주거공공성 증대라는 전통적인 가치 실현에 덧붙여, 경제성장에의 기여는 물론 토건족에의 (다소 은밀한) 봉사까지 동시에 달성하는─그러나 아주 ‘우아하게’ 달성하는─정책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됨으로써, 더민주당은 어쩌면 ‘좋은 새누리당’ 정도로 되는 것은 아닌가.
넷째, 바로 그런 의미에서 정청래 의원 컷오프의 의미도 곱씹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바로 정청래야말로 더민주당 내에서 그간 ‘야당다운 민생’을 챙겼던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그는 더민주당의 어떤 국회의원보다도 진정성 있게 굴뚝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세월호 유족들을 대변해왔지 않은가. 당 지도부의 온건함을 결연히 비판하고 청와대에 용기 있게 맞선 것도 그였다. 물론 그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민주당 당내에서는 소수파에 지나지 않는 그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의원들을, 그 중 누구도 그를 대표로 옹립한 적도 없고 그 스스로도 그런 자격을 내세우지도 않았지만, ‘본의 아니게’ 대변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 국면에서 더민주당이 위 문제들을 어떻게 다뤄나갈지, 예컨대 세월호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바뀐 더민주가 표방하는 경제/민생의 성격은 무엇인가?
요컨대, 현재의 더민주당이 표방하는 경제/민생의 성격은 무엇인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것은 과연 이제껏 더민주당이 다소간 불안하게나마 견지해왔던 재벌 해체, 사내유보금 환수,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가계부채 완화/탕감, 부자증세(법인세 인상, 최고소득세율 인상) 등의 모습으로 나올 것인가? 최근 더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은 이에 대한 대답을 부정적인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한편으로 이러한 변화는,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을 때 그간 더민주당에 ‘믿음이 안 가서’ 표를 주는 데 주저했던 많은 ‘중간층’들을 흡수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이걸 ‘우클릭’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동안 더민주당 내에서 나왔던 ‘우클릭’론이랑은 결이 조금 다르다. 그간 더민주당 내의 우파들이 주장한 ‘우클릭’이 ‘우리도 재벌이랑 친하게 지내자’라는 (심하게 말해 ‘양아치’ 같은) 방식이었던 반면(사실 이미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번 ‘우클릭’은 좀 더 ‘고상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더민주당의 행보가 그에 대해 좀 더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길 기대하는 이들에겐 실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당 입장에서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조금 중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실망파’들은 진보정당으로 가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타나는 더민주당의 ‘(정제된) 우클릭’은 현재 거의 질식사하고 있는 우리나라 진보정치에 대해서도 일정한 공간을 열어주는 효과도 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거져 얻어지는 효과는 아니다.
또한 이번 더민주당의 ‘변신’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더민주당이 정청래 의원 정도의 목소리는 품어줄 수 있는 여유를 배양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아, 물론 현재의 방향이 전환될 가능성도 있겠다. 뭐든 유권자들 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원문: 김공회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