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미래>는 원화 환율의 특징을 제대로 설명하는 ‘유일한’ 책이다. 금융기관에서 오랜기간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한 저자가 실제 시장에서 움직이는 환율의 특징을 설명하고 향후 전망을 제시한다.
시중에 화폐·외환 관련 서적은 많다. 해외 저작물 중에는 외환시장 역사와 메커니즘을 다룬 양서도 꽤 있다. 하지만 대부분 기축 통화인 달러·유로를 중심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연화(Soft Currency)를 사용하는 한국의 특성을 설명하지 못했다. 또 우리나라 교수님들도 이론만 공부하고 외환시장 경험이 없으므로, 한국의 현실을 깡그리 무시한 소리를 지면에 늘어놓곤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보적으로 좋다. 저자의 오랜(23년) 경험과 이론을 함께 녹여서 외환시장을 제대로 설명하는 책을 엮어냈다. 초보자도 읽기 쉽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루고 있으며, 기관투자자가 오류를 범하기 쉬운 부분도 짚어준다.
이 책의 핵심은 ‘채찍 효과’와 원화 환율의 관계를 설명한 부분이다. ‘채찍 효과’로 한국의 경기변동과 환율 움직임을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다. 원화 환율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이유는 선진국의 소비지출 변화 때문이며, 결국 환율 움직임은 전적으로 선진국 경기에 달려있다.
선진국의 소비지출이 1%만 움직여도 한국의 수출은 5~10% 변동하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채찍 효과’ 때문이다. “채찍 효과란 채찍의 끝부분이 몇 미터 이상 움직이듯, 공급사슬의 가장 끝에 위치한 기업이 공급사슬의 중간에 있는 기업보다 월등히 큰 수요의 변화를 겪는 현상을 지칭한다”.
“채찍 효과가 발생하는 첫 번째 원인은 수요의 왜곡에 있다. 소비자의 수요가 갑자기 늘면 소매점은 앞으로 수요 증가를 기대하는 심리로 기존 주문량보다 많은 양을 도매점에 주문하게 된다. (중략) 즉 수요 예측이 공급사슬의 끝으로 갈수록 점점 더 심하게 왜곡되는 것이다. 공급하는 제조업체의 물량이 한정되어 있으면, 한꺼번에 많은 양을 주문하는 도매업체에 우선권을 주는 건 당연하다. 결국, 물건을 공급받기 위해서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더 많은 주문을 해서 공급을 보장받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수요는 극도로 왜곡된다.
공급사슬에서 채찍 효과가 발생하는 두 번째 원인은 소비자에게서 멀어질수록 대량주문 방식을 필요로 하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소비자는 소매점에서 물건을 한두 개 단위로 사지만 소매점은 도매상에서 물건을 박스 단위로 주문한다. 그리고 다시 도매점은 공장에 트럭 단위로 주문한다. 이처럼 공급사슬의 끝으로 갈수록 기본 주문 단위가 커진다.
채찍 효과가 발생하는 마지막 원인은 주문 발주에서 도착까지 발주 실행 시간에 의한 시차에 있다. 물건을 주문했다고 바로 물건이 도착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각 공급사슬 주체의 발주 실행 시간이 저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소매점이 도매점으로 주문했을 경우 물건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3~4일 정도라면, 도매업체가 생산업체에 주문했을 경우 물건을 받기까지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다. 즉 공급사슬의 끝으로 갈수록 이런 물류 이동 시간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처럼 발주 실행 시간이 길어지면 주문량이 많아지고, 이는 재고량 증가로 이어진다.”
따라서 미국의 소비지출이 조금만 움직여도, 미국 산업생산 증가율은 이보다 더 크게 변동하고, 한국 부품 공급업체 수출은 어마어마하게 크게 움직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채찍 효과’ 때문으로, 한국 기업이 공급사슬의 끝에 위치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채찍 효과는 우리나라 수출뿐 아니라 외환시장에도 큰 영향을 준다.
“글로벌 투자자는 선진국 경기가 좋으면 한국 등 개도국 자산에 투자하며, 반대로 선진국 경기가 나빠지면 한국 등 개도국 자산을 집중적으로 매도한다.”
채찍 효과 때문에 미국 기업 실적이 나빠지는 속도보다 한국 기업의 실적 악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이런 연결고리 때문에 선진국 경기가 안 좋아지면 한국 주식을 팔고 미국 주식을 사는 게 현명하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선진국 경기가 나빠질 때, 우리나라 환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환율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선진국의 경기와 소비 변화다.
아베노믹스를 긍정적으로 서술한 부분도 좋았다. 최근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서, 아베노믹스의 실패와 재앙적 결과를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장기 수요 침체를 경험한 일본은 어떻게든 인플레이션을 자극해서 경기침체를 막아야 했다.
“일본 정부가 찾은 처방전은 ‘전면적이고도 확고한 통화공급 확대 정책’이다. 디플레이션이 퇴치되기 전까지 지속해서 돈을 풀어 버리는 것. 그리고 이 정책이 앞으로 무한히 계속될 것이라고 믿게 하는 것. 이게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다. 일본은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통화공급 확대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못했다. “
1930년대 일본 중앙은행이 통화증발 정책을 시행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나아가 군부의 군국주의적 행동을 억제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지면서 기존의 통화정책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었고, 구로다 총재가 취임하면서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 기조가 일신”되었다.
일본의 실업률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는 등 아베노믹스는 분명한 효과를 낳고 있다. 일본의 적극적인 통화정책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도 필요하면 확고한 의지로 통화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
이 책은 전작 ‘원화의 미래’의 개정판이다. 하지만 절반 이상을 새로 썼기 때문에, 새 책으로 봐도 무방하다. 특히 유로·엔·위안의 미래를 다룬 부분은 우리를 둘러싼 경제역학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경제·환율·투자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