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새 갓종인에 빠졌다.
갓종인이 당대표가 된 후 그동안 민주당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하나 확연하게 증명되는 것 중 하나가 조직의 규율이다. 그 전에는 사실 규율이라는 게 없었다. 정권과 첨예하게 부닥치는 핵심 쟁점을 두고 계파별로, 성향별로 나뉘어서 끊임없이 싸움을 계속했다. 중요한 건 내부 싸움을 했다는 게 아니라 ‘끝이 안 나게’ 싸웠다는 것이다.
당연히 민주국가에 민주 정당을 지향하는 정당 안에서 노선과 이념과 세계관에 따라 의견이 갈라지고 대립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새누리당조차도 자주 당내 갈등과 내분을 겪는 건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책임 있는 조직이라면은 어느 시점에 가서는 합의든 쪽수든 리더의 결단이든 어떤 방법을 써서든 통일된 최종 결론에 도달하여 해당 이슈에 대해 내부 분란과 대립을 완전히 끝내고 그다음부터는 당 전체가 유기적이고 일사불란하게 통일된 조직적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냥 운동이 더 중요한 소수 정당이 아니다. 인구 5천만 명의 전 세계 GDP 10위권의 거대한 나라를 책임 있게 운영하는 권리를 획득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는 수권정당이다.
하지만 그간의 행태는 책임 있는 수권정당의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어떤 쟁점 이슈를 앞에 두고 끝이 나지 않게 내부적으로 싸웠다. 온건파, 강경파, 타협파, 투쟁파, 등등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서 계속 싸웠고, 설사 결론을 낸다 하더라도 결론을 내려야 하는 골든 타임을 한참 벗어나서 나중에야 뒷북 치며 결론을 냈다. 그리고 설사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의원들은 끊임없이 개인 성명, SNS를 통해서 당의 결정에 불복하고 지속해서 딴소리를 내왔다.
이러한 무질서, 무정부 상태를 혹자는 민주주의의 당내 구현이라는 핑계로 억지로 미화했으나 국민이 보기에는 100여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조직원들도 통제를 못하는 심히 불안하고 한심하고 못난이들 집합소로 비추어 졌을것이다. 100여 명도 통제를 못 해서 쩔쩔매고 무정부 상태를 보여주는 데 5천만 명의 국가를 운영하는 권한을 어찌 안심하고 맡길 결심을 할까 싶을 정도이다.
민주주의와 조직적 일사불란함은 절대로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다. 되려 얼마든지 병행될 수 있는 가치이다. 어떠한 조직이 민주적이면서 얼마든지 조직적으로 유기적이고 일사불란할 수 있다. 통일된 결론이 있기 전까지 얼마든지 이견과 반대를 말할 수 있으며 끝장 토론도 가능하지만 적절한 시점이 되면 어떤 방법으로든 최종 결론을 내고 거기서 마무리를 짓고 다음 이슈로 넘어가야 한다.
이게 현대적인 민주 정당이 수권 정당으로서 갖추어야 할 핵심 조직 역량이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부터 이러한 유기적이고 일사불란한 조직 운영으로 국민께 믿고 맡길만한 책임 있는 정당으로 어필 하는데 실패하였고 이는 선거 패배의 중요 원인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민주당 안에서도 특정 핵심 이슈에 대해 최종 결론을 안 짓고 질질 끌어가는 상황이라든지 혹은 결론이 났음에도 자꾸 뒷말이 나오고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이는 행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슈든 무조건 장렬한 전멸도 각오하는 옥쇄를 강요하는 당 외부의 극렬 여론이나 전통 진보 야권 SNS 여론 같은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당내의 수많은 계파와 나 잘난 맛에 사는 의원들을 모두 승복시키고 최종 결론을 도출하여 현재 이슈를 잘 마무리하고 다음 숙제로 넘어가는 그러한 종류의 책임 있는 민주적 리더쉽을 가진, 즉 베버식으로 말하면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갖추고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를 구분할 줄 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나타나지 못했었다.
나는 갓종인한테서 그간 야당에서 결핍되었던 규율과 질서를 부여하며 유기적이고 일사불란한 조직을 구현하는 책임 있는 리더쉽을 발견했고 그래서 무척이나 들뜨고 고무되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기존에 구축된 시스템을 무시하고 카리스마적 인치에 너무 의존하는 등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오기 전까지 멸망 직전의 야당 상황을 보았을 때 순기능이 역기능을 압도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총선 이후 그가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민주당이 또다시 과거의 무질서하고 무정부 상태도 되돌아가지 않을까 무척이나 걱정된다. 부디 현재의 김종인 리더쉽을 통해 야권이 그간 부족했던 부분들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성찰이 이루어져 설사 그가 일선에서 물러나더라도 과거의 상태로 퇴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문: 한청훤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