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이른 시기부터 천재적인 재능, 타고난 독창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에게 열광하며, 또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 다른 어떤 이들은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나중에 가서야 뛰어난 혁신을 발휘하여 대성하는 사람들에게 열광하며, 또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 이 두 집단 중 어느 집단이 더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이 전자의 집단, 즉 빨리 성공하는 사람들을 더 잘 기억하고 또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기브 앤 테이크』 저자 애덤 그랜트의 신작이자, 창의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오리지널스』라는 책에서는 오히려 후자 쪽이 더욱 독창적인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것도 장기적으로. 반대로 처음부터 타고난 창의성을 발휘했던 사람들은 절정기가 이른 시기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학자 데이비드 갤런슨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독창성의 절정을 맞는 시기와 절정기의 지속시간은 사고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데, 관련 본문의 내용을 한번 들여다보겠다.
갤런슨은 창의적인 인물들을 연구한 결과, 혁신에는 서로 크게 다른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개념적 혁신가’들은 대단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그 개념을 실행하는데 착수한다. ‘실험적 혁신가’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식을 축적하고 진화한다. 그들은 특정 문제를 다루면서도 처음부터 특정 해결책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실험적 혁신가들은 미리 계획하는 대신 일을 진행해가면서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간단히 말해, 개념적 혁신가들은 단거리 스프린터인 반면, 실험적 혁신가들은 마라톤 선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어느 특정한 한 분야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그 사례가 발견되는데, 경제학 분야의 경우 개념적 혁신가들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연구를 평균 41세 전에 했지만, 실험적 혁신가들을 평균 61세에 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o2o 비즈니스를 포함한 스타트업 대표들도 개념적 혁신가라고 할 수 있다(물론 사기꾼들도 정말 많다는 걸 이쪽 업무에 있으면서 깨달았지만). 이런 혁신가들이 초기에 주목을 받는 이유, 즉 개념적인 통찰력이 인생 초기에 꽃피는 이유는 신선한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할 때 놀라울 만큼 독창적인 통찰력이 발휘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독창성이 고갈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다름 아니라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과거에 자신이 쌓아올렸던 업적에 매몰되어, 사고방식이 경직되고 결국 비슷한 행동만 하는 자기복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개념적 혁신가들이 나이가 들수록 젊은 날 이룬 뛰어난 업적에 버금가는 업적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지닌 독창성이라는 마법의 묘약이 고갈되어서가 아니다. 경험이 축적되는데 따른 결과이다. 개념적 혁신가의 숙적은 경직된 사고방식이다. 개념적 혁신가들은 젊은 시절 자신이 이룩한 중요한 업적의 포로가 되기 쉽다.”
인상 깊은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고 오히려 포로가 되어버린채 발전은 커녕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사례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가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어떤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누군지 특징지어 말하진 않겠으나, 한때 호평과 찬사를 무수히 받았던 어떤 작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가 가졌던 참신한 시각이 사라지고, 과거에 했던 말만 에둘러서 반복만 하는 신간을 보면서 실망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뒤늦게야 주목받는 대기만성형 스타일인 실험적 혁신가들은 개념적 혁신가들에 비해 어떤 점에서 뛰어날까? 이 실험적 혁신가들은 장기간에 걸쳐서 기술을 갈고 닦고 연마하게 되는데, 이렇게 축적된 기술은 지속해서 혁신의 무한한 원천이 된다고 저자는 주장하면서 유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사례를 든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책 전반에 걸쳐 손꼽히는 대목이었다.
” 가장 많이 인용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운데 그가 20대에 지은 시는 단 한편도 없고, 30대에 지은 시는 겨우 8%이며, 40대에 가서야 마침내 재능이 활짝 꽃폈다. 그리고 60대에 다시 절정기를 맞았다.
프로스트는 탐험가처럼 세상을 탐험하면서 시를 창작하는 데 쓸 재료들을 모았고,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나 단어의 조합, 실제로 말할 때 쓰이지 않는 단어나 단어의 조합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프로스트는 인정했다. 각각의 시는 다양한 요소들을 한데 섞어 놓는 실험이다. 프로스트는 ‘작가가 놀라지 않으면, 독자도 놀라지 않는다’고 즐겨 말하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를 짓기 시작할 때,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정해놓고 시를 짓고 싶지 않다. 나의 작품이 끝이 어떻게 될지 나중에 알게 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
초기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치는 실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나이들고 전문성이 축적되어도 창의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게 저자가 말하는 핵심 요체이다.
시인보다 오히려 투자자가 되면 좋았을 정도로 투자 서적에서 많이 인용되는 마크트웨인도 그랬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도 역시 결말이나 줄거리를 정해놓지 않고, 소설을 진행해나가면서 유연성 있게 내용을 수정해나갔는데 그렇게해서 탄생한 작품 하나가 그 유명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었던 것이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책을 통해 “호구는 마냥 호구가 아니다”라면서 통찰력있는 스토리를 제공했던 애덤 그랜트는 『오리지널스』를 통해선 창의력과 독창성은 타고난 것도 아니고 한 분야에 깊은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풀어나간다. 사례 위주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는 데 부담도 없고, 저자가 매 챕터마다 주장하는 개념들도 본론에 나오는 사례들을 읽어보면 어떤말 하는지 이해가 잘될 정도로 매끄럽게 스토리를 잘 엮어나간다.
전작이 워낙 뛰어나서 이번에는 좀 아쉬운 부분도 있고, 이게 정말인가 하면서 데이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 하는 내용도 있다. 또 현실적으로도 씁쓸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집단에서 발언을 제대로 해서 사람들을 설득시키려면, 능력과 지위를 어느 정도 갖추어야만 한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꽤나 건질 만한 것들이 있는 책이다.
참, 헤지펀드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이 달리오(Ray Dalio)의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의 성공 비결이 직원들의 의견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업문화에 있다고 하는 부분도 매우 흥미로우니, 레이 달리오 팬이라면 이 부분을 놓치지 말고 읽어보길 바란다.
끝으로 서평을 마치기 전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어느 모임 혹은 집단에 가면 처음부터 눈에 띄는 스타일은 아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그 집단에 융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즈음, 그제야 눈에 띄는 스타일이랄까.
아, 눈에 띈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나의 행동과 말을 주목하고 칭송하는 게 아니라, 처음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들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안다는 뜻이다. 더 고품격의 표현을 빌리자면, 처음부터 광역 어그로를 시전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가서야 시전한다는 걸로 보면 된다)
삶의 전반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타고난 재능이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세상의 주목을 받고, 영화나 드라마처럼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해 부와 명예, 존경 같은 것들을 이른 시기부터 받는 스타일이 아닌 대기만성형 스타일이라고 스스로 인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더 동기부여가 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험적 혁신가식 자세를 취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느리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원문: Got to Be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