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쇼(no-show)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노쇼’는 원래 항공사의 용어라고 합니다. 예약한 손님이 나타나지 않거나, 티켓팅을 했는데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는 경우에 항공사 직원들은 보통 ‘노쇼’라 불렀다고 하는데요, 작년 유명 쉐프들이 ‘NO SHOW NO CHEF’라는 공익광고를 만들어서 방송하면서 일반인들도 ‘노쇼’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위 공익광고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음식점 예약 시 위약금 또는 보증금을 요구하는 음식점이 늘고 있는 것 같고, 노쇼에 대한 많은 논의도 진행 중인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는 ‘노쇼 추방’ 운동을 전개한다고 대외적으로 홍보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들 아시는 카카오 택시의 경우에는 ‘노쇼’가 생각 외로 많은 것으로 보이고, 카카오가 새로운 사업으로 준비 중인 카카오헤어의 경우에도 ‘노쇼’를 예방하기 위한 선결제나 위약금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합니다.
최근 조선일보는 위약금 제도를 도입하고 ‘노쇼 족’이 줄었다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기사를 검색해 보면 주로 위약금 제도의 효용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시는 것 같고, 이에 대한 법률적인 분석 기사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예약이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노쇼’와 관련한 법률적 쟁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한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한가?
항공권을 예약하거나 호텔을 예약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계약이 성립한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은 음식점이나 유명한 음식점을 예약한 때에도 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음식점에서 먹을 음식도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지만, 대법원은 계약의 주요 내용에 관하여 합의가 있으면 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판시하고 있기 때문에 1. 음식점 이용 일시, 2. 음식점 이용 인원수만 특정되어도 계약은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쇼’는 유효하게 계약을 체결한 계약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계약해지’가 무조건 잘못된 것인가?
‘일방적 계약 해지’라는 말만 들으시면 그럼 ‘계약 해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점 예약 계약이나 여행 계약은 임의 해지의 자유가 인정되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1주일 전에 예약하고 3일 전에 예약을 취소 즉 예약을 해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쇼’는 계약을 해지한다는 표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계약 해지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즉, 예약한 시간에 예약자가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사장님은 예약자가 계약을 해지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예약자 속마음으로만 계약을 유지할 의사가 없는 상황에 해당하기 때문에 계약은 해지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고 보아야 하고, 예약 시간에 예약자가 나타나지 않는 방식으로 묵시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때에 비로소 계약이 일방적으로 해지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 대법원은 ‘노쇼’와 관련한 직접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계약 교섭을 부당하게 파기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계약이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에 따라 지출한 비용 상당을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판시(2001다53059)한 적이 있는데, 위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노쇼’의 경우에도 예약자가 예약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계약을 중도에 해지한 것을 부당한 계약 파기 또는 불법행위로 해석하여 예약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노쇼’로 인한 손해는 어떻게 산정해야 하는가?
음식점 사장님과 예약자가 사전에 위약금이나 보증금과 관련한 합의를 하셨다면, 그 합의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그러나 합의를 하지 않은 경우는 어떨까요?
결국, 민사상 일반 손해배상의 법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손해 산정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음식점을 기준으로 손해를 생각해보면,
- 식재료 비용
-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함에 따른 손해
이 정도입니다.
- 식재료 비용 전부를 손해로 청구할 때, 상대방 즉 예약자는 뭐라고 할까요? 식재료가 바로 부패하지 않는 이상, 다음 날 다른 음식으로 사용하면 되는거 아니냐? 무슨 손해가 있었냐?
-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함에 따른 손해를 청구할 때, 예약자는 뭐라고 할까요? 내가 예약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손님이 왔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하냐? 손님없는게 내 책임이냐?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따라서 손해배상을 청구하실 때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먼저, 1. 식재료 비용과 관련하여서는, 식재료는 신선도가 생명이고 준비한 재료를 예약일에 사용하지 못하면 다음날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일종의 감가상각비 상당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인정 금액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2.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한 손해와 관련하여. 이 부분도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10개의 테이블이 있는 음식점이 있는데, 예약을 한 시간에 손님이 많아서 예약한 1개 테이블을 제외한 나머지 테이블이 모두 만석이 되었다면 예약이 되어 있었던 나머지 1개의 테이블에 손님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1개 테이블 평균 매출액이 손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지만, 구체적인 손해액 산정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없는 식당이고 예약 테이블 이외에도 여러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면, 예약과는 상관없이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식당에 손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음식점 사장님의 ‘노쇼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입증 부족으로 기각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음식점 사장님에게 큰 피해를 주는 ‘노쇼’. 법리적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손해배상액을 입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게 현재 저의 판단입니다.
결국 현재 시점에서 가장 유효 적절한 방법은, 예약 손님과 계약 해지 및 ‘노쇼’를 대비한 손해배상액 약정을 하는 것입니다. 위약금 약정 자체가 지나치게 부당하지 않다면 그 효력은 유효하기 때문에 손해액 입증의 어려움을 피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보다는 에티켓이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명언과 함께 말이지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원문: 법무법인 해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