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꾸미자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상수동 이리까페가 끝내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유는 지긋지긋한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입니다.
현재까지의 팩트를 나열해보겠습니다. 2004년 서교동에서 처음 문을 연 이리까페는 이미 한 차례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쫓겨나, 200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습니다. 당시 상수동 와우산로 3길은 시끄러운 홍대 골목에서 벗어난 조용한 주택가에 불과했습니다. 주변 상권이라는 것 자체가 미미했고, 복잡한 홍대 앞 분위기에 질린 예술가들은 이 한적한 뒷골목까지 기꺼이 찾아와 공간을 꾸몄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들자 근처 거리가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드나들던 거리의 특성상 개성 있는 까페가 점차 들어섰습니다. 이 거리의 분위기가 입소문을 타자 홍대에서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습니다. 그러자 거리에는 술집과 편의점들로 채워졌고, 현재의 ‘핫’한 골목으로 변모했습니다.
이리까페는 그 골목의 변화에서 항상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을 몰려들게 하고, 특색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전부 이리까페의 공입니다. 그 결과로 얻은 것은 법적인 상한선을 넘어가는 월세의 인상이었습니다. 당시 200만 원 초반이던 월세는 현재 두 배가 넘도록 올랐습니다. 이리까페 사장님은 이 공간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 매년 건물주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며 어려운 운영을 계속해오고 있었습니다.
거리가 발전하자 누군가는 큰 이익을 봤다
건물주는 조용한 주택가 사이의 한 건물에 불과하던 자신의 부동산이 가치가 급상승하자, 자본주의 논리대로 이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투자를 정말 잘했다고도 생각하겠지요. 단순히 월세를 몇 배쯤 더 받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습니다. 자기 통장에 찍히는 막대한 금액을 보고 싶었는지, 그는 현재 세입자와는 상의도 없이 시세에 웃돈을 얹어 받아 수십억에 건물을 팔아버리고 맙니다.
무슨 이유인지 이전 건물주와 관계자들은 새로운 건물주가 누구인지 세입자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어찌 되었건, 당신이 웃돈까지 얹어 수십억을 투자해 건물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해봅시다. 현재 근근이 월세를 감당하고 있는 이리까페를 내버려 둘까요? 아니죠. 자신이 생각하는, 더욱 수익이 많이 나는 공간을 만들 겁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처럼 프랜차이즈 커피숍 같은 것이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월세라도 훨씬 더 올려서 받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권리금은 증발할 것이며, 돈을 떠나 그 공간을 키워온 세입자에 대한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 자명합니다. 어느 경우에건 이리까페는 버틸 수 없습니다. 이게 곧 다가올 3월에 일어날 일입니다. 여기까지가 현재의 팩트입니다.
예술가들이 일군 공간의 가치
당연히 저에게도 이리까페의 추억은 많습니다. 각종 시 낭송회와 강독회에 참가했었고, 몇 편의 원고를 여기서 마무리했습니다. 출판 계약이나 미팅도 이 장소에서 했고, 하루 종일 앉아서 사방에 꽂혀 있는 책만 뽑아서 읽기도 했습니다. 가끔 공연을 보러도 올 수 있었고, 다른 분야의 동료들을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문인들끼리 다른 곳에서 모였어도, 꼭 마지막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공간으로 모이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각자의 예술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사진가는 자신의 사진을 전시했고, 시인은 사방에 자신의 시를 붙여 놓았으며, 음악가들은 자신의 음악을 선보였고,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내걸었습니다. 예술가라는 틀 안에서 모여 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같이 교류하고, 존중하고, 발전해갈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희 축구팀도 여기에서 생겼습니다. (사장님도 같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자발적으로 이 공간을 만들고 모여 서울에서 자생한 ‘살롱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감히 문화와 예술의 산실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공간입니다. 이곳이 없어지면 어디로 가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합법적이다
하지만, 앞서 나열한 팩트는 절망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합법적입니다. 그리고 진부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전형적이지요. 건물주들은 이윤을 추구하고자 할 뿐이고, 합법적인 한계에서 자신이 보유한 가치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 쫓겨나가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고로, 법적으로는 보상받을 방법도 전혀 없는 겁니다. 애써 공간을 일군 가치란 것은 누가 보상해준다고 법에 쓰여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런 과정으로 무난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혼자 벌어먹는 저에게,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닥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분명 부조리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법적으로 그릇되지 않았다는 점에도 막막합니다. 공간을 일군 대가로 받은 것은 역으로 인상된 월세였고, 그마저도 이제 당장 쫓겨날 위기에 처한 겁니다.
조만간 이리까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예정이지만, 현실적으로 이전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들처럼 감정과 인정에 호소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고, 결국은 비난받거나 패배하는 운명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소연하는 방법이 이리까페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인 것에도 참으로 답답합니다.
무엇이 처음부터 잘못되어 왔는지, 그 경제적인 논리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공간을 사랑했고, 또 지키고자 하는 사람으로 저는 일단 이 글을 적습니다. 그 온기, 그 마음, 그 음악, 그 사람들, 그 보냈던 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담배 연기 자욱한 틈으로 보이던 싯구, 언제나 미소 짓게 하는 사람들이 모여 나누었던 한담 같은 것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공간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주는 것입니다. 소박한 바람 아닙니까. 아무도 헤치지 않고, 무엇도 부수지 않고, 그냥 여기에, 이 모습 그대로 있겠습니다. 그게 정녕 불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원문: 남궁인의 페이스북
특성 이미지 출처: 이리카페 네이버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