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책 <통찰>에서
책 <통찰>의 저자 최재천은 국회의원 최재천이 아니라 이화여대 석좌교수이자 국내 최고의 생물학자 최재천이다. 그리고 이 책 <통찰>은 내가 군 복무 시절 우연히 끌림에 의해 구매했던 책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제목이 끌려서. 그 당시에 나는 통찰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지만, 통찰력을 길러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으니까.
어쨌든 당시에는 처음 몇 쪽만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내려놓았었는데 몇 개월 전 최재천 교수가 했던 인터뷰를 매우 감명 깊게 읽어 그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며칠 전에 고향 집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이번에는 제목뿐만 아니라 저자에 대해서도 호감이 생겨 다시 책을 집게 됐다.
간단히 소개하면 이 책은 최재천 교수가 생물학적 지식들을 바탕으로 자연, 인간, 사회 등 전반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접목해 풀어쓴 책이다.
모든 내용이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이 책 중에서 나를 잠시 멈칫하게 했던 그의 통찰 한 조각을 소개하려 한다. 이 챕터의 제목은 ‘SNS와 페로몬’이다.
생물의 체내에는 세포 간의 정보 전달을 돕는 화학물질 ‘호르몬’이 존재하는데, 이와는 달리 몸과 몸 즉 개체와 개체 간의 정보 전달을 돕는 화학물질인 ‘페로몬’도 있다. 때문에 호르몬이 몸 안에서 주로 혈관과 림프관을 타고 이동하는 반면 페로몬은 몸을 빠져나와 공기와 물 같은 매체에 의해 다른 개체에게 전달된다. 보통 개미나 나방 같은 곤충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데, 동일한 정보를 순식간에 전파하고 집단으로 유사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페로몬은 그 기능에 따라서 분비량과 지속 기간 등이 달라진다. 영역표시같이 오래 지속할수록 좋은 정보일 경우 비교적 다량으로 분비되고 장시간 유지된다. 반면 먹이가 있는 곳이나 위험을 알리기 위한 페로몬은 양보다는 개성과 휘발성이 강하다. 먹이나 위험이 사라진 후에도 길게 남아 있으면 헛수고를 부르기 때문이다.
- 영역표시 : 지속성, 다량
- 위험표시 : 휘발성, 개성
- 먹이 위치표시 : 휘발성, 효율성(길을 그릴 수 있어야 하므로)
그런데 최재천 교수는 여기서 한 번의 통찰을 더 했다. 인간은 소통의 방법으로 페로몬을 사용할 줄 모르지만, 확성기를 통한 고함이나 신문 등을 통해 페로몬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끝판 왕이 바로 SNS라고 한다. 하나의 정보를 뿌리면 SNS를 통해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같은 정보를 수신하고, 집단으로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면서, 페로몬의 기능에 따라 그 양과 지속성이 달라지는 것처럼, SNS도 기능에 따라 전략적으로 연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글을 마쳤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나름 SNS로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최재천 교수가 무심하게 던진 통찰에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SNS가 기업들의 소통 창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각해 봐라. 우리들 중 기업 페이지와 대화하고 싶어 페이스북에 가입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제한적인 소통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콘텐츠를 통해 자신들이 어떤 정신과 신념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인지 보여주는 것, 즉 브랜딩이 가능하다. 또한 구인구직이나 이벤트같이 자신들과 구독자가 직접적으로 맞닿아야 하는 기능도 가능하다. 단순히 소통이 아니라, 구독자들에게 뭔가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입사 지원의 경우 취직이라는 기회를 주는 것이고 이벤트의 경우 상품을 주니까. (그 외에 사실 기업이 지껄이는 대부분의 말들에 우리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기업보다 오히려 최근에는 매체나 언론사 등의 SNS 활용이 두드러지는데, 이들이 SNS를 활용하는 이유 역시 소통이 아니라 정보 제공에 가깝다. 페로몬의 본래 기능과 더 부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특히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강력한 이슈를 가지고 있는 뉴스들이다. 개미들이 강한 페로몬을 활용해 자신들의 영역 내에 위험 요소를 빠르게 알린다면, 인간들은 SNS를 통해 지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빠르게 알린다.
이 경우 비교적 그 역할은 잘 이뤄진다. 위험을 알리는 페로몬이 개성이 강하며 빠르게 멀리 퍼져야 하는 것인데, 그 사안이 가지고 있는 심각성만으로도 충분히 그 기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속보를 구구절절 차분하게 설명하는 뉴스는 없으니까.
그런데 참 못하는 기업들은 많다
앞서 언급한 SNS 활용법 중 강력한 이슈 전달과 달리, 브랜딩과 이벤트는 참 못하는 기업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서 굳이 페로몬과 SNS를 비교해 보겠다.
일단 브랜딩은 영역표시 페로몬과 유사하다. SNS상에서 특정 구역을 기업들이 나눠 갖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신들이 어떤 기업인지 알려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역표시 페로몬의 특징은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양이 많고 오래 간다는 것이다.
이를 SNS로 대입해 보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수 있는 콘텐츠들이 일단 양적으로 많이 쌓여야 하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들이 아이덴티티에 맞게 일관성을 띄어야 한다. 영역 표시를 하는 페로몬의 냄새가 맨날 바뀌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페이스북에서 소통 좀 한다는 페이지들의 특징은 지속성과 일관성이다. 열린책들이 출판사 중 비교적 독자와의 소통을 잘 하고 있는 이유, 또 기업은 아니지만 고양시청이 자신들만의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이 잡은 아이덴티티를 일관적으로 꾸준히 밀고 왔다.
여기에 추가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게 ‘구애의 페로몬’이다. 구애 페로몬은 이성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달콤해야 한다. 우리 회사가 전달하는 아이덴티티와 콘텐츠가 과연 달콤한지 생각해볼 일이라는 것이다. 브랜딩이란, 단순히 성격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눈길을 끄는 매력도 포함되야 하기 때문이다.
SNS에서의 매력이란, 구독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다. 대부분 인기있는 페이지들을 보면 구독자들에게 명확한 편익을 준다. ‘세웃동’같은 유머 페이지는 웃음을, ‘열정에기름붓기’ 같은 동기부여 페이지는 동기부여를, 뉴스 요약 페이지들은 정보제공을 편익으로서 준다.
즉, 페이스북에서 브랜딩을 잘하고 싶다면 내 영역표시 페로몬에 구애의 페로몬도 섞어 뿌려라. 먼저 구독자들에게 우리를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그리고 그 아이덴티티가 구독자들에게 달콤한 무언가를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지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거다. 그게 쌓이면 페이스북에서도 브랜딩이 가능하고, 그 브랜딩에 진정한 팬들이 생겼을 때 비로소 진짜 소통이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이벤트와 구인구직이다
이벤트나 구인구직은 눈에 보이는 이익을 구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접촉을 시도하는 기능이다. 이는 구독자들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점에서 개미들이 먹이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뿌리는 냄새길 페로몬과 같다. 어디를 어떻게 따라오면 어떠한 먹이가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냄새길 페로몬의 특징은 휘발성과 효율성이다. 효율성은 적은 양으로 길을 그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데, 실제로 개미의 냄새길 페로몬은 단 1mg만으로 지구를 세 바퀴 돌 수 있을 정도다.
마찬가지로 이벤트 게시물의 경우도 길고 장황할 필요가 없다. 빠른 시간 내에 이 이벤트가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는지 알리고, 그 이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효과적인 이벤트 콘텐츠의 경우 그 길이가 비교적 짧고, 첫 장이 강렬하다. 또한, 편익을 명확히 보여준다. 처음에 눈길을 끌고 그다음에 편익을 알려주면, 그다음 자세한 방법은 링크만 클릭하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굳이 장황하고 길게 방법과 취지까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냄새길 페로몬처럼 효율성이 중요하다는 것. 기억하자.
원문 : 이재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