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가 단점으로 작용할 때
얼마 전에 크리에이티브 매거진 99U에서 출간한 <집중의 힘>을 읽었습니다. 미국의 성공한 CEO, 디자이너, 아티스트 등의 삶을 연구하거나 인터뷰하여, 장기적으로 창조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일상을 관리해야 하는가를 다룬 책입니다.
‘아침에 창조적 업무를 하라.’, ‘불필요한 창조를 습관화하라’, ‘자신만의 재충전 시간을 가져라’ 등 의미 있는 메시지들이 많았지만, 제 눈길은 책의 끝자락에서야 멈췄습니다. 바로, 완벽주의자에 대한 이야기였죠.
평소 저는 단 한 번도 저 스스로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본인이 완벽주의자인지 알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그 글에 의하면 딱 제 얘기더라고요.
- 지나치게 높은 성과 기준을 정하고 자신을 평가하는 데 몹시 가혹하며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걱정함.
- 완벽하지 않으면 어느 것이라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
둘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친숙하게 다가온다면 완벽주의자에 가깝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저는 첫 번째에 해당했죠.
완벽주의자들은 때로 그 집착하는 성격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성과를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본인도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아주 높게 설정합니다. 이는 곧 스트레스로 이어지며,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게 되죠.
아마 여기까지 읽었을 때 ‘딱 내 이야기네’하는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그랬거든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정작 머릿속은 온통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는 거죠. 역설적이게도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부담감 때문에 잠재력을 가둘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저는 이것을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졌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완벽주의자들이 모두 이런 단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위에서 소개한 내용을 다 읽고도 계속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라면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진 분들이라고 간주해서 지금부터는 ‘우리’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함정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책에서는 우리와 실용주의자들이 ‘일을 대하는 방식’을 비교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게끔 유도합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죠.
일단 첫째로, 하나의 과업을 진행하는 도중 일어나는 함정입니다. 우리는 완성품을 내놓기도 전부터 모든 과정에서 계속 디테일에 집착합니다.
글쓰기를 예로 들어보죠. 글쓰기의 주제 선정, 큰 흐름 잡기에서부터 지나치게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하면, 처음부터 계속 단어 하나 하나와 디테일한 표현, 맞춤법 등을 신경쓰면서 작업하죠. 그러다 보면 일이 심하게 버거워지고 나중에는 시간에 쫓겨 결국 완성작을 내놓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반면 실용주의자들은 디테일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빠르게 완성작(실용주의자들에게 완성작은 초안이죠)을 내놓고 그다음에 시간이 남는다면 디테일을 잡습니다. 이들에게 디테일은 얼마든 완성 후에도 수정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에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둘째로는 피드백과 관련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대개 본인 스스로 기대치가 높거나, 남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럽지만 잘 생각해보면 사실이죠. 그래서 내 작품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데 있어서 상당히 소극적입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걸고 있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면 어쩌지? 내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마저 의심하면 어쩌지? 이 작품 하나로 나를 무능한 사람으로 평가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일임에도, 피드백을 받기 전까지 계속해서 자기 작품을 고치고 또 고칩니다.
반면 저들(실용주의자들)은 피드백을 받는 데 있어서 우리만큼 큰 거리낌이 없습니다. 당연히 자기 작품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는 기분은 이들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만큼 지나치게 결과론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죠. 어디까지나 자신이 보여주는 것은 미완성작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개의치 않는 겁니다. 설사 신경이 쓰인다고는 해도, 받은 피드백을 통해 더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초안이면 초안일수록 피드백을 빨리 받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세 번째로, 이게 진짜 어려운 문제인데 실용주의자들이 참 부러워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바로 창조적 업무를 ‘언제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죠. 많은 분이 공감하리라 생각되는데, 우리는 중요하고 어려운 창조적 업무일수록 자기만의 이상적 시간과 장소를 찾기 위해 애씁니다. 동료가 함께 있는 장소라던가 굉장히 시끄러운 곳이라면 우리 스스로 ‘지금은 이 일을 할 수 있는 마땅한 시기가 아니군’하고 뒤로 미루게 됩니다. 그리고는 퇴근 후 아주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 집중력을 모아 작업을 하곤 하죠. 그러다가 밤을 새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와 반대로 실용주의자들은 세상에서 이상적인 시간과 장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뒤로 미루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 하죠. 그리고 자투리 시간이라도 활용해서 계속 일을 진행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아직도 상당히 어려워서 ‘저게 가능한 사람들이 진짜 있단 말이야?’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꼭 배워야 하는 자세임은 분명하기에 조금씩 시도하고 있죠.
완벽주의를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위의 세 가지 비교를 통해 책에서는 우리가 실용주의자들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저런 태도로 일하면 최고의 결과물을 끌어내기 어렵다고! 모든 일을 적당히만 해내라는 거야?’
‘완벽주의를 버리고 실용주의를 택하라는 건가?’
여기에 대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절대 완벽주의는 버리지 말라고요. 아니 정확히는 완벽주의자로서의 자세와 마인드를 버리지 말라고요.
분명히 우리는 어떠한 일을 대할 때도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좋은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프로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죠. 스티브 잡스도 PC의 내부 디자인까지 아름다워야 한다고 했을 정도로 완벽에 집착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애플의 정신이 되어 수많은 ‘덕후’들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잡스는 실용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었는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아예 제외해 버리는 겁니다.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우선순위 3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버리라고 했다는 일화와 아이폰이 보여주는 극강의 심플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주의자로서 자세와 마인드는 유지하되, 실용주의자들이 일하는 방식은 배워야 합니다.
실용주의자들의 방식대로 일하더라도, 우리는 분명히 결과물만큼은 최선이어야 한다는 집착과 무조건 열심히 한다는 열정을 가지고 있기에 결코 ‘적당한 결과물’을 내놓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진짜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하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진짜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외면하려 한다는 문제입니다.
역시 제가 그동안 썼던 글이나 진행했던 사업과 캠페인 중에서 결과적으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미운 오리 새끼’처럼 대했습니다. 제 진짜 실력이 아니며 과거이자 실수일 뿐이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자기가 낳은 자식을 미워하는 부모가 없듯이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면 무조건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제가 생각했을 때 제일 중요한 자세입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위대한 예술가도 매번 좋은 작품을 내지는 못하며, 심지어는 죽을 때까지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낳은 결과물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다음번 작품을 위한 발판으로서 삼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겠죠.
하지만 그 냉정함이 지나쳐, 실패작으로만 여긴다면 이는 트라우마로 남게 됩니다. 이 트라우마는 다음 작업을 시작할 때 두려움으로 변하게 되고요. 그래서 우리는 합리화를 해서라도, 자기기만을 해서라도 우리가 낳은 결과물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만큼은 아주 성공적이었다고요.
정리하자면, 우리는 완벽주의자로서 마인드를 유지하되, 실용주의자들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낳은 결과물의 성공 여부를 떠나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지속적해서 창조해낼 수 있는 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책 속의 문장을 인용하며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창조성은 재능이 아니다. 창조성은 운영하는 방법이다.
– 존 클리즈
원문: 이재선의 Bru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