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XD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 글입니다.
레고(LEGO)가 2000년대 초에 겪은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이야기는 저도 여러 번 공유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디자인’ 혹은 ‘디자인 사고’에 의해 극복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진정한 창의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인문학 및 현상학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맞는지는 몰라도 주장 가운데 하나에서 ‘놀이’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한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라는 책의 제5장 내용을 근거로 요약했습니다.
레고의 위기
레고는 전통적으로 매우 강력한 브랜드로 1993년도까지는 어려움을 전혀 모르고 늘 성장해왔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레고가 안 팔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전자오락이나 컴퓨터 게임에 더 열광한다. 레고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
이것이 레고가 처음 가졌던 질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점점 전자오락처럼 즉각적으로 자극을 주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다. 현대의 아이들은 시간이 없다. 옛날처럼 오랫동안 길게 놀 수는 없으니 짧은 시간 조금씩 할 수 있는 자극적인 오락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과거와 달리 아이들이 시간적 압박을 많이 받고 있으므로, 더는 놀 시간이 없다!
- 161쪽
아울러 현대의 아이들은 다양한 매체에 영향을 받았다.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에 나오는 것을 보고 장난감을 고르는 것이다. 그래서 레고는 먼저 컴퓨터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이란 방향을 시도해보았다. 이제 ‘레고’라는 상표만 가리면 사실 다른 장난감 회사와 구별도 되지 않는 제품들을 만들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다음은 인기 영화와 연결하는 것이었다. 이런 영화 관련 상품은 인기를 끌어서 레고를 위기에서 구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영화가 관심에서 벗어나면 다시 제품은 판매가 줄어들었다. 결국 레고는 아이들을 더 깊이 연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은 지금까지 물었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버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바꾸었다.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상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고 책임자인 요안 비 크눗스토프(Jorgen Vig Knudstorp)는 ‘레고 엔트로스(LEGO Anthros)’라고 불리는 조사팀을 미국과 독일의 가정에 파견한다. 그들은 몇 달에 걸쳐 부모를 면담하고,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아이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인기 영화와 이야기들의 기호학적 의미를 분석했다.
부모와 쇼핑도 함께하고, 완구점이나 학교 놀이터를 방문했으며, 학습/아동 발달 전문가를 만났다. 이들은 단순한 포커스 그룹에서 밝혀낼 수 없었던 많은 자료를 모았고 문화에 푹 빠져들어 민족지학자로서 데이터를 수집했다.
놀이 속에 감춰진 아이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연구팀은 우선 부모에 의해 ‘기획’된 아이들의 모습을 벗겨낸다. 아이들은 그 기획에 갇혀 있었다. 이들이 발견한 놀이의 한 가지 역할은 ‘어른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숨 쉴 틈을 찾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자기만의 세계’여야 했다. 또한 아이들은 등급과 서열을 좋아한다. 누가 1등이고 누가 2등인가가 아이들에게 중요하다. 아이들은 누가 더 빨리 달리나, 누가 더 많이 모으나,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가 등으로 끊임없이 경쟁하고 서로 더 앞서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큰다.
마지막으로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아이들은 어떤 것을 완전히 습득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반복하더라도 그들에게는 매우 자랑스러운 것이다. 11세의 독일 소년은 조사자에게 자기가 가장 아끼는 물건을 보여 주었는데, 그건 비디오 게임이나 장난감이 아니라 낡은 신발이었다. 소년은 낡아빠진 신발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이것으로 자기가 어떻게 스케이트보드 기술 하나를 완전히 습득했는지 알려주었다.
아이들이 기술을 마스터하고 얻은 사회적 평판을 자랑스러워하는 점은 아이들이 느끼는 시간적 압박이나 즉각적 만족감을 주는 장난감의 기존 전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놀이는 기술 습득의 기회가 있고 난이도가 높은 놀이인 듯했다. 조사팀은 그 통찰을 가리켜 ‘즉각적인 매력 vs. 투쟁 끝의 권리 획득’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해서 레고는 발견한 놀이의 패턴을 크게 네 범주로 분류했다.
- 감시: 아이들은 어른(특히 부모)들에게서 벗어난 공간을 원한다.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싶은 것이다.
- 위계: 아이들은 등급과 서열을 좋아한다.
- 기술 습득: 아이들은 무언가를 마스터하기 좋아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는 반복도 마다하지 않는다.
- 사회적 놀이: 아이들은 사회적 놀이를 좋아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놀이라는 것이 이것 말고 다른 것이 있을까 싶다. 원래 훌륭한 발견의 특징은 발견 후에는 당연해 보인다는 점이다. 잘 생각해보면 인간의 아이뿐 아니라 사자나 다른 포유류 새끼의 놀이도 비슷하다. 결국 그들의 놀이란 끊임없는 반복과 경쟁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더 나은 평판을 얻는, 즉 어른이 되는 연습 아닐까?
그렇다면 ‘시간의 압박’은?
시간의 압박이란 잘못된 조사 결과였을까? 정량적으로 혹은 대략 조사를 해 보면 확실히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시간이 없다’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실제로 아이들의 40%는 시간이 많고, 또 다른 40%는 시간이 전혀 없다. 여기에 ‘평균’이라는 함정이 있다. 레고는 평균에 맞추기 위해 방향을 틀었지만 사실 레고의 충성 고객은 레고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때 더 드러난다.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이 정말 ‘자극적’이라서 좋아했을까? 이 부분도 잘 생각해보자. 사실 즉각적인 측면도 있지만, 위의 4가지 사항을 요즘의 컴퓨터 게임이 훨씬 더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컴퓨터 게임은 훨씬 장기적으로 노력하고 레벨을 올리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게임일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중독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대개 부모들은 컴퓨터 게임에는 ‘중독’이라고 부르고, 축구나 피아노, 독서를 열심히 할 때는 ‘중독’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실 발견 중 가장 큰 부분은 ‘아이들의 반항심’이라는 부분이었다. 조사팀은 이 반항심의 사업적 잠재력을 보고했지만 레고 임원들은 ‘우리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어쩌면 현명한 선택이다. 이 부분이 비도덕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단지 기업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책에서는 어린이 방송 니켈로디언을 언급하면서 여기에서 내세우는 많은 가치 중 하나가 아이들이 부모에 갖는 반항심을 적절히 공감하고 다독여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석했다).
다시 브릭으로
레고는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진정한 마스터리와 등급, 서열을 이용할 수 있는 전략을 만들고 이를 ‘다시 브릭으로(Back to the Brick)’라고 이름 붙인다. 이를 통해 작은 레고로 더욱 복잡한 것을 만들어 보게 하고, 레고 카페에서 저학년 옆에 고학년이 더 복잡한 것을 만들면서 옆의 저학년을 가르쳐주는 구조를 만들었다. 레고는 자신들만의 장점인 ‘브릭’으로 전사적인 집중을 이루어내며 이렇게 성공적으로 재기(사전적 의미)한 셈이다.
어른 눈에는 아이들이 ‘자극적인 것’만 쫓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저런 자극적인 컴퓨터 게임만 하다가 이상한 괴물이 될 것으로 걱정할지 모른다. 장난감을 많이 팔고 싶은 어른들 눈에는 자기들도 ‘자극적인 것’만 만들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이 글에서는 레고의 재기 방법보다는 우리가 아이들의 놀이를 얼마나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이들’이다.
원문: PX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