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서 인정된 맛… 어라? MSG?!
맛은 혀의 미뢰에 수분과 맛을 느끼게 하는 특정 화학물질이 닿음으로, 음식이 어떤 물질로 이뤄져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목 넘김, 씹는 느낌, 혀에 닿는 음식의 감촉 등은 혀가 느끼는 맛의 종류와 상관이 없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맛 중의 맛,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많이 맛본다는 쓴맛이다. 실제로도 어린아이들은 쓴맛 자체를 꺼린다. 또 인생을 이야기할 때에도 어린이의 인생은 달다고 표현하고, 어른의 인생은 쓰다고 한다.
현재 음식에 대해서 인정받는 맛은 6가지 맛이다. 예전에는 단맛, 고소한맛, 짠맛, 신맛 쓴맛의 5가지 맛이 서양 의학자 및 식품영양 관련 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고소한 맛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어서 종종 빠지는데, 이는 맛은 인정되지만 어디서 감각하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나오는 논란이니 기본맛으로 넣겠다. 어차피 최근 각자의 맛이 혀의 특정 부위가 아닌 전체에서 느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논란이 되는 형편이니.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에 서양의 학자들이 동양의 인간들이 많이 쳐먹고, 뿌려먹고, 비벼먹고,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맛인 MSG를 맛으로 인정하여 6가지 맛이 되었다. 매운 맛을 예상한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매운 맛은 혀만이 아니라 입안의 점막에도 자극이 되어 이뤄지는 – 혀로 느끼는 기본맛이 아닌 – 복합 자극에 가깝다.
맛과 영양소의 관계, 그리고 사람이 맛을 느끼는 이유
왜 사람을 포함한 동물은 맛을 느끼고 그 정보를 수집할 수밖에 없을까? 우선 쓴맛을 제외한 5가지 맛 중 3가지는 기초영양소에 대한 정보이고 다른 두 가지는 미세 영양소에 대한 정보이다. 먼저 기초영양소 정보를 제공하는 3가지 맛을 알아보자.
일단 단맛은 설탕, 즉 탄수화물에 대한 정보를 의미한다. 이 탄수화물이란 녀석은 너무나도 쉽게 최소한의 몸속의 노력으로 에너지 변환이 되는 최고의 에너지원이라 몸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 단맛은 일부러 피하지 않는 이상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맛이며, 나이가 어릴 때 가장 선호하는 맛이다.
고소한 맛이란 녀석은 지방을 의미한다. 우유, 안심스테이크, 삼겹살의 고소함은 모두 ‘넌 지금 지방을 먹고 있다’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지방이라는 놈은 그램(g)당 에너지양이 많고 몸에 저장하기 쉬우므로 역시나 사랑받는다. 하지만 탄수화물 에너지원으로 사용된 후 에너지로 변환되기 때문에, 적당히 먹지 않으면 아주 쉽게 살이 쪄서 글쓴이처럼 된다(…)
MSG의 맛은 단백질의 맛이다. MSG를 풀어서 써보면 Mono-Sodium Glutamate의 약자인데 여기서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Glutamate란 녀석이다. 똑같은 말로 Glutamic acid라 하는데 한글로 ‘글루타민산’이라 하고 ‘글루타민’이란 애가 기본으로 쓰여서 산(酸; acid)이 되었다는 의미다. 글루타민은 단백질을 이루고 있는 기본 구조인 아미노산 중 하나로, 한국사람이 많이 먹는 다시다, 버섯 등 감칠맛 나는 재료에 많이 들어있다. 참고로 MSG맛이라 하지만, 다른 아미노산의 맛도 느낀다고 한다.
이제 미세영양소를 의미하는 맛을 이야기 해보자. 짠맛은 광물질, 즉 미네랄을 의미한다. 그래서 땀 등으로 미네랄이 겁나게 많이 빠지는 더운 동네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짠 음식을 선호하게 된다. 또한, 원래 인류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쉽게 소금을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언제나 not enough mineral을 외칠 수밖에 없었기에, 있을 때 좀 챙겨서 채워놓자는 선호가 생겨있다. 그래서 이제 쉽게 미네랄을 구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참 짠맛을 좋아한다.
신맛이 혀에게 이야기해주는 정보는 비타민이 ‘있는 것 같다?’이다. 대부분 비타민이 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비타민은 맛이 없다. 비타민제나 비타민 음료에서 신맛이 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비타민은 시다고 믿기 때문’에,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강제로 신맛을 넣어주기 때문이다. 나름 그럴싸한 게 ‘신맛=비타민’은 아니지만, 신맛이 나는 그 무엇이 대부분 많은 비타민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있는 것 같다?’라는 정보를 주는 것이다.
영양소가 아닌 독성을 알려주는 쓴맛
그럼 슬슬 쓴맛이란 녀석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쓴맛은 앞에 말한 녀석들과 다르게 영양소에 대한 이야기를 혀에 전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근데 왜 이런 녀석을 혀는 느껴야 할까? 아주 예전의 말에서도 ‘甘呑苦吐’라고 쓴맛은 뱉어내야 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사람이 뱉어내야 하는 물질은 몸이 거부하는 그 무엇 쉽게 말해 해로운 것이다. 한마디로 독소라고 하면 되는 애들이고, 그 애들은 음식에서 쓴맛을 내는 경우가 많다.
쓴맛 내는 녀석의 가장 유명한 애들을 둘만 말해보자. 첫째로 유명한 게 히스타민이다. 몸에 필수적인 ‘히스티딘’이라는 단백질의 변형이기는 하지만 몸에 너무 많을 때는 알레르기 비슷하게 두드러기가 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몸이 거부해야 할 정도로 크게 나쁜 애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혀는 쓴맛을 느끼며 거부할까? 히스타민은 세균이 단백질을 통해 번식 활동을 했을 때 (일반적으로 부패라고 하죠?) 많이 생기는 부산물이다.
즉 히스타민 자체의 문제보다도, 거기에서 균이 좋은 왕국을 이루기 쉽기에 쓴맛을 통해 거부 신호를 밝히는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지금이야 항생제와 링거라는 애가 있으니 어지간한 미생물이 사람을 보내지 못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훨씬 가벼운 설사만으로도 사람을 골로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거부당하는 쓴맛의 유명도 No.1은 일단 히스타민을 적었다.
두 번째로 유명한 애들(복수형이다)은 alkaloid로,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식물성 alkaloid로(동물성을 치면 위에 있는 히스타민이 여기에 속해서) 제한한다. 알칼로이드는 역사, 소설, 드라마 등에서 많이 등장한다. 먼저 이미 중국을 한 번 맛 가게 만들었던 아편의 정수인 모르핀이 여기에 속한다.
다음으로 많은 아내의 속을 썩이는 니코틴도 여기에 속한다. 사실 니코틴은 크게 나쁜 애가 아니지만, 귀찮은 관계로 나쁜 놈으로 매도하고 넘어가자. 어차피 별로 안 나쁘다고 설명해 봐야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테니(…) 솔라닌도 알칼로이드의 일종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식중독이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감자 싹의 주요 성분이다. 싹만 나면 감자에 들어갈 정도로 쉽게 볼 수 있지만, 절대 먹으면 안 되는 말 그대로의 독이다.
워낙 종류가 많다 보니 은근 낭만적인 알칼로이드도 있는데, 트로핀이 여기에 속한다. 벨라도나의 뿌리에서 나온 독인데, 참 예쁜 식물에서 나와서 소설에서 조금 섹시한 자살 약으로 많이 활용된다. 소설 따라 한다고, 저거 구해서 세상을 떠나자는 분이 있다면 격렬히 말리고 싶다. 소설에서야 예쁘게 가지만 현실은 매우 추악한 꼴로 간다. 일단 알칼로이드가 쓰다고 했는데, 트로핀은 그중에서도 매우 쓰다. 혓바닥에 한 방울만 찍으면 침이 15분간 격렬히 흐른다. 거기다 먹고 뒈지는 거야 기본이고, 대부분 포유류는 독이라고 인식하는 음식은 토한다. 즉 이걸 먹고 자살할 노력을 하면, 침을 질질 흘리다가 속에 있는 걸 위경련으로 입원할 정도로 토하다가 사망한다. 어차피 곱게 산 인생도 아니겠지만, 마지막은 곱게 가자(…)
이처럼 쓴맛은 독소를 피하기 위해 거부하는 것이다. 영양과는 상관없이 살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정보다. 그래서 어릴 때는 당연히 쓴맛을 싫어하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게, 독이니까 뱉어야 하기 때문이다! 쓴 거 못 먹는다고 뭐라 하는데, 그게 정상이니 애들한테 뭐라고 하지 말자. 특히 고사리 및 미나리는 더 이상은 NAVER.
왜 어른은 쓴맛을 먹을 수 있고, 아이들은 먹을 수 없는가?
그런 쓴맛을 왜 어른이 되면 먹을 수 있게 되는 걸까? 살펴보면 아주 어릴 때는 콜라나 사이다조차 못 먹는 애들이 꽤 있다. 이는 탄산 자체가 쓴맛을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3살이 넘어가면 대부분 탄산음료를 마실 수 있는데, 이유는 하나다. 자잘한 탄산의 쓴맛에서 느껴지는 독의 위험보다 단맛의 에너지원 양이 이익이라고 인식한다. 쓴맛 때문에 독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에너지의 유혹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좀 더 나이가 들면 탄산의 쓴맛은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에너지가 많은 탄산음료를 좋아하게 된다. 이런 쓴맛은 사람에게 추가적인 에너지 획득의 기회를 준다. 집의 식탁 장면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서양에서 아기들은 감자만 좋다고 먹고, 좀 더 나이 들면 고기를 같이 먹고, 고등학생 정도 되면 당근도 먹고, 어른은 아스파라거스까지 먹는다.
우리나라 애들은 밥에 아주 간단한 나물, 고기, 흰살 생선, 계란을 먹고, 청소년쯤 되면 콩나물, 약간 매운 고추장, 시금치, 꽁치나 연어 등 약간 씁쓸한 생선을 먹게 되고, 아예 어른이 되면 나물의 왕이라 불릴 수 있는 고사리(소에게는 혈구를 용해하는 매우 강한 독이다!) 매우 씁쓸한 미나리(씁쓸한 ‘하르말라’라는 성분이 있지만, 딱히 독소는 없다) 전복, 냉이 등을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쓴맛이 익숙해지면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나만의 에너지원을 찾을 수 있다. 단지 안겨주는 음식마다 독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게 나한테 이익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걸리는 시간이 20년 이상이란 게 문제지만 쓴맛을 좋아하게 되면 남들이 거부하는 것을 혼자만 즐길 수 있는 블루오션 반찬이라는 장점이 생긴다.
그래서 쓴맛은 다른 모든 맛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거부하는 맛이고, 순수한 접근이 아니라 거부한 것을 받아들이는 타협에 가까운 기호이다. 그래서 쓴맛이야말로 어른의 맛이라 불리고 이론적으로도 쓴맛의 기호는 어른에게 기회의 선택을 늘리기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다.
인생을 꼭 닮은 쓴맛의 교훈
그런 면에서 쓴맛은 인생과 참 닮았다. 살면서 많은 좌절감과 실패감을 느끼게 된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운동을 못해서, 공부를 못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얼마나 괴로웠던가? 그런데 이제 웬만한 인생의 쓴맛에는 내성이 생겼는지 그냥 무덤덤하게 넘어간다. 거꾸로 그것이 내 인생을 망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생각보다 할만한 것이고, 그것에도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서른 초반이라 우기는 중반의 내 나이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다. 아마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은 정말 쓴맛을 많이 봤을 거다. 그리고 그 쓴맛은 모두가 달라서 공유하기도 힘들다. 어쩌면 자신만의 고유한 쓴맛이 우리 자신을 형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쓴맛을 공유하거나, 혹은 이해하는 사람을 우리는 ‘친구’라고 부르고 있을 것이고.
씁쓸한 일이 없었으면 난 좀 더 잘나가고 남들이 생각하기에도 언제나 매우 즐거워 보이는 그런 밝은 어른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겪은 쓴맛의 사건들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피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쓴맛은 내 인생을 형성했고, 이제 와서는 그 씁쓸함마저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고마운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쓴맛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다만 누군가가 내게 전해준 아래 말에 동의한다면, 우리 사이에 최소한의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을까 한다.
당신이 겪은 씁쓸함은 당신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