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삼성의 갤럭시S7 공개 행사에 참석해서 약 10분간 발표를 진행하는 깜짝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마치 과거 애플의 ‘One more thing’이 떠오를 만큼 신선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이를 ‘사건’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언뜻 봐서는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두 회사, 세계 최대의 SNS와 유력 스마트폰 단말기 제조사, 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분야에서의 파트너십을 공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뜻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이들의 ‘수상한 동거’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 상황, 그리고 미래를 아울러서 동시에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내린 전략적 판단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삼성의 변화 하고자 하는 노력에 박수를 쳐줄만 한 판단이었습니다.
삼성의 수상한 속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중저가 시장과 프리미엄 시장으로 분명하게 재편되고, 기술발전에 따라 단말기가 대체로 상향평준화되어 소위 엣지를 잃은 삼성은 Next Big Thing을 고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스마트워치와 VR 기기들을 내놓으며 시장을 비교적 소극적으로 관망해오던 삼성 입장에선 VR을 Next Big Thing으로 내세우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년 전에 VR과 매우 유사한 3D TV에서 그다지 큰 재미를 못 봤던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3DTV는 2009년 아바타의 폭발적인 흥행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특수를 타고 엄청난 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각 TV 제조사들은 너도나도 3D TV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앞다투어 전선에 나섰지만, 그 붐은 3년 만에 완전히 사그라들어 ‘실패’를 맞보게 됩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1) 볼만한 콘텐츠가 충분하지 않았고, (2) 콘텐츠가 있다고 해도 이를 충분한 수의 시청자에게 전달할 강력한(Netflix나 YouTube 같은) 플랫폼이 부재했으며, (3) 특수안경을 껴야만 하는 불편함과 동시에 쉽게 피로를 불러일으키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1), 2) 번 문제는 하드웨어 제조사인 삼성으로서는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콘텐츠를 생산할 능력도 콘텐츠를 전달할 플랫폼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월간순방문자 수가 16억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자발적으로 VR영상을 올리고, 수백 수천만 뷰를 기록하는 인기 영상이 연일 화제가 되어 퍼져나가며, 이러한 시장 동향을 포착한 발 빠른 기업들이 너도나도 양질의 VR영상을 페이스북을 통해 유저에게 전달하고자 한다면 어떨까요?
과거 액션캠으로 유명한 GoPro가 SNS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RedBull 같은 발 빠른 회사들이 GoPro를 활용한 영상을 적극적으로 그들의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한 때 LG전자의 시가총액을 넘어서기도 했었다는 사실은 SNS라는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 생산능력이 하드웨어 시장의 폭발적 수요를 창출할 만한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을 뒷받침합니다. 하드웨어 생산에는 일가견이 있는 삼성전자의 입장에선 이와 유사한 시나리오대로 과거보다 더 빠르고 폭발적으로 VR 콘텐츠 시장이 팽창하여 앞서 언급한 1), 2) 번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길 누구보다도 고대하고 있었을 것이고, 이번에 페이스북과의 파트너십 발표가 이런 큰 그림의 시작이 되어주길 바랐을 것입니다.
페이스북의 수상한 속내
최근의 페이스북은 그들의 모바일 전략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작년 4분기에도 50%가 넘는 연간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그 기세를 이어갔는데 특히 페이스북의 ‘동영상’에 관련된 언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간 ‘조회 수(Views)’만을 발표해왔는데 (그간 조회수 카운팅 기준에 대한 시장의 비판을 너무 받아서인지 아니면 이제 apple to apple comparison에도 자신이 있어서인지) 지난 4분기부터 총 ‘재생시간(Watch Time)’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온라인 광고사업자에게 마찬가지겠지만 페이스북에게도 온라인 동영상 시장은 향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작게는 유투브와 경쟁을 해야 하고 크게는 TV의 광고물량을 가져와야 하는 페이스북이 이번에 발표한 재생시간은 하루 1억 시간으로 YouTube의 6~7분의 1 정도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슈퍼볼 광고대전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아직 규모면에서 TV와 비교하기에는 요원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동영상 시장의 후발주자인 페이스북은 이를 단숨에 뒤집을 만한 ‘Big Bet’이 필요했을 것이고, VR로 그 방향을 가닥 잡은 후 VR기기 제조업체인 Oculus(오큘러스) 인수를 통해 차분히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에도 두 가지의 분명한 약점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Oculus의 가격이 약 70만 원 이상으로 대단히 고가라는 점이고, 둘째는 VR 콘텐츠를 쉽게 생산/제작할 수 있는 대중적인 기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콘텐츠 제작이 용이하지 못하다는 점은 전문장비를 갖춘 대형 크리에이터만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점진적인 시장 성장은 만들어낼지 몰라도 Big Bet이라고 할 만큼의 빠른 변화 속도와 큰 영향력을 줄 수 없습니다. SNS라는 태생적인 토대를 고려할 때, 결국 Torso – Long tail에 위치한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필수적이어서 콘텐츠 제작의 진입장벽을 낮춰 주어야 소위 폭발적인 VR생태계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생산능력은 이러한 두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어 줄 수 있는 좋은 카드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삼성에서 공개한 대폭 싸진 가격(약 12만 원)의 ‘Gear VR’과 360도 영상을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는 ‘Gear 360’의 출시는 이러한 전략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윈-윈 할 수 있을까
사실 특정 기업(들)이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수요를 선제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기업이 더 나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거나 뛰어난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유저를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과거 Sony는 워크맨의 성공으로 쌓아 올린 막대한 브랜드 가치와 일본 특유의 앞선 기술을 무기로 당시 태동하던 MP3 대신, 자사의 기술인 MD와 ATRAC포맷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내고자 했으나 실패했었습니다. 삼성과 페이스북 역시 좋은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VR에 대한 명확한 시장 수요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수요를 창출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며, 이는 앞으로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VR기기 가격이 아무리 싸지더라도 결국은 머리에 기기를 뒤집어 써야 하는(Head Mounted Display) 불편함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3DTV가 실패했던 (3) 번 문제와 동일한 문제이자 최근에 스마트워치/밴드의 인기가 사그라드는 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전용 디스플레이 없이 그냥 일반 디스플레이에서 재생되는 360도 VR영상이 얼마만큼의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VR기술의 끝에는 결국 아무런 기기 착용 없이 맨눈으로도 VR영상을 마치 실제처럼 볼 수 있는 영화와 같은 일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영화와 같은 일을 구현하는 Magic Leap의 영상을 하나 공유하며 글을 마칩니다.
원문: Jeremy Cho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