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자에 대해서만 글을 써도 책 한 권은 나올 텐데, 독일, 한국, 라틴 남자에 대해 글을 쓰다니, 지나친 욕심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흰색도 검은색 옆에 있어야 더 희게 보이는 법. 개성 강한 세 다른 문화권의 남자 스타일도 서로 비교할 때, 그 개성이 더 강하게 드러날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라틴 남자’의 정의이다. 넓게는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및 남미(브라질, 쿠바, 콜롬비아 등)를 어우르는 영역이고, 좁게는 미국에서 중남미 이민자들을 지칭할 때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남자와 연애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서울 남자, 부산 남자 다르고, 각각 성장 배경이나 성격에 따라 천지 차이인 남자들에 대해 어떻게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국제 연애를 하는 친구들의 경험담이나, 필자의 경험을 비추어봐도, 독일 남자는 대개 이렇다, 한국 남자는 저렇다, 이러한 ‘경향‘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이 야심 찬 프로젝트를 위해, 네 여자가 모였다. 네 여자 모두 독일에 살고, 독일 남자와 연애 경험이 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페루, 독일, 한국, 프랑스 남자를 모두 사귀어 본 페루 출신 A양, 독일, 한국 남자를 사귀어 본 한국 출신 B양, 한국, 콜롬비아 남자를 사귄 콜롬비아 출신 C양, 마지막으로 한국, 독일 남자를 사귀어 본 독일 출신 D양. 네 여자가 공통으로 사귄 남자들은 독일 남자들이기에 독일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일 뿐, 모두 다 이럴 거라고 단정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혹시 독일 남자라서 겪었던 특별하거나, 신기한 경험이 있나요?”
전동 드릴 사용법을 알려주는 독일 남자
밤 열한 시에 아이스크림을 대령하는 한국 남자
공주 대접해주면서 부려먹는 라틴 남자
A: 현재 독일 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는데, 어느 날 남자친구가 자전거 거치대를 벽에 설치한다며 전동 드릴을 갖고 오는 거예요. 그러더니, “schatz(자기야), 너도 전동 드릴 쓰는 법을 배워야 해. 분명히 너도 혼자 살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이거 같이 하자. 다음부터는 필요하면 혼자 해.”라고 하는 거예요. 솔직히 한국 남자나, 프랑스, 라틴 남자한테 절대 이런 부탁을 들어본 적은 없어요. 연장 관련 일은 남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박혀서, 같이 하자고 하지도 않아요. 저는 저를 여자로 보긴 하는 건가, 서운하기도 해서 말다툼을 했죠.
물론, 여자도 연장을 다뤄야 하고, 배워서 좋다는 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남자 친구가 그런 부탁을 하니 기분이 그렇게 좋진 않았어요. 이에 남자친구는 독일 여자들 모두 다 연장 다루고, 전구도 갈고, 못도 박는데, 왜 나만 꼭 불평하냐고 투덜대더라고요. 그래도 요리, 설거지, 빨래도 자기 일처럼 도맡아 해서 그건 편해요. 집안일, 의무, 이런 거에 남녀 구분이 적어요.
D: 모든 독일 여자들이 연장을 다루는 건 아닌데. ㅎㅎ 한국에 비하면 독일 남자들은 언제나 항상 모든 일을 같이하려고 해요. 사소한 거긴 한데, 한국 남자와 사귈 때, 지나가는 말투로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밤 열한 시였는데, 바로 갑자기 나가더니 아이스크림을 사오는 거예요. 춥다고 하면 부탁하지 않아도, 자기는 엄청 추워도 옷도 벗어주고, 무거운 것도 들어주고. 독일 남자들은 아이스크림도 같이 사야 하고, 무거운 것도 같이 들어야 하죠. 독일 여자들은 남자가 무거운 걸 들어줬을 때, 자기를 연약한 취급한다고 도리어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어요.
감정 소모 없이, 평탄한 독일 차 같은 독일 남자
지지고 볶으며, 정드는 김치 같은 한국 남자
마시면 마실수록 중독되는 칵테일 같은 라틴 남자
A: 남미에서는, 적어도 우리 나라 페루에서는 한국 남자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아요. 한류 열풍이 페루에도 퍼져서 <꽃보다 남자>, <대장금>, <천국의 계단> 등 드라마가 유행했는데,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페루 남자들과 다르게 여자들한테 너무나 잘해주는 거예요. 이벤트도 해주고, 가방도 들어주고, 추우면 손도 잡아서 호호 불어주고. 남미에서 한국 남자는 책임감 있고 세심하게 여자를 챙기는 남자로 인식돼서 인기도 많아요. 한국 남자친구한테서 백일 기념 깜짝 이벤트를 받았는데, 너무나 기분이 좋았어요. 다른 남자들은 이런 이벤트 잘 안 하거든요.
C: 정말 동의해요, 한국 남자들은 진짜 여자한테 헌신적으로 잘해요. 남미 남자들도 잘해주긴 하지만, 대부분 ‘말’로 잘해줘요. 제 고향인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는 마을마다 ‘시인’ 한 명씩 있어요. “오늘 밤엔 달이 두 개가 떴다. 하나는 저 하늘에, 하나는 너의 눈 속에”, “내 몸속의 흐르는 뜨거운 피만큼 너를 사랑해” 등등 낯간지러운 말을 많이 하죠. 콜롬비아 남자랑 사귀면 정말 그때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공주가 된 기분이에요.
하지만 여기에 속아 넘어가면 안 돼요. 현란한 말 기술과 뜨거운 눈빛으로 결국 모든 걸 다 하는 건 여자들이거든요. ㅎㅎ 남미 남자를 사귀면 공주이자, 노예가 돼요. 문제는 이렇게 남자친구를 챙겨주면서도, 말을 너무 잘해서 가끔은 내가 하고 싶은 건지, 억지로 하는 건지 헷갈릴 때도 많아요. 유럽에 오니 이탈리아 남자들에게 여자친구는 segunda mama, 두 번째 엄마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동의해요.
“독일 남자들과 연애 스타일은 어때요? 함께 시간을 자주 보내나요?”
감정 소모 없는 무미건조(?)한 독일 남자
내 여자라면 간도 쓸개도 빼주는 한국 남자
남자라면, 사랑에 올인, 피 끓는 열정의 사랑, 라틴 남자
B: 독일 남자들은 자기만의 시간, 공간을 굉장히 중시하는 것 같아요. 같이 사는데도 가끔 꼭 자기 방에 혼자 있어야 하고, 꼭 자기 친구들이랑만 시간도 가져야 해요. 한국 남자친구도 매일 보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매일 매일 통화하고 자주 어디 있는지 뭐 하는지 서로 묻고 그러는데, 독일 남자들은 독립적 사생활을 중시하더라고요.
처음엔 왜 연락도 안 하고 왜 나만 빼놓고 노나 해서 서운해서 싸웠는데, 지금은 저도 제 공간을 즐기고 있어요. 독일 남자친구가 한국 출신 친구들과 술 마시러 놀러 나갔는데, 한국 친구 한 명이 여자친구한테 남자만의 술자리라고 증명하려고 사진을 찍어서 보낸 거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A: 남미 남자들은 24시간 붙어있으려고 해요. 언제나 모든 걸 함께하죠. 가족도 같이 보고, 내 친구는 네 친구고, 네 친구는 내 친구고, 물론 떨어져 있을 때도 많지만 항상 같이 하는 경향이 강해요. 남미 남자들은 사랑이 1순위일 때가 많아요. 가족, 일, 친구를 제치고 사랑에 올인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남자들의 사랑 표현은 어때요? 많이 헌신적인가요?”
내가 만약 가정주부가 된다면?
독일 남자: 안 돼. 독립적 경제력은 필수야.
한국 남자: 난 자기가 고생하는 거 싫어, 환영이야.
라틴 남자: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모두 다 해, 우리의 사랑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 (과연? 정말 약속을 지킬지…)
B: 독일 남자들은 대부분 표현이 정말 건조해요. 2년 7개월을 사귀었는데도, 사랑한다는 말, ich liebe dich를 들은 적이 없어요. 가끔은 연애가 너무나 건조해서, 마치 독일의 둥근 빵(호밀빵) 같아요. 무미건조해도, 감정 소모가 별로 없고 안정적인 연애라고, 지지고 볶고도 잘 안 해요. 정말 그냥 평탄한 연애 생활 같아요.
A: (웃음) 진짜 딱 맞는 것 같아요. 라틴 남자들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진짜 애정 표현이 남달라요. 정말 활활 불타는 열정의 사랑이죠. 라틴 남자들이 바람을 많이 피운다는 고정 관념이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마음속에 열정이 너무 많아서 그 사랑을 자기도 못 컨트롤하고 감정 소모가 많기도 하죠. 남미 남자들은 항상 말로 모든 걸 다 해준다고 해요. 그리고 아마 그게 그때의 진심일거고요. 하지만 결국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반면에 독일 남자들은 책임질 말을 거의 안 해요. 제가 독일에 왔을 때도, 너 혼자 자립해야 해, 직업도 구해야 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그래도 드물게 한 약속은 정말 꼭 지켜요. 물론 다 해주는 경우는 없고 도와주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끝까지 책임감 있게 약속한 건 해내요. 이 부분에서 한국 남자들은 정말 최고인 거 같아요. 뭐든지 자기 일처럼 해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도맡아주고.
지금 한국 남자친구랑 결혼 생각 중인데, 제가 가정주부여도 괜찮다고 하네요. 물론 저는 그럴 생각이 없지만요. 한국 친구들도 근데 요즘엔 다들 여자도 벌기를 원한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 가정주부들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독일, 남미에서는 거의 없어요. 남미에서는 미혼모들도 많고, 오히려 여자들이 경제력이 더 강할 때도 많아요.
B: 저는 독일 남자친구한테 가정주부 이야기를 슬쩍 물어봤는데,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돈이 얼마든 무조건 벌라고요. 아는 언니 중에 독일 회계사 남편을 둔 언니가 있는데, 남편한테 용돈을 타 쓰고, 가계부도 검사 맡는다고 하더라고요. 남자친구 부모님은 맞벌이시고, 서로 통장을 따로 관리하신대요. 한국에서는 엄마가 경제권을 쥐고, 아빠는 용돈을 타 쓴다고 했더니, 독일 남자친구는 말도 안 된다며 혀를 내두르더라고요.
“국제 연애라 힘든 점이 있나요?”
A: 제가 피부가 까만 편이어서, 한국 사람들이 동남아 출신으로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작년에 한국에 놀러 갔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따가웠어요. 남자친구가 저보다 6살이 많긴 한데, 저는 엄청 어려 보이고 남자 친구는 노안인데 전혀 문제 삼지 않았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동남아 출신 여성들과 한국 남성들의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서는 매매혼이라고 인식이 돼서 그렇다는데, 솔직히 저는 그들도 사랑하는 커플이고, 한국 커플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편견 없이 저희를 봐줬으면 좋겠어요.
B: 독일에 있으면서 그런 편견을 느껴본 적은 별로 없어요. 저는 다만 문화 차이 때문에 힘들어요. 독일 남자들이 너무 독립적, 평등 지향적이어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상처를 받을 때가 많아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게 꼭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서로의 삶을 새로운 문화와 시각으로 풍부하게 해주는 듯하다. 모든 국제 커플들이 편견 없이 마음껏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문: MultiKul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