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타공인 영화광이다.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정주행한 영화가 최소 만 편 이상이라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듯이 영화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제법 지론을 펼치기도 한다.
지론을 펼치다 보면 입만 살아서 마치 내가 영화의 신이라도 되는 양 떠들기도 하는데, 전지전능한 신의 입장에서도 답변이 불가능한 질문이 하나 있으니, 누군가 “지금껏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하고 물어볼 때다. 수많은 영화 중에서 어느 한 편, 혹은 어느 몇 편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이란 책에 소개된 영화도 겨우 1001편이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껏 본 영화 평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라고 묻는다면 바로 대답할 수 있다. 누군가 <검은 사제들>을 보고 올린 평이다.
<검은 사제들>: 강동원의, 강동원에 의한, 강동원을 위한 영화
인류 역사상 이런 영화평은 없었다! 영화란 모름지기 각본·감독·음악·미술·의상·특수효과 등이 전부 다 어우러져 결과물이 나오는 종합예술일진대, 이토록 온전히 배우 한 사람에게만 집중이 된다면 이건 실패한 영화가 아닌가?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검은 사제들>을 본 나의 영화평 역시 이렇다. “신선한 소재 외에 특별히 추천할 만한 점은 없으나 강동원이 잘생겼다.”
강동원은 안 그래도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쭉길쭉한데 수단을 입혀 놓으니 신체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자체 특수효과까지 생겼다. 사실 성직자의 옷이 얼마나 섹시한 매력이 있는지 연구한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 『색의 유혹』을 쓴 저자 에바 헬러에 따르면 일단 검은색의 특성 자체가 옷이 아닌 몸에 집중을 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키가 작은 사람이 검은색 옷을 입으면 더 키가 작아 보이고 키가 큰 사람이 검은색 옷을 입으면 키가 더 커 보이는 현상이 발생한다. 젊은 사람이 검은색 옷을 입으면 더 젊어 보이고, 나이든 사람이 검은색 옷을 입으면 더 나이 들어 보이니, 검은색이 세련된 색인 동시에 아주 위험한 색일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엄마 자궁 속에서부터 워킹 연습을 했을 것 같은 강동원을 보니 생각나는 미국 배우가 있다. 한국에선 드라마 <가시나무새>의 랄프 신부로 유명한 리처드 체임벌린이다.
리처드 체임벌린: 보수적인 영국에서 인정받은 미국인
사제복이 잘 어울리는 배우의 원조인 리처드 아저씨는 우리나라에선 <가시나무새> 주연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영국에선 ‘최초의 미국인’으로 유명하다. 리처드 체임벌린이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가 하면 영국 본토 셰익스피어 극장에 선 최초의 미국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번째 미국인이지만, 1920년대 존 베리모어가 주연을 맡았던 때에 비해 리처드 체임벌린이 주연을 맡았던 1960년대는 미디어 환경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리처드 체임벌린을 최초의 미국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리처드 체임벌린은 60년대 최고의 할리우드 청춘 스타였다. 그냥 얼굴 좀 잘 생겨서 10대 여학생들에게나 인기 많은 톱스타인 줄 알았는데, 셰익스피어 무대에 선다고 하니 그 충격과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아주 보수적인 사회다. 때로는 그 보수성이 지나쳐 폐쇄적인 면모도 보이는데, 해리 포터의 팬인 드류 배리모어가 출연료 필요 없으니 그저 <해리 포터>에 나올 수 있게만 해 달라고 애걸했으나 원작자인 롤링이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롤링이 거절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드류 배리모어가 영국 사람이 아닌 미국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의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의 딸인 엘레노어 콜럼버스는 예외적으로 출연을 허락 받긴 했으나 대사가 전혀 없는 조건하에서였다. 미국 미시건 출신의 번 트로이어는 출연도 하고 대사도 있는 은총을 입었으나 그의 말은 나중에 전부 영국 성우가 재녹음하는 것으로 편집됐다. 배경이 영국인데 조금이라도 미국식 영어가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21세기에 만들어진 영화 해리 포터가 이럴진대 1960년대 상황이 어떠했겠는가? “감히 미국 배우 나부랭이가 셰익스피어 무대에 서다니!” 하면서 온갖 평론가들이 총출동했는데, 그의 연기력과 완벽한 발성에 도저히 흠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미국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영국식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지?”하는 찬사와 함께 1969년 이후 감히 그 누구도 리처드 체임벌린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배우를 완성하는 요소는 세 가지다. 역할을 빛내는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 그리고 정확한 발성. 보통은 한 가지를 잘 하고 간혹 두 가지를 갖춘 배우들이 있기는 하다. 평범하다 못해 투박하고 거칠기까지 한 외모지만 미친 연기력으로 처음부터 승부수를 띄우는 연기파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20대 꽃미남 배우들이 보통 재벌 2세 실장님, 본부장님 등 얼굴이 중요한 역할을 맡다가 점점 연기가 좋아져서 30대에 이르러 외모와 연기력 두 마리 토끼를 다 갖추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훌륭한 외모에 훌륭한 연기력에, 플러스 훌륭한 발성까지, 리처드 체임벌린처럼 세 가지를 다 갖추기는 정말 드문 일이다.
강동원은 첫 번째 출중한 외모와 두 번째 뛰어난 연기력을 갖췄다. 세 번째는 조금 아쉽긴 하나 열심히 노력하면 될 거라는 희망이 있다. 그가 악역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를 보면 영화의 배경이 조선 후기 전라도 나주임에도 불구하고 문장 중간중간마다 경상도 억양이 묻어 나오는데, 특별히 독백체보다 대화체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완벽한 영국식 영어로 영국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리처드 체임벌린처럼 완벽한 한양 말을 썼다면 참 좋았을 텐데 옥의 티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강동원이 설사 피나는 노력을 해서 세 번째 조건까지 갖췄다 한들 그가 리처드 체임벌린을 능가하는 배우라는 것을 확인할 방법이 있는가?
뿌리는 아픈데 꽃만 화려한 한국의 문화계
영국은 보수성이 지나쳐 폐쇄적일 정도로 미국 배우를 배척하지만, 셰익스피어라는 원작을 고집스럽게 지켰고 그 원작이 구현되는 연극무대 또한 고집스럽게 지켰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배우가 영국 셰익스피어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뉴스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원작도 없고 연극무대도 없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 인도는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셰익스피어는 영원하기 때문이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잠깐만 즐거운 상상을 해 보자.
한국이 일본을 식민지로 삼았다. 그리고 나서 칼라일 같이 오만한 한국의 역사학자가 나와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땡땡땡’을 일본과 바꾸지 않겠다. 일본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땡땡땡’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도 그 ‘땡땡땡’ 안에 들어갈 인물이 누구지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허균? 김시습? 김만중?
한국 사람들은 영화는 많이 보면서도 연극은 외면한다. 뿌리는 아픈데도 화려한 꽃만 보고 열광하는 관객이 많다. 대학로에 가면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천만 영화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티켓 한 장당 천 원짜리 연극도 계속 나오고 있다. 3만원 정가를 다 받아서는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눈물의 땡처리를 해서라도 소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후의 보루일 수도 있는 연기상을 생각하면 혈압이 오르기 시작한다. 원작도 빈약하고 무대의 원형인 연극도 빈약하면 대중적인 상이라도 공신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상의 권위라는 것이 없다.
지난해 대종상 후보자 전원이 시상식에 불참하겠다는 선언을 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얼마나 상의 권위가 없으면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청담동에서 여의도까지 가는 것도 귀찮아 하는가? 영국의 국보(national treasure)라고 불리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그는 참석 자체가 영광이라고 말했고 말 그대로 참석만 했다.
그가 무슨 대단한 상을 받거나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아니었다. 그저 <노예12년> 팀과 즐거워한 게 다였고, 다른 사람들이 상을 받을 때 얌전히 앉아 축하해주기 위해 여권을 챙기고 탑승 수속을 밟은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시상식은 동네 계모임보다 더 형편없다. 하다 못해 동네 계모임은 설사 중간에 계주가 곗돈을 떼먹고 도망가는 경우가 있긴 해도 순서라는 게 있고 규칙이라는 게 있다. 방송사 시상식? 이건 뭐, 무슨 뉴스타상이니 베스트 커플상이니 공동수상이니 해서 어처구니없이 상을 남발하기나 하니…
연기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 배우가 정말 연기를 잘 하는 걸까? 나는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윤은혜와 <하얀 거탑>에서 간성 혼수 상태에 놓인 외과 의사를 소름 끼치게 연기한 김명민을 동급으로 우수상 후보에 같이 올리는 것을 본 이후로는 연기대상에 대한 관심을 아예 꺼버렸다.
언젠가 강동원이 리처드 체임벌린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가는 배우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잘못된 환경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알아볼 수조차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