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테러방지법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취해 왔습니다. 그런 입장을 취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방지할 수가 없다.
- 우리나라의 국정원은 국민의 완전한 신뢰를 받는 기관이 아니며 너무도 정치적인 정보기관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발의된 테러방지법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테러방지법안
- 테러예방 및 대응법 – 이노근 의원(새누리당) / 국정원장 소속 대테러대책회의, 신설정보 수집 가능
-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 이병석 의원(새누리당) / 대통령 소속 국가테러대책회의 신설
- 사이버위협정보 공유에 관한 법 – 이철우 의원(새누리당) / 국정원에 사이버위협정보 공유센터 신설
- 국가사이버테러방지법 – 서상기 의원(새누리당) / 국정원 산하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신설
- 국가 대테러 활동과 피해보전 기본법 – 송영근 의원(새누리당) / 대통령 소속 국가테러 대책회의
주요 내용
- 대테러업무를 국정원 산하 ‘대테러센터’에 집중
-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인물에 대해 출입국 규제 요청
- 국가중요시설 보호를 위한 군 병력 지원 건의
핵심은 국정원을 초법적인 기관으로 만드는 데에 있으며, 처벌 수위를 높여서 테러를 예방하자는 데에 있습니다. 하지만 ‘사형제도의 존재’가 범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예방 효과가 불분명한 것처럼 테러방지법이 있다고 해서 테러가 예방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의심’만으로 한 사람을 마음껏 사찰할 수 있는 법안입니다.
테러예방의 핵심은 관련 부처 간의 신속한 정보공유 및 전달입니다. 테러가 의심될 때 이를 빠르게 전달하고 또 그에 맞춰 대응할 수 있어야 테러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에는 이런 내용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이는 테러방지법이 없더라도 당연히 취해져야 할 조치입니다. 국가와 국민이 위협에 처했는데 자기 부서 일이 아니라고 그러고, 북한의 지뢰도발이 일어나도 청와대에서는 몰랐다고 말하고 있는 한심한 현실 속에서 테러방지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진정 테러방지법이 국민에게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국가 위기 시 초당적 혹은 초월적인 정보공유 및 전달’이라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담당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조항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없고 현재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밀어붙이는 테러방지법은 이런 내용이 주요 골자입니다.
개인정보 수집을 수월하게 해서 국정원이 조금 더 정보수집이나 공유를 활발하게 하고, 처벌을 강화하자.
좋습니다. 국정원이 우리나라의 정보기관이니 테러방지법에 관한 권한을 주는 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엄연히 국정원이라는 국가정보기관이 있는데 테러방지를 위해 또 하나의 기관을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국정원은 순수한 국가정보와 관련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므로 문제입니다.
이미 대선에 불법개입한 과거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고개를 숙여 반성하겠다고 하였지만 이는 ‘셀프개혁’이었습니다. 당연히 썩은 조직은 깨끗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국정원은 북한의 도발이나 각종 테러에 제대로 대응을 하고 있나요? 여전히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보다 느리게 파악을 하고 있으며 IT강국이라는 나라에서 늘 북한의 사이버테러에 속수무책입니다.
“북한 해커의 소행이다.”
무슨 정보적 공격만 당하면 나오는 레퍼토리. 이젠 지겨울 정도입니다. 그렇게 당하면서 또 당하고 있는 국가정보기관. 국정원이라는 기관을 생각해 볼 때 여전히 ‘정치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 테러방지법은 위험합니다. 그들이 맡은 일을 하기보다는 집권여당이나 현 정권을 위해서 정보 수집을 하고, 반대파들을 감시하기 위한 일을 한다? 이는 매우 심각한 민주주의의 몰락을 가져옵니다. 그렇기에 김광진 의원이 그토록 반대해 왔고, 지금 더불어민주당에서 ‘필리버스터’를 가동한 것입니다. 그만큼 위험한 법안이기에.
애초에 테러방지법은 프랑스의 IS 테러 이후 다시금 불거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대상이 북한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북한과 대한민국은 분단된 지 70년이 지났고, 전쟁이 끝나지 않는 상황(휴전)인데 테러방지를 안 해 왔다는 것인가요? 왜 테러방지법이 없으면 대응을 못한다고 난리인가요?
좀처럼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테러방지법을 선거구 획정 문제와 함께 바구니에 넣은 것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꼼수가 보여도 너무 보입니다. 이건 ‘기브 앤 테이크’의 문제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또 토론하고 치열하게 논의를 한 후에 결정을 내려야 할 사안입니다. 그만큼 위험한 법안이기에.
올해는 총선이 있고, 내년에는 대선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에 엄청난 권한을 준다면 ‘미성숙한 민주주의’의 나라 대한민국은 다시금 망가집니다. 야당뿐만 아니라 정부와 집권여당에 반대하고 비판적인 사람들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취급받을 것입니다. 이런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이유.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도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과 관련해 전혀 자신들과 관련이 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는 야당에 대해서 ‘비애국’이라고 말하고 ‘비안보’라 쓰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이 결코 말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테러방지를 위한 법은 지금도 넘칩니다. 아울러 메뉴얼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국무총리라는 사람은 자신이 테러가 일어났을 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한심한 현실 속에서 너무나도 정치적인 국정원을 초법적 기관으로 만들자고 하는 테러방지법.
테러방지법은 테러방지를 위한 법이 아닙니다. 새누리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입니다.
원문: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