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는 홍콩 무협 영화의 전성기였다. 무협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기만 하면 관객들이 몰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홍콩의 영화 제작자들은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언제든 영화를 찍어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무협 영화의 줄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한 주인공이 권법의 고수로부터 권법을 전수받아 복수에 성공한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새로운 권법만 하나 있다면 새로운 영화가 한 편 만들어질 수 있었다. 당시 영화 제작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한 번도 소개된 일이 없는 새로운 권법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어쩌면 권법을 만들어 내는 일이 영화를 만드는 일보다 더 힘들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시대는 초인 영웅(Super Hero) 영화의 전성시대이다. 초인 영웅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언제나 관객들이 몰린다. <어벤져스>나 <엑스맨>, <스파이더맨>의 인기는 설명이 불필요하고, 실패작이라고 알려진 <그린 랜턴>(2011)이란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는 2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영화이다. 작년도 최대의 실패작 중 한편으로 꼽히는 <판타스틱 4> 조차도 손익 분기점을 넘어섰다.
이렇듯 초인 영웅들이 영화에 등장만 하면 관객들이 환호하기 때문에 헐리웃의 영화 제작자들은 언제든 초인 영화를 만들어 낼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초인은 결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수많은 초인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현재 지구상에서 초인 영웅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영화사가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39년 만화책 출판사로 시작한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그들의 본업을 만화책 출판사에서 영화 제작사로 바꾸어 그들의 만화책 주인공들을 한 명씩 영화의 주인공으로 불러내고 있다.
문제는 스파이더맨이나 헐크처럼 설명이 필요없이도 사람들이 알아보는 초인 영웅들은 이제 거의 다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블 엔터테인먼트도 과거 홍콩의 영화 제작자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초인 영웅 영화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초인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제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거나 덜 검증된 초인들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작년에 개봉했던 <앤트맨>이나 최근 개봉한 <데드풀>도 전 세계적인 스타 초인 영웅은 아니다.
<데드풀>은 1991년 <New Mutant>란 만화에 악당으로 데뷔한 캐릭터로서, 마블의 다른 스타 초인들보다 훨씬(?) 젊고 덜 유명하다. 코믹북 매니아가 아닌 다음에야 <데드풀>이 누구인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만화책 독자보다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유명하다.
이처럼 <데드풀>은 스타 초인 영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미 영화에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2009년 <울버린>이란 영화에 등장하여 주인공과 마지막 결투를 벌이기도 했는데, 그가 주인공의 마지막 상대가 된 이유는 <울버린>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초인 능력은 ‘죽지 않는 것’이다.
<데드풀>은 죽지 않으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다. 총에 맞고, 칼에 찔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훼손시키기도 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데드풀>은 점점 더 강한 상대와 싸워야 하므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피가 튀고 신체가 절단되어 나간다. 아마도 영화를 소리 없이 관람한다면 <데드풀>은 공포 영화의 살인마처럼 보일 수 있다. 아마도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영화라는 것을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임산부와 노약자도 봐서는 안 될 영화다.
영화는 매우 잔인하지만 <데드풀>을 관람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유머 때문이다. <데드풀>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구사한다. 그리고 그 유머 때문에 영화의 끔찍함이 완화된다. 아마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데드풀>은 이 공포가 없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구사해 낼 수 있다. “내가 빨간 옷을 입는 이유는? 피를 너무 자주 흘리기 때문이지.”와 같은 데쓰 조크(Death Joke)는 아마도 <데드풀>이란 영화에서만 가능한 유머이다. 그는 여태껏 등장한 마블의 초인 캐릭터들보다 유머감각이 뛰어나다.
<울버린>에서도 <데드풀>을 연기했던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배우가 다시 한번 데드풀을 연기하게 된 것도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를 불편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영화에서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처럼 못생긴 분장을 하고 나오기는 하지만 이미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의 분장이 그의 진짜 외모를 가려주지는 않는다. 관객들이 라이언 레이놀즈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는 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덜 불편하다.
조금 이른 추측이기는 하지만 <데드풀>은 성공한 듯하다. 그는 마블의 또 다른 스타 영웅으로 등극할 것이고, <데드풀>의 속편에는 아마도 더 많은 엑스맨들이 등장하지 않을까하는 추측도 해 본다. 반면 <데드풀>은 마블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에서 보여줄 수 있는 초인 영웅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초인의 능력보다는 개성있는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이고, <데드풀>의 인지도보다는 마블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활용해 영화를 홍보했다.
아마도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기존의 초인들과는 너무도 다른 <데드풀>이란 초인 영웅을 과연 사람들이 좋아할 것인지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원작 만화의 내용을 관객들이 알고 있다는 기대를 접고 영화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데드풀>이 성공한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예전 <데드풀> 출판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 것이다.
이렇듯 영화와 출판물 간의 선순환이 계속되는 한 아마도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새로운 초인 영웅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창고를 계속 뒤지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초인에 대한 관심을 잃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새로운 초인 영웅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원문: 북클라우드 / 작성: Gwi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