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guardian에 게재된 David Shariatmadari의 칼럼, “Eight words that reveal the sexism at the heart of the English language“를 번역한 글입니다.
사전이 성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성차별적이다
언어학에는 연어(聯語, collocation)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두 단어가 나란히 함께 쓰이는 경우를 뜻하는 말입니다. 만일 “팝(pop)”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이와 자주 함께 쓰이는 “음악”, “노래”, “스타”와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죠. “열풍”이나 “디바”와 같은 단어도 빈도는 덜하지만 “팝”과 자주 붙어나오는 단어들입니다.
그렇다면 “과격한”이라는 뜻을 지닌 “rabid”라는 단어는 어떤 말과 주로 붙어 다닐까요?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답은 “페미니스트”입니다. 옥스포드대학출판사는 사전 속 특정 단어들의 용례가 성차별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사전 속에서 “바가지 긁는(nagging)”이라는 형용사는 “아내”와 함께 소개되고, “귀에 거슬리는(grating)”, “새된(shrill)” 같은 형용사는 여성의 목소리를 묘사하는 데 쓰이고 있으니까요.
옥스퍼드대학 출판사는 사전 속 용례가 출판사의 시각이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전이 성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영어 사용자들의 사회가 성차별적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격한”이라는 단어 뒤에 “우익”도, “공산주의자”도, “팬”도 아닌 “페미니스트”가 오는 이유는 명확지 않습니다. 옥스퍼드대학 출판사도 스스로 변명이 궁색하다 느꼈던지, “rabid”라는 단어가 요즘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판사의 태도는 일단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전 내용이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기는 이릅니다. 어쩌면 “rabid”와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가 실제로 “페미니스트”일 수도 있으니까요. (인터넷상에서의 용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놀랄 일도 아닙니다.)
성별과 관련된 편견은 어떤 식으로건 우리의 말과 글에 영향을 미칩니다. 언어는 모든 관계 형성의 수단이고, 그래서 우리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따라서 언어의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 사고방식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뿌리내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영어의 성차별성을 잘 드러내는 8개의 단어
여성과 관련된 부분은 그야말로 암울합니다. 영어 속에는 인류의 절반에 대한 폄하가 너무나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조차 이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또한, 여성에 대한 폄하를 담고 있는 언어는 세월을 거치면서 점점 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졌습니다. 다음 여덟 개의 단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Mistress: “master”의 여성형으로 “지배권이나 권위를 가진 여성”을 의미하며,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넘어온 단어입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부인을 둔 남성이 지속적인 성관계를 맺고 있는 부인 이외의 여성”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Hussy: 한때는 중립적인 의미로 “한 집안의 가장인 여성”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평판 나쁜 여성”이라는 의미를 띠게 되었고 지금은 그런 의미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Madam: 지위가 높은 여성을 부르는 말로, 남성형 “sir”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18세기 말부터는 “조숙하고 잘난체하는 소녀 또는 나이 어린 여성”이라는 의미에서부터, 정부(情婦)나 창녀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고,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여성 포주를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Governess: “governor”의 여성형으로, 15세기 이후 “장소나 기관, 집단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여성”이라는 의미로 쓰였지만 이후 의미가 훨씬 축소되어 “사람, 주로 어린아이를 보살피고 감독하는 여성”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Spinster: 원래는 단순히 실을 잣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 또는 남성을 뜻했으나, 남편이 없는 여성들이 주로 생계를 위해 이 직업을 택하다 보니 점차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노처녀, 결혼 적령기가 지났지만 결혼하지 못한 여성”으로 더욱 강한 뉘앙스를 지니게 된 것은 18세기 초반부터입니다.
Courtesan: 군주를 보필하는 사람을 뜻하는 “courtier”의 여성형이지만, 현재는 오로지 성매매 여성을 뜻하는 단어로만 쓰이고 있습니다. 가장 의미가 크게 달라진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Wench: 13세기에는 여자 아기나 결혼하지 않은 소녀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급격하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게 되었습니다. 14세기 말부터는 문란한 여성이나 정부(情婦)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Tart: 콜린스 영어사전에 따르면 19세기에 여성에 대한 애칭으로 쓰였다고 하지만, 1887년부터는 “부도덕한 여성, 창녀”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목록을 보고 있자면 부정적인 뉘앙스 없이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과연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짝패인 남성형 단어는 여전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언어의 변화상, 나아가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상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현대의 여성주의 운동은 우리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세월이 흘러야만 알 수 있을 겁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