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만든 SF 모임으로 ‘조이SF’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게시판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이 찾는 곳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입니다. 온갖 종류의 질문이 들어오는데 질문 그 자체보다도 답변 쪽이 재미있고 흥미로워서 눈길이 가는 장소이지요. 저자신도 이곳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곤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끔 ‘왜 이런 걸 물어보지?’ 싶은 질문도 있습니다. 뭐라고 할까. 몰라서, 알고 싶어서 물어보았다기보다는 그냥 생각하지 않고서 묻는 게 아닌가 느껴지는 질문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게시판은 양호한 편입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탈의 지식 서비스를 보면, 질문도 황당하지만, 답변은 더 황당한 경우도 많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질문 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질문. 그리고 ‘생각하고 답변하는 건가’싶은 답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의 저서 중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 사람들은 검색하고 짧은 내용을 계속 옮겨가면서 보는 데에만 익숙하다 보니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되었으며, 두뇌가 그에 익숙해지면서 변화하고 있다는 내용의 책입니다.
사실 저는 이 내용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저자신 또한 글을 쓰거나 책을 쓸 때 인터넷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는 예기치 못한 영감이 나타나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 이런 예시가 있습니다. 과거에 제가 쓴 포스팅 중에서 “지구 자기장과 태양풍… .지자기가 사라지면 인류는 멸망할까?”라는 글이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사이트에서 ‘지구 자기장이 사라지면 빙하기가 온다는데 정말인가요?’라는 내용을 보고서 정리한 내용이지요. 사실 제가 궁금증을 갖고서 정리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랬죠. ‘지구 자기장이 사라지면 빙하기가 올 수 있다.’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용이 연결되지 않는 겁니다. 사실 그 전에는 ‘자기장이 사라지면 태양의 방사선으로 들어온다.’라는 말을 맹목적으로 믿어왔는데, 잘 생각해 보니 말이 안 되더군요. 왜냐하면, 태양의 방사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자기장으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것저것 검색을 해 보며 정보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내용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떠오르더군요. 이걸 영감이라고 부를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제게는 그 순간이 마치 신의 계시 같았습니다. 온갖 종류의 의문점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코어> 같은 영화의 이야기도 연결되고, 오랫동안 계속된 지자기 반전 현상에도 불구하고 생태계가 괴멸적인 타격을 입지 않은 이유라든가 하는 것들이 연결되더군요.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지자기가 사라졌을 때 빙하기가 찾아오는 이유’에 대해서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었습니다. 무엇이 궁금한지 생각하고, 그에 어떤 정보가 관련되어 있는지 생각하고, 여기에 어떻게 이들이 연결되는지를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뿐입니다. 결국 ‘검색’과 ‘생각’으로 모든 것을 연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제 결론은 ‘생각을 한 결과물’인 것입니다.
인터넷 세상에서 지식은 검색만 할 줄 알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질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 질문을 던진다.
- 포기한다.
- 스스로 생각한다.
사실 질문과 포기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걸 포기한 것이니까요. 그렇게 보자면, 모든 방향은 ‘생각하는가 아닌가’로 결정이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제는 인터넷 세상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기보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쪽으로 쉽게 움직인다는 점이었습니다.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 세상이 되면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되고, 그 결과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린다’라고 주장한 것인데,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데카르트가 이야기했는데, 니콜라스 카의 주장대로 된다면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상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상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상상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인간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검색을 잘하는 것만큼 지식을 결합하는 것도 중요한 시대
얼마 전 ‘달에는 공기가 없다는데, 아폴로 14호의 착륙선이 날아오를 때 옆에 있던 깃발이 휘날린다.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장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최소한의 상식만 갖고 조금만 생각해도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아폴로 14의 착륙선 중에서 날아오른 부분의 중량은 적지 않습니다. 그 중량의 물체가 달 궤도로 날아오르려면 상당한 추진력이 필요하죠. 그리고 로켓의 추진력은 뭔가를 뿜어내면서 발생하는 반작용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 이를 위해서 대량의 추진제를 폭발시켜서 뿜어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주변에 강한 가스 폭풍이 불겠지요.
로켓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러한 것이 금방 머리에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생각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죠. 하지만 질문을 한 사람의 머리에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지식은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인류의 지식량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으며,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전문적인 문화 연구자가 아니라도 장르 문화에 관한 책을 내고 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별도의 공부 같은 것이 없이도 훌륭한 전문가로서 자부하고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단순한 역사적 지식이 아니라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다양한 학문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빅 히스토리’ 같은 이야기가 주목받게 된 것도 그 같은 상황에서 나왔다고 할 것입니다. 그만큼 검색을 잘하는 능력이 중요해졌으며, 이러한 지식을 결합해서 생각하는 능력도 중요해졌습니다.
검색을 잘하려고 해도 생각을 잘해야 하지만, 그렇게 찾은 정보의 단편은 내 머릿속에서 종합해서 결론을 돌출해내지 못하면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하는 사람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능력이 조금만 있으면 금방 떠올릴 수 있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남에게 묻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한편으로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만을 늘어놓으면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얼마전 닐 디그래스 타이슨의 <스페이스 크로니클>을 소개했습니다. ‘지식은 새롭지 않지만, 일찍부터 우주에 대해 꿈꾸었던 한 사람의 오랜 경험과 지혜가 녹아들어 진하게 우려진 진국으로서 그 지식을 더욱 맛나게 느끼게 해 줍니다.’라고 평한 일이 있지요. 안타깝게도 최근의 인터넷에서는 이러한 ‘진하게 우러나는 지혜가 담긴 사람’보다는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을 더 많이 만나는 것 같습니다.
이따금 그런 사람들의 질문을 듣게 될 때 처음엔 분노를 느낍니다. “내가 왜 당신을 대신해서 생각해야 하지? 요샌 생각도 외주야?”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연민을 느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니콜라스 카가 주장하듯,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것은 단지 혼자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인터넷과 함께 하는 세상만의 잘못도 아니지요. 세계 각지에 이런 사람이 적지 않지만,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사람이 특히 많은 것은 질문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 다른 것을 다르다고 인정하지 않는 사회. 그리하여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S.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표현은 SNS의 댓글에서 보았습니다. 그 말에서 문장을 끄집어내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생각하는 방법’일까요? 흔히 SNS는 사람들의 생각을 파편화하여 역시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라고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요.
원문: 표도기의 타임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