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글쓴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허구를 섞은 팩션(faction)입니다.
0.
나는 학생 시절 중국에 간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제법 긴 여행을 했고, 또 한 번은 어학연수를 했다. 막연히 중국인들과 섞여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지냈다. 항상 겨울이었고, 대륙은 언제나 쌀쌀하고 외로웠다. 의사소통이 그리 원활하지는 않았으므로, 그들이 아무리 가까이 내게 다가와도 우리에겐 어떤 벽 같은 것이 존재했다.
일정 수준의 이야기를 넘어서면 그들과 나는 서로 남이 되는 수 밖에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누군가 종일 시끄러운 소리로 지껄이는 드넓은 대륙. 나는 그 외로움과 고독함이 좋았다. 그 타인들의 세계에서 나는 꽤 행복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방랑이었다. 그리고, 방랑은 어느 순간 끝났다. 나는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1.
병원은 중국인 거주지역에서 가까웠다. 병원에서 한 블럭만 떨어져도, 중국어로 쓰여진 간판이 거리 가득 불을 밝히고 있었다. 당연히 병원에도 중국인 환자는 많이 내원했다. 그들에겐 이곳이 타국이었으므로, 어설프더라도 무조건 우리말을 사용해야만 했다.
병원에선 그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는 없었다. 대부분 하층민인 그들은 다쳐도 더 심하게 다쳤고, 아파도 이해할 수 없이 아팠다. 우리는 그들을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다른 질서에서 온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유난히 많이 내원하는 날엔, 조롱하는 의미로 병원이 위치한 동네의 이름을 중국의 행정구역인 성省을 붙여 칭하기도 했다.
‘이놈의 중국인들 보게,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모르겠군.’
그들은 험하고 귀찮으며 이해할 수 없고, 경제적으로도 무능한 존재였다. 나도 여기 소속된 의사였으므로, 시선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당장 실려오는 환자는 차고 넘쳤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안위보다도, 눈앞에 닥친 내 안위가 훨씬 더 급했다.
2.
그들은 분명 우리와는 다르게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 겨울에 피투성이인 런닝셔츠만 입고 카트에 실려 왔다. 카트에는 제법 많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뒤따라 표정이 일그러진 그의 아내가 피 묻은 주방 가위를 들고 왔다.
“저기요. 가위에 찔리신겁니까?”
“그 살람 한국말 못해요. 가위에 좀 찔렸어요. 빨리 꿰매 주세요.”
환자는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지, 그의 아내가 대신 대답했다. 그의 아내도 조선족 말투가 완연했다.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느낌이기는 했지만, 피를 많이 흘리는 것을 보자 걱정스러운 생각이 더 많이 드는지, 말투에서 급박한 감정이 묻어났다. 분명 부부싸움이였다. 저런 가위를 들고 부부싸움을 하다니, 대륙의 스케일은 역시 대단했다.
처치실에서 환자의 런닝을 벗겼다. 아직 이십대로 보였고, 잘 먹었는지 뱃가죽과 몸통이 든든한 살집으로 채워져 있었다. 머리는 짧게 깎았으며,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완전히 탈의하자, 동양적인 문신이 가득 찬 그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병원 앞을 흔히 배회하는, 별로 마주치기도 싫은 전형적인 중국인이었다. 나는 벌써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나처럼 선량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하다니, 상처 꿰맬 때 문신 안 어긋나게 잘 꿰매야겠어.’
나는 기계적으로 상처를 확인했다. 가슴쪽의 달마대사가 약간 흠집이 나 있었다. 여긴 문제가 될 만한 상처는 없었다. 등쪽을 확인하기 위해 그를 뒤집자 승천하는 용이 나타났다. 용은 달마 대사처럼 흠집이 나있지는 않았지만, 용의 목덜미에 깊어 보이는 상처가 하나 있었다. 손가락을 넣자 안으로 손가락이 들어갔다.
‘좀 깊군. 하지만, 문신 경계가 아닌 몸통에 맞아서 꿰맬때는 편하겠다. 일단 CT부터 바로 확인해야지.’
나는 별 긴장감 없이 수액을 달아 그를 CT실로 보냈다.
3.
“울리 남편 괜찮은 겁니까?”
“일단 CT를 봐야합니다.”
“아니, 괜찮냐고 물었잖아요. 그냥 괜찮냐고요.”
“그러니깐, 그냥 CT를 봐야 말씀드릴 수 있다니까요.”
그의 아내는 감정적으로 심하게 화가 나 있는 데다가, 남편의 피를 보자 걱정스러운 양가감정에 매우 흥분된 상태였다. 하긴, 이 자리와 경험이 어떤 인간에게 익숙할까. 하지만 나는 CT 촬영 사이에 복통 환자를 한 명 진찰하고, 평범한 열상 두 어개를 꿰매느라 좀 바빴다. 봉합실까지 따라와서 소리를 지르는 아내에게 지금 다른 환자들 안 보이냐고 소리질렀다. 봉합 중에 CT를 다 찍고 거즈를 틀어막은 용이 옆 침대에 들어왔다.
‘CT가 되었나보군. 가서 확인해야지.’
장갑을 벗어 던지고, 별 생각 없이 CT 필름을 열었다. 한쪽 폐가 완전히 우그러져 있었고, 대신에 방금 나온 피가 뿜어져 흉강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그 출혈량이 가득 차서, 그 짧은 시간동안 옆 폐까지 누르기 시작했다. 심각한 중환, 내가 자만하면 바로 죽어버릴 중환이었다. 나는 자만으로 잃었던 환자들이 뇌리에 스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길. 가위를 끝까지 다 박았네. 부부싸움이라고 상처만 낸 줄 알았군. 어마어마한 부부싸움이 다 있네.’
나는 이 깊이로 직접 찔렀을 아내의 소란스러움이 이해가 가면서도, 이런 여자일 줄 알았으면 좀 더 친절해야 했었나는 생각을 하다가 곧 잊었다. 환자를 살려야 했다. 절대 죽으면 안 되었다.
4.
나는 그 남자에게 바로 달라붙었다. 숨이 가빠졌고, 전신의 혈색이 벌써 옅어져가고 있었다. CT를 찍는 동안 혈압은 이미 위험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의식은 남아 있었지만, 분명 희미했다. 그는 중국말로 무엇인가 중얼대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상태를 보자 이젠 한국말이 아닌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질렀다. 상황은 급속히 냉각되었다. 나에게 죽음을 자주 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위화감이 온 몸을 관통했다.
“직접 전화할 시간 없어. 흉부외과 무조건 내려오라고 해. 지금 당장 열어도 죽을 수도 있다고 하라고!”
나는 가장 굵은 흉관과 중심정맥관을 달라고 소리질렀다. 그리고 수액 더미와 몇 리터의 피도 빨리 준비해달라고 고함쳤다. 그가 온지 삼십 분이 넘었다. 이 오더가 늦은 것이였으면, 그건 전부 내 책임이었다. 살아서 수술방에 올리지 않으면, 나는 그 반대의 사실을 절대 견딜 수 없을 것이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환자의 상태와, 의심되는 질환, 그리고 흉관 삽입과 중심 정맥관 삽입의 설명과 그에 따른 부작용의 설명, 그리고 동의서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취할 시간도 부족했다. 설명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환자는 알아 듣지 못했고, 보호자도 그런 걸 알아들을 때가 아니였다. 절차를 따르다간 정말 죽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날카로운 메스를 집었다. 그리고 그의 두꺼운 7번 갈비뼈와 8번 갈비뼈 사이를 더듬어 푹 찔렀다. 메스는 경쾌하게 박혀 구멍을 냈다. 메스를 던지고, 손가락 두 개로 그 구멍을 사정없이 찢었다. 핏덩이가 그 안에서 넘실거렸다.
나는 흉관을 큰 겸자로 집어 사정 없이 그 구멍 안으로 박았다. 마취가 덜 되었는지 환자가 마지막 힘을 다해 움찔거렸다. 흉강 안의 압력이 관으로 밀려 나오면서, 보가 터진 듯 피가 쭉 뿜어져 나왔다. 열자마자 쏟아진 핏줄기는 내 수술복 상의와 하의, 그리고 신발에 고스란히 쏟아졌다. 나는 피할 틈 없이 흉관을 끝까지 밀어넣었다. 이미 바닥에 피가 흘러 웅덩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1.5L 버틀을 거치하자, 누군가 물을 들이 붓는 것처럼 쭉 차버렸다. 나는 두터운 실을 들어 흉관의 거치부분을 사정없이 꿰맸다. 뒤에서 아내가 다시 소리질렀다.
“살려내요. 살려내란 말이에요.”
나는 피묻은 옷과 장갑을 그대로 끼고 커튼 바깥으로 나가서 외쳤다.
“저 건들여서 방해하다간 당신 살인자 될 수 있어요. 이제 진짜로 조용히 하시죠.”
그의 아내는 피를 뒤집어쓴 나를 훑어보더니 정말로 잠잠해졌다.
흉관을 넣자 혈압이 더 떨어졌다. 환자는 이제 전신이 탈색된 것처럼 새하앴다. 달마 대사도 기운을 잃어 축 처져 보였다. 나는 그에게 산소를 투여했다. 그는 산소 마스크 사이로 무슨 이야긴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피묻은 장갑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장갑을 꼈다. 그 길로 바로 그의 어깨부분에 수혈을 위한 중심정맥관을 쑤셨다. 그는 움찔거렸지만, 별 다른 반항 없이 그 굵은 주사기를 받아 냈다. 나는 만족할 만큼 중심정맥관을 환자의 몸에 틀어 넣고, 공격적인 수혈을 시작했다.
5.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시간당 2L가 넘는 다량의 혈흉이 쏟아졌다. 안쪽 동맥이 끊겨 피가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즉시 수술의 적응증이기도 했고, 사망 가능성도 높았다. 수혈과 수액에도 불구하고, 혈압과 의식은 죽지 않을 정도만 유지되었다.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싸움, 수술방에서 갈비대를 비집고 들어가 동맥만 잡으면 살 수 있었다. 버티기만 하면 된다.
처음부터 마취과와 수술방까지 윽박지른통에 응급 수술은 순조롭게 준비 중이었다. 나는 주사기를 계속 집어들고 환자를 쑤셔 혈압의 강하를 막았다. 바늘이 몸 안에 들어갈 때마다 그의 육체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비명도 지르지 않고 늘어져 천장만 바라보고 중얼댔다. 흐려지는 의식으로 그의 말은 멀고, 불분명했다. 그의 험상궃은 동자가 흐리멍텅했다.
사방에 매달린 피가 사정없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지혈제와 혈장도 같이 매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맥박이 요동치다가, 안정적인 선에서 유지되었다. 산소 교환도 그럭저럭 가능했다. 환자는 잠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통증에 반응했다. 혈압은 계속 조금씩 떨어졌지만 다행이 마지노선에서 강하를 멈췄다. 건장한 이십대가 아니였으면, 진작에 이대로 죽어버렸을 것이었다.
그는 고요히 피웅덩이를 깔고 누워 있었다. 그의 피를 몇 리터쯤 갈고, 의료진이 전부 피투성이가 되자 수술방에서 호출이 왔다. 수술은 얼마 걸리지 않고, 곧 회복될 수 있을 것이었다. 살았다. 이겼어, 생사의 기로에서 그를 건져 올린거야. 여자도 살인마는 면하겠군.
6.
나는 안도했다. 급박하게 에너지를 쏟았으므로 약간의 허탈감도 전해져 왔다. 나는 마지막까지 환자의 곁에 서서 혈압과 맥박, 그리고 산소포화도를 확인하며 생각했다.
‘내가 살려냈다. 이 사람 나한테 고마워해야겠어. 그 전 케이스들이 도움이 많이 됐어. 정신이 번쩍 들더라니깐. 근데, 나 방금 조금 멋있지 않았나? 피를 뒤집어 쓰고 흉관을 콱. 그리고, 살인자 될 수 있으니 조용히 하시죠. 아, 멋지고 통쾌한 대사였어. 흐흐.’
나는 제법 우쭐했다. 그의 맥을 마지막으로 관찰하며 나는 약간의 자만에 도취되어 서 있었다.
이제 그는 응급실에서 떠나 수술방으로 옮겨지려 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눈을 보았다. 처음으로 그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지막까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눈빛, 그 입모양, 그 언어, 그 생각…
나는 갑자기 번개처럼 그 말이 머릿속에 들어와 전류처럼 흘렀다. 아주 간단하고, 지극히 당연하며, 알 수밖에 없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말이였다. 짧은 유학과 여행 생활, 아니, 그런 것이 없어도 알아 들을 수 있는 말. 그것은,
내가, 이제, 죽게, 되느냐고 묻는 네 단어의 의문문이였다.
그들의 방랑은 직접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낯선 나라에서 돈을 벌고 살아내야 하는 삶의 투쟁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외롭게 생존해야 했다. 그것은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세계가 아니었다. 그, 생면 부지의 나라에서 갑자기 몸에 가위가 날아와 꽂힐 때, 자신의 몸에서 핏덩이가 쏟아질 때, 낯선 병원에서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의사의 전후 사정 없는 굵은 바늘과 극심한 통증을 견딜 때, 어지럽고 자신의 세계가 흩어져 가며 정신이 흐려질 때, 주위는 온통 피투성이이고 자신은 피웅덩이를 베고 누워서 흉관으로 흐르는 자신의 피를 바라볼 때, 알고 싶었던 것은 오직 그것 하나였을 것이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지라도, 자기는 무조건 묻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을 견디면 살 수 있느냐고. 살아서 눈 뜰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가 처음부터 중얼거리던 것은 바로 그 의문문이였던 것이다.
벼락처럼 그 말이 내 몸속에 들어온 순간, 나는 머릿속에 들어 차 있던 혈압, 맥박, 산소 포화도 등이 머릿속에서 싹 달아나버렸다. 이곳에서 이 말을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내가 주치의였다. 나는 의사라는 명찰을 달고 내 환자의 존엄과 고독은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자기 혐오가 들어 구역감이 밀려왔다. 나는 처음으로 그의 눈을 똑똑히 주시했다. 그리고 입을 열어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해갔다. 그것은 내가 몇 년만에 사용하는 중국어였다.
“당신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곧 편히 잠들 것이고, 눈을 뜨면 당신의 남은 세계가 펼쳐질 겁니다. 당신은 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당신을 살려 낼 겁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중얼거리지도 않았다. 의외의 모국어를 들어서인지, 아니면 의식이 떨어져서인지 그의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바로 놓고 초첨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곧, 그를 실은 침대는 수술방으로 빨려들어갔다.
7.
밤을 새고 아침 퇴근 준비를 했다. 중환자실 환자 명단에 그가 살아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 쓰여진 그의 생체 징후는 안정적이었다. 여전히 그의 행복은 컴퓨터에 나오는 숫자 몇 개로 대변되었다. 나는 그가 눈을 떠서 만난 중환자실과, 앞으로 펼쳐질 그의 남은 세계를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군.’
나는 무엇이든 부끄러워졌다.
나는 응급실 문 밖을 나섰다. 겨울 바람이 유난히 매서웠다. 나의 다른 세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원문: 남궁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