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라인(line) 도메인 판결이 논란이 되고 있다. 사건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 한 개인이 line.co.kr 도메인 이름을 소유하고 있는데, 라인 경쟁사에 포워딩 되도록 링크를 걸어두는 등의 문제 발생
- 라인 코퍼레이션(네이버)에서 소유자를 상대로 인터넷주소분쟁조정위원회에 “도메인네임을 말소하라”는 취지의 조정 신청을 해서 말소 결정을 받음
- line.co.kr 도메인네임 소유자가 이에 불복하고 서울지방법원에 ‘부당하다’고 소송
- 서울지방법원에서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가 없으므로 이를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
즉, 결론은 개인이 소유한 line.co.kr 도메인 이름이 부당한 사용 등에 해당하므로, 이를 말소하라는 조정이 법원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는 내용이다.
‘라인’과 ‘네이버’라는 이름이 걸려 있어서 꽤 큰 논란이 일었는데, 여기서는 일단 이 소송은 뒤로하고 도메인네임의 일반 규정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이 일반 규정을 알면 어떻게 이런 조정 결과와 판결이 나왔는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도메인 이름=준공공재
옛날에 한 때는 도메인 네임을 선점해서 장사를 하기도 했다. 유명한 회사들이 사용할 만한 도메인 이름을 미리 등록해두고 나중에 회사가 이걸 원할 때 파는 방법이었다.
도메인네임 선점이 극성을 부리자, 돈 주고 사기 싫거나, 협상이 잘 안 된 경우엔 이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이름 앞에 i나 e를 붙이는 방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imbc 같이 말이다.
이런 도메인 선점으로 큰 돈을 번 사람들도 있고 해서 예전부터 인터넷을 사용한 사람들이라면 다들 그런 뉴스 한 번쯤은 접해봤을 테다.
이런 현상에 문제가 있다고 본 국제기구 WIPO(세계 지식 재산권 기구)와 ICANN(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는 도메인네임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립했다. 도메인네임을 ‘준공공재’로 본다는 것이다.
이걸 다시 주의해서 머리에 입력하자. ‘도메인 이름=준공공재’라는 것.
세상이 변했는데 그에 발맞춰 나의 지식이 업데이트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 경험에 따라 현재 일어나는 현상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랬지만, 도메인네임이라는 게 현실 생활에서 뭐 그리 딱히 크게 문제가 될 때가 별로 없기 때문에 관련 지식을 업데이트하고 관심 있게 바라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관련 지식 또한 과거의 경험에 머물러 있었고. 이번 기회에 이 지식을 업데이트해보자.
준공공재
준공공재는 사적 재산과 공공재의 중간 성격을 가진 재산, 서비스다. 예를 들면, 공공교통, 교육, 도서관 등이 이에 포함된다. 공공재 같은 성격을 띠기는 하는데 시장에서 생산, 공급이 가능한 것으로, 대체로 비용의 일부는 국가가 부담하고, 일부는 소비자가 부담한다. 대표적으로 ‘시내버스’를 생각하면 된다.
시내버스의 예를 한 번 들어보자. 대체로 회사 수익에 맞춰서 버스 노선을 결정하긴 한다. 그런데 만약 신생 버스회사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기존 버스 노선들과 거의 똑같이 겹치는 노선을 짜버리면 지방정부에서 제재를 가할 테다. 그리고 수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서로 양해할 수 있는 선에서 극소수의 주민들을 위해서 노선을 약간 조정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운수회사 마음대로 요금을 정할 수도 없다. 이게 준공공재라고 이해하면 된다.
도메인네임도 시내버스와 같은(비슷한) ‘준공공재’로 규정됐다. ICANN에서 ‘임대’해주는 것이므로, 완전한 개인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게 왜 준공공재인가?”, “나는 반대한다.” 등의 논의는 잠시 미뤄두도록 하자. 국제기관이 국제법으로 정했으니 개인이 왈가왈부해봤자 소용없다.
도메인 이름 일반 규정
도메인 이름은 국제기구에서 빌려주는 것이므로, 분쟁이 생겼을 때 국제기구에서 조정도 한다. 이번 ‘라인’ 사건과 같이 말이다(라인 사건 하니까 무슨 라인강에서 사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드는데).
이때, 일반도메인 분쟁조정에서 ‘말소 신청’이 인정되는 경우는 아래와 같다.
일반도메인 분쟁에서 도메인이름의 이전 또는 말소 신청이 인정되는 경우
- 신청인의 상표 또는 서비스표와 등록인의 도메인 이름이 동일하거나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유사할 것
- 등록인이 그 도메인이름의 등록에 대한 권리 또는 정당한 이익을 가지고 있지 아니할 것
- 등록인의 도메인이름이 부정한 목적으로 등록 및 사용되고 있을 것
(위 3가지 요건에 모두 해당해야 함)
첫 번째 조항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테다. 도메인 이름이 기존 사용 이름과 유사한 경우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말이다.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보유하지 않고 판매 목적으로 보인다거나, 이상한 사이트로 연결시켜서 부정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 아래 조항들도 살펴보자.
분쟁대상 도메인이름의 이전 또는 말소신청이 기각되는 경우
: 등록인이 도메인 이름의 등록이나 사용에 아래의 경우와 같은 정당한 권리나 이익을 가지고 있는 경우
- 등록인이 도메인이름에 관한 분쟁의 통지를 받기 전에 상품 또는 서비스의 제공을 위하여 부정한 목적 없이 해당 도메인이름이나 이에 대응하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거나, 사용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경우
- 등록인이 상표권이나 서비스표권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해당 도메인이름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었던 경우
- 등록인이 상업적 목적으로 해당 도메인이름을 사용해서 소비자를 오인시키거나, 관련 상표나 서비스표를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방법으로 비상업적 또는 공정한 사용을 하고 있는 경우
이렇게 도메인 이름의 이전 또는 말소신청이 인정되는 경우와 기각되는 경우를 함께 살펴보면 대충 감이 잡히리라 본다. 핵심은 ‘정당한 사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분쟁조정 결정이 내려지면 결정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10영업일 이내에 관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정 내용대로 도메인 이름은 이전 또는 말소된다.
국내법
국제법과 별도로 국내에는 ‘인터넷주소자원법’이 있다. ‘부정경쟁방지법’에서도 도메인 이름에 관한 내용이 있고. 그런데 어차피 국제법에 근거해서 만든 법이고, 국제법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국제기구에서 조정 결정이 내려지면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진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
제12조 (부정한 목적의 도메인이름등의 등록 등의 금지)
① 누구든지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의 도메인이름등의 등록을 방해하거나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얻는 등 부정한 목적으로 도메인이름등을 등록·보유 또는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는 제1항을 위반하여 도메인이름등을 등록·보유 또는 사용한 자가 있으면 법원에 그 도메인이름등의 등록말소 또는 등록이전을 청구할 수 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정의)
1. “부정경쟁행위”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중략)
아. 정당한 권원이 없는 자가 다음의 어느 하나의 목적으로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성명, 상호, 상표, 그 밖의 표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도메인이름을 등록·보유·이전 또는 사용하는 행위
(1) 상표 등 표지에 대하여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 또는 제3자에게 판매하거나 대여할 목적
(2)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의 도메인이름의 등록 및 사용을 방해할 목적
(3) 그 밖에 상업적 이익을 얻을 목적
다른 사례들
네이버라는 이름 때문에 이번 사건이 크게 불거졌지만, 이와 비슷한 혹은 좀 더 심하다 싶은(?) 내용은 더 있다. 라인 사건 관련해서 판단에 도움이 될 만한 두 가지 사례만 살펴보겠다.
트위터
미국 트위터사(twitter.com)가 twitter.co.kr을 보유한 한국인 개인과의 소송에서 이긴 사건. 재판부는 이 도메인 소유자가 3천여 개의 도메인 이름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판매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서 ‘부정한 목적’으로 판단하고 트위터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네트웍스
삼성네트웍스 주식회사가 samsung.la 도메인 이름을 보유한 사람을 상대로 분쟁조정 신청을 함. WIPO에서는 이 도메인 이름을 삼성 측에 이전하라고 판결함.
이 사건에서는 이 도메인 이름 보유자가 samsung.la를 단순히 보유하고 있기만 했다. 그리고 ‘개인적 사정으로 이용하지 않고 있다’라는 답변을 제출했다. 즉, 도메인 이름을 보유만 하고 있을 뿐,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거나 하지 않은 케이스다.
하지만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중재조정 센터’에서는 ‘부적한 목적’이라 판결하고 이전은 명령했다. 판결의 핵심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검토 및 판단
A. 상표와 도메인이름의 동일·유사성
분쟁도메인이름 <samsung.la>는 신청인 보유상표 SAMSUNG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된다.
B. 피신청인의 권리 또는 정당한 이익
– 피신청인은 “samsung”에 대하여 상표권 또는 기타 권리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삼성그룹이나 그 계열사인 신청인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청인은 피신청인이 분쟁도메인이름에 대해서 어떠한 권리나 정당한 이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 피신청인은 고유명사인 삼성이 아닌 일반명사로 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 행정패널은 “삼성”이라는 상표의 주지저명성과 피신청인이 분쟁도메인이름등록 당시 신청인과 신청인의 상표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은 점, 피신청인이 분쟁도메인이름을 답변서에서 주장한 일반명사의 의미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신청인이 신청인의 상표권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삼성”이 일반명사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추상적 사실이 피신청인이 분쟁도메인이름을 규정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나 정당한 이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위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본다.
C. 피신청인의 부정한 목적
– 신청인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신청인이 ‘삼성그룹’의 회사들을 통하여 등록하고 있는 상표인 “삼성”과 Samsung은 전 세계에 널리 인식된 주지저명한 것임이 충분히 인정된다.
– 그렇다면 피신청인에 의한 분쟁도메인이름의 등록 및 사용은 이를 우선등록함으로써 신청인에 의한 도메인이름의 등록을 방해하고 이를 통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 위한 것이거나 최소한 그 사용에 있어 신청인 상표의 저명성을 이용하여 인터넷이용자들을 부당하게 유인하기 위한 부정한 목적의 것이라 판단된다.
– 피신청인은 개인적인 사유로 인하여 분쟁도메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나 신청인의 상표가 주지저명한 것과 기타 제반 사정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소극적 보유행위는 부정한 목적을 인정하는데 방해되지 아니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최근 추세가 이렇다는 정도로 알아두면 되겠다.
사족
어쨌든 네이버가 다짜고짜 이렇게 욕을 먹는 이유는 그만큼 네이버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는 것이 아닐까? 최소한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네이버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는 있어 보인다.
원문: 빈꿈 EMPTYDREAM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