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느낌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나는 너를 사랑한다. (…) 그러나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답을 찾으려 애쓰지는 말자. 이런 종류의 질문이 신파극에서나 들을 수 있는 진부한 대사가 된 지 이미 오래거니와 전해오는 풍문을 듣자면 사랑, 혹은 성(sex)에 대한 정의조차 바뀔 모양이니까.
‘섹스 로봇’ 출시가 임박했다는 소식이다. 상상력 풍부한 사람은 지금도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있는 ‘어른(?) 용품’을 상상할지 모르겠으나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그런 상상조차 겸연쩍게 만든다. 15년 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남자 로봇(주드 로가 연기했는데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섹시했다)은 망설이는 여성 고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평생 나를 잊지 못할 거예요.” 머지않아 이런 일을 실제 목격하게 될 모양이다.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AVN 성인용품 엑스포’에서 섹스 로봇 ‘록시(Roxxy)’가 첫선을 보였다. 록시를 만든 트루 컴패니온 따르면 록시는 170cm의 키에 54kg 몸무게, C컵 크기의 가슴을 지녔다. 합성 피부와 인공관절을 가진 록시의 가격은 7,000~9,000달러 수준.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피부색과 가슴 크기는 물론 성격까지 선택할 수도 있다. 제조사는 남자 로봇 ‘록키(Rocky)’도 출시할 예정이다. 이 로봇들은 곧 양산에 들어간다.
최근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일군의 과학자들이다. 영국의 로봇 인류학자인 캐서린 리처드슨 박사와 스웨덴의 로봇공학자인 에릭 빌링 박사는 ‘섹스 로봇에 반대한다’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지난달 홈페이지까지 개설했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여성과 아이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정당화할 뿐 아니라 인간이 상호작용에서 얻을 수 있는 공감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기술은 중립이 아니다. 섹스 로봇은 성적 착취에 기여할 것이다.”
수십 년 내에 섹스 로봇이 보편화할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진단이다. 로봇과 관계하는 모습은 상상으로 가능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남녀(사람)의 관계가 어떤 모습일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사랑의 몰락이다. 몰락한 사랑과 성에서는 어떤 윤리학(에티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런 세상에서도 일상의 느낌과 그것을 함께 나누는 일이 소중할까? 잘 모르겠다.
신형철은 자신의 질문에 대해 <느낌의 공동체>에서 이렇게 답한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원문: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