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가 지구 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류가 먹는 주식에서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디저트 시장에서는 큰 혼란이 올 것입니다. 당장 바나나 주스와 스무디를 마실 수 없게 될 것이고 케이크나 빵, 파이와 같은 디저트 레시피도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아울러 바나나를 통해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도 혼란을, 편의점 판매순위 1위를 다투는 바나나 우유도 혼돈에 빠질 것입니다.
바나나를 디저트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바나나가 매우 비싼 과일이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바나나는 버스 요금의 다섯 배 가격이었습니다. 부잣집 아이들만 맛 볼 수 있는 그런 과일이었죠. 하지만 이제 바나나는 마트에서 가장 싼 과일에 속합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디저트로도 만들 수 있죠. 이런 바나나가 점점 멸종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과학자가 바나나의 멸종을 우려하고 있으며 인류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의 품종은 캐번디시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세계 작황의 45%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 한 품종만을 우리가 즐긴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유전적으로 보았을 때 전세계의 바나나는 모두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하나의 품종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가집니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똑같은 병에 항상 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바나나는 사탕수수처럼 플랜테이션으로 넓은 지역에서 대량 재배를 합니다. 철저히 수익을 위한 방법이지만 이러한 방법은 전염병이 돌면 급속히 확산된다는 취약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바나나에 가장 취약한 병은 바로 이 파나마병입니다. ‘바나나 암’으로 불리는 이 병에 걸리게 되면 바나나 나무의 잎사귀가 누래지면서 과일을 말리게 되고 바나나가 썩어버립니다. 곰팡이인 이 병은 이미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 퍼졌고, 호주 지역까지 강타하고 있습니다. 전염 속도도 빠릅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점은, 이를 막을 대책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미 바나나는 멸종된 적이 있습니다. 과거 바나나는 캐번디시 종이 아니라 그로스 미셸이라는 종으로 인류에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로스 미셸도 파나마병의 확산으로 결국 사라졌습니다. 캐번디시보다 훨씬 달고 훨씬 상품성이 좋은 그로스 미셸이었지만 이 역시도 단일 품종이었기에 파나마병에 취약했습니다. 캐번디시는 그로스 미셸보다 덜 달고, 상품성도 떨어지지만 그로스 미셸보다 전염병에 강했기에 재배되어 지금까지 인류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바나나의 인류학적 의미
바나나는 인류학적으로도 많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쉽게 썩고 물러지는 바나나의 특징 → 냉장 운송의 발명
- 바나나의 항구 도착을 알리기 위한 라디오 통신 도입
- 바나나의 이력 관리를 위해 바코드가 처음 도입
- 바나나 하나하나에 스티커를 붙여서 과일에 브랜딩 개념을 도입한 것도 바나나가 처음
- 중앙아메리카 곳곳에 철도를 준설한 이유는 플랜테이션 농장의 기업이 바나나를 빠르게 운송하기 위함
(출처 : 보그 코리아)
바나나로 인해서 인류의 문명은 발전하였지만, 그 안에는 어두운 부분이 많습니다. 죄를 가진 과일이기도 하죠. 20세기 내내 미국인들의 바나나 사랑을 맞추기 위해서 중앙아메리카 소국들의 역사는 망가졌습니다. 수많은 바나나 대기업들은 학살과 노동착취를 일삼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인터스텔라의 홍보 문구처럼 인류는 또 답을 찾을 것입니다. 캐번디시종이 멸종되더라도 또 다른 종을 재배해서 먹게 되겠죠.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바나나의 종은 400여개에 달합니다. 이중에서 또 대량 재배를 할 수 있는 종을 찾아내 유통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나나의 멸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1%의 위험성’입니다. 모양과 맛이 모두 똑같은 바나나는 그만큼 취약합니다. 유전적으로 달라야만 어떤 바나나는 죽어도 어떤 바나나는 살아남을텐데 하나의 유전자는 그럴수가 없습니다.
1의 위험성은 모든 분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유전자를 가진 복제생물들, 하나의 기업이 독점하는 산업계, 하나의 여론만이 형성되는 언론, 한 명의 독재자가 지배하는 공동체, 하나의 영화만이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관, 하나의 정당이 차지하는 권력. 인류에게 다양성이란 그래서 중요합니다. 다양성이 사라진 세상에 인류는 스스로 약해집니다. 그 어떤 이유에서도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의 품종을 가진 바나나는 늘 멸종위기에 처합니다. 사람이라고 다를까요? 사람도 1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출처: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