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이야기하는 혁신의 순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1.
1916년 8월, 솜므 평원에서 독일군과 대치 중이던 영국군은 새 장비를 지급했다. 지난 2년간 영국군 사령부의 골치를 썩여 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서유럽의 전장에 등장한 기관총은 참으로 놀라운 무기였다. 이것 몇 대만 있으면 아군 진지로 달려드는 수백 명의 독일군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무기의 단점은 단 하나, 독일군도 이걸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 그것도 아주 많이. 독일군 진지를 공격하던 영국군은 영국군 진지를 공격하던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빗자루에 쓸려 나가듯 쓸려나갔다. 양쪽 다 상대방을 밀어낼 능력이 없는 탓에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지난 2년간, 양군은 머리를 쥐어짜 가면서 상대방 참호 진지를 뚫는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시체의 산만 잔뜩 쌓았을 뿐, 그 어느 것도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이번에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영국군 사령부 역시 반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다만, 이번 아이디어는 좀 많이 괴악스러웠다: “커다란 군용 트랙터에 강철 장갑을 씌워서 만든 이동식 기관총 진지로 독일군 진지를 공격하자.” 이날 영국군이 받은 무기는 이 괴악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것이었다. 영국군은 행여 독일군 스파이가 이 신무기를 알아챌까 봐, 본국에서 운반해 올 때도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신무기에 커다란 포장을 두르고, 가짜 물품표를 붙여 놓기까지 했던 것이다: “물통(Tank)”
한 달 뒤인 9월 15일, ‘물통’이 전장에 데뷔했다. 생전 처음 보는 강철 괴물에 독일군은 혼비백산했다. “움직이는 기관총 진지”의 도움에 힘입어 그날 영국군은 3km 정도를 전진할 수 있었다. 얼마 안 되어 보이지만, 두 달 전 독일군 진지를 공격하러 나갔다가 크게 깨지고 쫓겨 온 것에 비교하면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날 목숨을 잃은 영국군 장병만 57,000명이 넘었다.
2. 혁신의 순간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가?
언젠가부터 ‘혁신(innovation)’이라는 말은 우리 삶에서 가장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혁신이란 ‘기존의 방식이나 상태를 확연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 새로이 한 것’으로 정의된다. 우리는 활판 인쇄술부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을 바꿔 놓은 수많은 혁신들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이라는 이름의 성배를 찾아 헤매고, 이걸 이루어낸 사람들은 큰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실로 ‘혁신’이란 시대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혁신’이 태어난 순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래 사진은 구텐베르크가 처음으로 인쇄한 “42행 성서”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도서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지식의 유통과 보급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보다시피 정작 이 책은 별로 혁신적이지가 않다. 오늘날의 책보다는 필경사가 일일이 베껴 화려한 장식을 입힌 중세의 수서본을 더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양피지 대신 종이를 썼다는 것 그리고 직접 베끼지만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중세의 흔한 수서본하고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가격 역시 중세의 수서본만큼이나 비싸서 밥 한두 끼 비용으로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지금의 책하고도 거리가 멀다. 도대체 이런 물건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바꿔놨다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구텐베르크 성서만 이상한 것일까? 그렇다면 또 다른 사례인 철제 다리를 보자. 철제 다리는 지금의 물류 시스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위치를 차지한다. 나무나 석조로 만들어진 다리보다 훨씬 먼 거리를 연결함으로써 교통 거리를 획기적으로 단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인 혁신의 주인공은 1781년, 영국 슈롭셔에 세워진 아이언 브리지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건축물 역시 그리 혁신적이지가 못하다. 별로 크지도 않은 주제에 380톤이나 하고, 무엇보다 기존의 목조 다리와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만든 탓에 재료 빼면 다른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은 실로 무수히 많아서, 오히려 안 그런 케이스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러니까, 혁신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정작 혁신의 순간에 ‘혁신적인 그 무엇’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3. ‘혁신’, 그리고 ‘개선’
흔히 ‘혁신’이라 불리는 사건은 ‘개선’ 혹은 ‘개량’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된다. 전자는 기존의 것에서 완전히 단절된 급격한 변화로 생각되는 반면 후자는 기존의 연장선상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작은 변화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은데, 일반적인 편견과는 달리 혁신은 지속적인 개선과 개량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선 ‘혁신’이 종래에 없던 뛰어난 생각의 산물이라는 생각 자체가 미신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혁신이라 불리는 사건들은 다른 점진적인 개선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있던 아이디어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구텐베르크 시대에 이미 ‘유성 잉크로 글자를 찍어낸다.’는 아이디어는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필경 작업을 할 때 문단 첫 글자를 일일이 그리는 건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유리로 만든 스탬프를 사용해서 찍어 냈던 것이다.
압착기 또한 아주 흔한 물건이었다 – 와인을 만들 때 사용되는 도구였으니까. 인쇄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활자일 텐데, 이것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구텐베르크의 가업은 화폐 주조였고, 때문에 그는 어떻게 하면 정교한 요철이 있는 금속 부품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빠삭한 사람이었다. 철제 다리 같은 경우는 훨씬 더 명확하다 – 천 년 전부터 존재한 목조 다리 건축물에 사용되는 부품들만 철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 ‘혁신’이 ‘개선’과 다른 점은 대체 뭘까? 좀 우습지만, 혁신은 문제투성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혁신의 순간을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드는 것 또한 바로 이 문제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개선 방향과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초의 철제 다리는 실패작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의 물건이었다. 목조 공법에서 쓰이던 부품들을 철로 하나하나 주조해서 조립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게가 워낙에 엄청나다 보니 얼마 안 돼 다리에 금이 가는 등 문제가 속출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철이라는 재료가 가진 특성에 주목했고, 이를 활용하는 전혀 다른 방식의 건축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거대한 철제 다리는 이러한 개선의 결과물이다.
활판 인쇄술도 마찬가지였다. 구텐베르크 시대에 책이란 필경사가 양피지 위에 하나 하나 베껴서 만든 귀중품이었다. 구텐베르크 역시 자신의 작업을 필경 작업의 연장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 비싼 물건을 한꺼번에 만들면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쇄 작업이 반복되면서, 질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가 제기되었다. 인쇄된 책은 베낀 책과는 달리 (지금은 당연하지만 그때로서는 처음 보는) 양산품이었던 것이다. 조판을 보존하면 얼마든지 새로 책을 찍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활자는 점점 더 많이 제작되었다. 활자의 가격은 계속해서 내려간 반면 품질은 향상되었으니, 더 많은 책들이 인쇄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더 많은 책이 인쇄되어 나오고 경쟁이 계속되면서 책값이 저렴해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이 사치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구텐베르크의 작품에서 보이는 화려한 장식을 위한 여백과 가죽 장정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이제 책은 종이로 표지를 만들었고 여백도 줄어들었다. 이전보다 글자가 더 작고 빽빽해지면서 출판사들은 가독성이 좋은 서체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더 정교한 인쇄가 가능하게 되자, 출판사들은 금서로 지정된 책을 감추기 쉬운 소형 판본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이 기나긴 개선의 과정에서 인쇄술은 ‘필경 작업의 연장’을 넘어서서 인류사를 바꿔놓은 진정한 혁신이 됐다.
이렇게 놓고 보면, ‘혁신’이라 불리는 사건들과 ‘개선’이라 불리는 사건들의 관계가 보인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혁신의 순간에는 정작 혁신적인 무언가가 별로 없다. 다만 이 사건은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점과 가능성을 드러냄으로써 개선 작업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의 삶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오는 주체는 그 뒤를 따라오는 반복적인 개선 작업이다. 혁신이라 불리는 사건이 없으면 개선 작업도 없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개선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문제 많던 초기버전을 혁신적인 사건으로 기억한다. 개선이 없으면 혁신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둘은 서로 완전히 모순되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관계다.
4. 갑옷 입은 트랙터에게 일어난 일
다시 전차 이야기로 돌아가자. 앞서 이야기했듯이, 독일이라는 나라는 전차의 탄생에 별 기여를 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전장에 투입한 나라는 영국이고, 그나마 가장 먼저 개발을 시작한 나라는 프랑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전차는 독일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고, 독일 축구 대표팀에는 으레 “전차군단” 같은 별명이 붙는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전차를 진정한 혁신으로 만든 것이 바로 독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전장에 데뷔한 전차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물건이었다. 뒤뚱뒤뚱 겨우 움직이는 주제에 툭하면 고장이 나서 멈춰 섰다. 독일군도 곧 연합군의 전차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전차가 연합국의 전쟁 승리에 크게 이바지하지 못한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쟁이 끝난 뒤(1918), 처음으로 자국 전차를 제작한 독일 육군 역시 이 ‘철갑 입힌 트랙터’가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초기의 전차는 차량을 움직이는 운전수와 기관총을 사격하는 전차장 두 사람이 조종했는데, 전차장이 전장 상황도 살피고 이동 지휘도 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할 일이 많았다. 전차장의 시야가 심각하게 제한되는 것도 문제였다. 덕분에 독일 육군은 이 잡동사니를 쓸만하게 만들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독일 국방군이 전차를 가지고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참전하게 되자 더 많은 문제점이 보고되었다. 전차에 달린 기관총은 별 쓸모가 없었던 반면 장갑은 너무 얇아서 포탄을 맞으면 한 방에 날아갔다. 처음 전차를 제작할 때는 예상치도 못했던 문제점들이 쏟아져나왔던 것이다.
이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독일 육군은 ‘전차라는 물건은 어떻게 만들어서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해 감을 잡기 시작했다. 우선 포탑(Turret)을 더 크게 만들어서 포수와 장전수를 배치하고,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쉽게 여닫을 수 있는 해치를 설치했다. 이렇게 되자 전차장은 전차 지휘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시야 역시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더 큰 출력을 지닌 엔진과 더 큰 차체, 더 두꺼운 장갑판이 추가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전차는 기관총이나 박격포 같은 물건과는 전혀 다르다. 고로 보병 부대에 공용화기 나눠주듯 운용해서는 안 된다.’ ‘전차만으로 이루어진 기갑부대를 편성하여 적 방어선을 뚫어야 한다.’ ‘기갑부대의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모든 전차에 무전기를 달고, 조작을 전담하는 무전수를 배치한다.’ 끊임없는 개선과 발전 사이에서 전쟁기술의 혁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전차가 등장했을 때, 고위 장성들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재미있는 장난감이지만, 군사적 가치는 별로 없다.” “이런 물건으로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독일군이 기갑부대를 앞세워 육군대국 프랑스를 박살내버리자(1940), 이런 소리는 쑥 들어갔다. 깜짝 무기에서 지상전의 왕자로 발돋움한 전차는 전장의 모습을 바꿔버렸다. 전차가 ‘혁신’이 된 과정은, 이렇게 기나긴 개선과 문제 해결의 과정이었다.
5. 혁신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내 지인들 중에는 스타트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고, 그만큼 ‘혁신’에도 관심이 많다. 대학원에 있는 내게도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 아이디어가 있다며 이런저런 제안을 보내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기발한 창안(혹은 창의력)으로 혁신이 일어난다는 걸 믿지 않는다. 다만 ‘문제점을 발견하고 명확한 형태로 정의하는 일’ 그리고 ‘반복적인 시도와 시행착오를 통한 개선’ 의 중요성을 믿을 뿐이다.
나는 내 주위의 창업자들과 개발자들 또한 이 문제들에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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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문제는 “버그(과정) = 고통” 이라는 등식이다… 하지만 SW의 참 경쟁력은 버그를 해결해가는 과정과 거기에 참여한 개인, 기업들의 시너지에 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해커와 기업들은 그 과정을 기꺼이 즐긴다.”
“흔히 창의성을 키운다면서 과도하게 새로운 발상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새로운 발상도 중요하고, 호기심이나 다양한 시도도 중요하다… 앞 시대를 살다 간 수 많은 천재들의 업적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창의성만을 기대하는 사람을 우리는 ‘아마추어’라고 부른다. ‘프로’는 먼저 수많은 천재들의 업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창의성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