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린에이드, 그리고 탠저린라떼. 음료메뉴에 관심이 있다면 근래에 한번쯤은 들어 봤을 이름이다. 그런데 탠저린은 뭐고, 만다린은 뭐란 말인가. 음료를 만든 이에게 물어 보면 만다린에이드는 귤로, 탠저린라떼는 오렌지로 만든다고 한다.
귤과 탠저린, 만다린의 차이
멀쩡한 단어를 뜯어서 다른 낯설고 소위 있어 보인다는 단어로 바꿔 놨으니, 만다린은 곧 귤이고, 탠저린은 오렌지라는 뜻이겠다. 맞게 추측했나 싶어 사전을 찾아봤다.
tangerine 미국식 [|tӕndƷəri:n] 발음듣기 영국식 [|tӕndƷə|ri:n] 발음듣기 예문보기1. 탄제린(껍질이 잘 벗겨지는 작은 오렌지) 2. 등색, 오렌지색
mandarin(e) [명사] (식물) 맨더린 귤(mandarine orange) (Citrus reticulata 유럽 귤의 일종)
탠저린이 오렌지라는 것 같겠지만, 굳이 ‘껍질이 잘 벗겨지는 작은 오렌지’라고 부연을 해 뒀다. 글자 수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사전 편찬자들이 저렇게 길게 적어둔 데에는 분명 범상치 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성가신 수식어들을 화끈하게 쳐 내고, ‘오렌지네’ 할 사람도 있겠다. 서울대공원의 오랑우탄 보라와 응팔 성보라의 유전자 차이는 수 퍼센트에 불과할 텐데, 이분들께는 굳이 다르다고 구분해 드릴 필요가 있을까 싶다.
만다린은 더 재미있다. 유럽 귤의 일종이라고 적어 두고, 만다린 귤을 만다린 오렌지로 번역했다. 이쯤 되니 오렌지가 귤이라는 건지 만다린이 귤이라는 건지, 사전도 영 못 미더울 지경이다. 하여간 만다린이 적어도 우리가 아는 귤이 아니라 ‘유럽 귤의 일종’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고맙게도 이럴 때 살펴보라고 친절하게 학명이 안내되어 있다. 그래서 오렌지, 탠저린, 귤, 만다린의 학명도 찾아봤다.
학명은 ‘자신의 형질을 후손에게 전할 수 있는 최소의 분류단위’인 종에 고유하게 붙인 이름이다. 그러니 위와 같이 학명이 모두 다르다면, 오렌지와 탠저린, 귤, 만다린이 전부 다른 종이라는 뜻이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잘 구분이 되지 않으니, 실수나 관행적으로 이름을 공유하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지기야 하겠으나 적어도 식물학적으로는 확실하게 다른 종으로 구분되어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일일이 유전자 감식을 해볼 수는 없으니, 각각의 차이를 간략히 구분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말에서 ‘귤’이라 함은 시트러스 속을 칭하는 넓은 의미의 단어다. 위에서 지칭한 Citrus unshiu는 온주귤이며, 이를 줄여 또한 귤이라고 한다. 오렌지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유통되는 그 과일이다.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 둥근 공 모양을 하고 있으며, 과육이 달고 과피와 과육이 단단하여 보관 및 운송이 유리하다.
탠저린과 귤, 만다린은 생김이 비슷해 구분이 어려운 편이지만, 귤화위지(橘化爲枳)라고, 자라는 지역의 차이에 따른 감미와 산미의 차이가 있다. 이 부분은 직접 경험해서 느낄 수 밖에 없는데, 우리 귤이 좀 더 쥬시한 편이다. 대체로 탠저린은 귤보다 껍질이 두껍고 과육이 단단하며, 속에 씨가 있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제주감귤박물관에서는 만다린을 ‘껍질을 벗기기 쉬운 감귤의 총칭’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껍질의 색이 붉고 짙은 것을 탠저린으로, 노란색인 것을 만다린으로 구분하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왜 귤을 귤로 부르지 않나
그런데 왜 우리는 귤을 귤이라 부르지 못하고, 오렌지를 오렌지라 부르지 못하는 걸까. 비단 귤뿐만이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재료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발견된다. 무우를 무라고 부르지 않고 radish로 번역하거나, 쑥을 mugwort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재료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료와 국외에서 생산된 재료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단지 어학사전에 나온 어설픈 번역으로 영문화하려고 하니 이런 일이 생긴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실수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본 재료가 전혀 다른 종으로 바뀔 수도 있고, 결국 레시피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만들기도 한다. 이 작은 실수 하나로 중요한 계약을 그르칠 수도 있고, 누군가의 밥벌이를 망칠 수도 있다.
흔한 재료를 사용하면서 ‘이름 빨’에 기대어 좀 더 전문적이고 세련되게 보이고 싶은 유치한 욕구는 물론 이해한다. 문학적 재능이 부족하여, 그저 낯선 번역어나 사용하면 꽤 괜찮은 이름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냥 귤이라고 하면 좀 촌스럽고, 오렌지도 벌써 너무 흔해진 것 같으니, 좀 색다른 뭔가를 찾고 싶었을 테다.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를 호랑이로 부르는 건 엄연한 사기다. 귤을 만다린이라고 바꿔도 별 문제 없다면, 수매한 로부스타 커피를 볶아서 ‘아라비카 수프리모 커피’라고 네이밍하는 것은 어떤가. 단지 품종이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별 문제 없지 않은가.
한때 일본의 날생선을 처음 본 서구인들이 기겁을 했지만, 일본인들은 결국 가장 일본적인 포장으로 서구인들 입 속에 스시를 밀어 넣었다. 오랫동안 기본을 지키고 꾸준히 노력을 더한 결과, 이제 일식은 하나의 세계적인 음식 카테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산 농작물 역시 여전히 일본명을 지키며 서로 다른 식재료로 구분되어 사용된다.
자존심 상하지만, 김치를 기무치로 알린 건 한국 정부가 아니라 일식이었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전혀 자부심을 찾아볼 수가 없다. 외국인들이 떡의 독특한 식감을 싫어한다는 말에 당장 ‘rice cake’이라고 바꿔 소개했다. 이런 괴상한 영어식 표현에서 한국 고유의 정체성이 배어 나올 리 없다.
우리 땅에서만 나는 식재료에는 분명히 독특한 특징과 선명한 차별점들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향신료나 과일, 채소는 친절한 번역가들 때문에 도무지 발견할 수가 없다. 우리 배가 유달리 달고, 우리 귤이 유달리 새콤하다 한들 저들이 보는 문서에는 평범한 pear와 mandarin으로 적혀 있을 텐데, 세계의 요리사들이 한국의 식재료에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Citrus unshiu라는 학명을 조금만 더 들여다 보자. 다름 아닌 温州다. 중국 Wenzhou산 밀감이라고 하여 Unshiu mikan이다.
우리 귤은 시트러스 중에서도 가장 저렴하고 대중적인 과일이다. 각 산지별 환율을 고려해 봐도 귤보다 싸고 맛있는 경우는 찾기 힘들 뿐더러, 우리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정도로 상품성이 좋은 경우도 드물다. 국내에서는 저렴하고 흔하지만 해외에서 비싸고 맛있는 과일이니, 영어 이름으로 바꿔치기 할 것이 아니라 가공제품이나 생과의 수출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멋진 과일은 거의 모든 한국인이 좋아하는 친숙한 맛을 가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어떤 메뉴로 만들어도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은 우리가 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출처: BEVERAGE ACADE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