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피 빼고 시나몬 넣어 주세요.”
어떤 무식한 여자가 카페에 와서 까탈스럽게 굴더라며, 몇 년 째 지치지도 않고 회자되는 명문이다. 영어사전에서 cinnamon을 찾아보면 보란 듯 “1. 계피 2. 육계나무 3. 계수나무 4. 육계색(황갈색)” 등이 주르륵 나오니, 얼마나 우스웠을까. 사전 한 번 찾아볼 정도의 가벼운 노력 덕택에 이 문장은 카페 진상의 상징이 되었고, 이른바 ‘된장녀’니 ‘김치녀’니 하는 여성혐오 정서와 맞물려 닳고 닳을 때까지 조리돌림 당했다.
계피로 귀가 다 헐어갈 무렵, ‘사실은 그게 아니다’류의 글을 통해 새로운 소식들이 전해졌다. 계피와 시나몬은 엄연히 다른 것이어서, “계피 빼고 시나몬 넣어 주세요”가 사실 뭘 좀 아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사전이 잘못했네 그러니까 다른 사람 함부로 비웃지 말자.
분명한 사실: 계피는 시나몬이 아니다
요즘은 계피와 시나몬을 찾아보면 꽤 많은 포스팅들이 펼쳐지니, 조금만 더 찾아보자.
궁금할 때는 사전보다는 학명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계피의 학명은 Cinnamomum cassia로, 보통 ‘차이니즈 시나몬’이나 ‘카시아’라고 부른다. 반면 시나몬의 학명은 Cinnamomum verum, 직역하면 ‘진짜 시나몬(true cinnamon)’이란 뜻이며, 보통 ‘실론 시나몬’이라고 부른다. 둘 다 Cinnamomum 속의 나무이고, 식물학적으로 계수나무(Cercidiphyllum japonicum)와는 전혀 다르다.
Cinnamomum 속은 Lauraceae 과에 속해 있다. 우리 식물학은 이를 녹나무과 녹나무속으로 적는다. Lauraceae 과의 식물은 나무나 잎, 열매에 정유 성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오래 전부터 향료나 약재로 사용했다. 시나몬과 계피의 독특한 향도 나무 껍질에 있는 휘발성 기름 때문이다. 이 외에도 월계수(Laurus) 속, 생강나무(Lindera) 속 등 50여 개의 속이 있으며, 녹나무(Cinnamomum camphora)를 증류하여 만드는 장뇌(camphor)와 아보카도(Persea americana)도 유명하다.
같은 속이라고 같은 종이 아니다
계피나 시나몬이나 둘 다 같은 Cinnamomum 속이니 비슷하여 구분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복숭아와 자두, 살구와 매실(모두 같은 Prunus 속)을 모두 구분할 정도로 똑똑한 현대인이니, 서로 다른 종을 왜 구분해야 하는지 정도는 이제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늘 그렇듯 몇몇 전문가 분들이 여기에 대해서도 나름의 구분법을 만들어 두셨다. 이를테면 계피는 짙은 갈색이고 시나몬은 붉은 빛이 감도는 밝은 색이라거나, 계피는 나무껍질이 붙어 있지만 시나몬은 속껍질만 쓴다거나 하는 등이다.
시나몬은 대개 어린 나무의 연한 껍질을 벗겨 만들기 때문에 표면이 깨끗하고 마르면서 돌돌 말린 모습이 되는 것이고, 계피는 상대적으로 큰 나무를 말려 껍질을 벗기다 보니 크고 두꺼운 모양이 되는 것인데, 물론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겉모양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현장 구분법의 맹신은 금물이다. 계피도 얼마든지 시나몬처럼 만들 수 있으며, 분말을 보고 시나몬 품종을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비단 우리만 계피와 시나몬을 혼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는 각 지역의 식생이 전 세계적 교역을 통해 거래되면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013년 Journal of Agricultural and Food Chemistry에서 발표된 ‘미국 내 유통되는 시나몬향 식자재의 카시아 시나몬’ 연구(Yan-hong Wang 외, 2013)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Cinnamon 표기를 하고 판매되는 녹나무속 품종은 스리랑카 산 실론 시나몬(C. verum) 외에 중국 시나몬(계피, C. cassia), 사이공 시나몬(C. loureiroi), 그리고 인도네시아 시나몬(C. burmannii) 네 가지다. 미국인들은 이를 각각 ‘실론/진짜 시나몬’, ‘중국카시아’, ‘사이공카시아’, ‘인도네시아카시아’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대부분 우리가 먹는 건 계피일 수밖에 없다
한편, 정말 재미 있는 부분은 지금부터다. 국립산업자원관에서 2014년 후원한 ‘산업별 수입대체 생물자원 근연종 발굴’ 보고서(홍석표, 2014)에 의하면, 한국에 수입되는 계피(Cinnamomum 속)는 대부분 베트남 산이다. 2013년 통계에서는 베트남 계피가 2,127톤으로 전체 수입 물량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뒤이어 중국 계피가 49톤으로 15.7%를 차지하고 있다. 내용은 (여기) 참조. 서구인들의 구분대로 하면 국내 유통되는 계피 중 95.7%가 계피(cassia)이고, 그 중 대부분은 사이공 카시아(C. loureiroi)인 셈이다.
미국이라고 상황이 다를 리 없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베트남산 계피/시나몬 분말 제품은 대부분 1kg 기준 1만원 이하이지만, 아마존 등에서 판매하는 유기농 실론 시나몬 분말은 대개 카시아 분말의 5~10배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Yan-hong Wang(2013) 연구 역시 지난 5년 간 미국 본토에 수입된 시나몬의 90%가 인도네시아 카시아라고 밝히고 있다. 어지간한 상업 제품에 들어간 시나몬은 죄 계피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시나몬과 계피가 다르다는 사실과 별개로, 한국에서 파우더 타입으로 판매되는 시나몬은 대부분 베트남산 계피(사이공 카시아)이니, 고급진 ‘시나몬롤’을 먹든 촌스럽게 ‘계피사탕’을 빨든 결국 같은 계피를 먹는 셈이고, 커피 위에 계피 말고 시나몬을 달라고 해 봤자 영어로 적힌 계피가 올라갈 뿐이라는 얘기다. 이러나 저러나 동네 카페에 가서 계피 말고 시나몬 달라는 건 결국 진상짓이다.
품종이 다르고 맛과 향미가 다르니, 가격만 가지고 시나몬이 고급이고 계피가 저급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다. 가격의 차이는 원료의 품질 뿐 아니라 생산비용과 유통량, 유통경로 등 많은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다만 영국인들이 실론섬에서 오랫동안 차와 향신료의 품종개량을 했다는 점만큼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진짜 시나몬’이라고 거만을 떨 만큼 깊은 자부심 뒤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우리가 그걸 넘을 수는 없는 걸까.
원문: 베버리지 아카데미 / 편집: 리스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