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근대성과 합리성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인 언론의 자유에 힘입어 고양돼왔다. 그러나 한국 언론계는 인력 충원∙교육과정부터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측면이 상존해 민주주의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언론사 수습기자 교육은 인권침해적 과정으로 악명 높다. <단비뉴스>는 수습기자 교육의 실태와 폐해를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4시간 이하 수면, 주 6일 근무, 열정 페이, 잦은 폭언 등 사스마와리(※ 편집주. ‘사스마와리’란 담당 지역 내 경찰서, 법원, 검찰, 장례식장 등을 돌아다니며 기삿거리를 찾는 행동을 뜻한다) 기간 동안 기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은 열악하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여섯 달 동안 반인권적 근로 조건에 노출되는 셈이다. ‘교육’을 받을수록 인권 감수성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 (▲수습기자교육 ① 기사 참조)
종합일간지 5년 차 A기자는 “수습 때 열정페이 받으면서 일한 기자가 노동기사를 쓸 때 정규직의 50% 임금을 받고 일하는 중소기업 직원 이야기에 문제를 느낄까”라고 반문하며 “제보가 들어와도 ‘나도 저렇게 했는데 저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인권침해 요소가 많은 사스마와리를 경험할수록 기자에게 꼭 필요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한편으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랄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취업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언론사가 부당 노동행위 사업장을 고발할 수 있을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4시간 이상 잘 수 없게 수습기자를 몰아붙이면서 우리 사회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비판할 수 있을까? 즉, 지금의 사스마와리 제도는 수습기자 개인의 인권침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좋은 기사, 좋은 기자를 만드는데 이바지하지 못함으로써 언론사, 크게는 우리 사회 전체에 폐해로 작용하고 있다.
“단독 물어와”, ‘기레기’가 만들어진다
공감하지 못해서 ‘기레기’(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조어)가 되는 게 아니다. 선배기자의 무리한 취재 요구에 부응하다 보면 자연스레 ‘기레기’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A기자는 수습 때 장례식장에서 ‘기레기’로 변했던 자신을 잊지 못한다. 누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오라는 사수의 지시에 기어이 ‘무슨 일로 돌아가셨어요?’ 같은 말을 하며 장례식장을 누볐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두 번 상처 주는 질문들이었다. 이 기자는 세월호 참사 때 유가족들을 후벼 파는 질문을 던진 것과 선을 넘은 취재 경쟁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하나라도 더 알아 와야 1진의 타박을 피할 수 있었던 수습 때 버릇이 체득된 것이다.
일상적인 보고에 더해 “단독 가져오라”는 1진의 요구는 취재 경쟁에 불을 붙인다. 2011년 입사한 모 일간지 B기자는 2011년 수습 시절 “너는 왜 단독 안 물어오느냐”라는 닦달에 못 이겨 파출소를 뒤지고 다녔다. 그러던 중 한 자살사건을 알게 됐고, “단독인 것 같으니 온라인으로 쓰라”는 선배 지시를 따랐다. 포털사이트에 올린 뒤 유족들이 기사를 보게 되었다. 유족은 “우리 부모님들은 자살했다는 소식을 못 들었으니 내려달라”고 항의했다. 결국 그 과정에서 노부모가 자식 부부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사를 내려달라 요청한 유족들은 울면서 이 기자를 원망했다.
“남들이 안 쓴 거 한 줄 더 넣겠다고 무작정 경찰들에게 읍소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정보였던 자살 사건을 단독이라며 내보내는 게 우리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만약 선배들이 독촉하지 않고, 단독 압박을 주지 않았더라면 그 기사는 제 선에서 판단해서 쓰지 않았을 테죠.”
군대문화와 도제식, 언제까지 유효할까
없던 단독도 만들어낼 정도로 선배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상명하복. 수습기자에게 1진의 지시는 ‘법’과 같다. 이처럼 엄격한 상하관계는 언론사의 ‘군대문화’를 설명해준다. 일반적으로 수직 구조가 명확한 조직에서는 상향식 의견 개진이 힘들다. 조직 내 소통이 활발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문화와 내부적 문화가 상충한다. 언론사는 호칭에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 국장, 부장, 차장 등 모두 ‘님’을 빼고 부른다. 외부에서 취재할 때 자사의 독자를 대표하기 때문에 기자가 기죽으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수평적 위치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이유도 포함된다. 1진들은 수습기자 교육을 하면서도 ‘기죽지 말고 취재원에게 물어볼 것을 다 물어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1진의 가르침이나 수평적인 호칭 문화와는 반대로 1진과 2진, 1진과 수습기자 관계는 철저하게 수직적이다. 자유로운 비판 정신을 기본으로 해야 하는 기자가 위계질서부터 습득하는 셈이다. 종합 일간지에서 근무하는 8년 차 C기자는 “수습기자들이 처음 왔을 때 받아들이는 군대문화가 변하지 않는 한 언론사가 혁신하기는 힘들 것”이라 말했다.
1진에 복종하는 수습기자 교육문화가 조직을 폐쇄적으로 만드는 것과 더불어 ‘효용’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높다. 시대가 변했는데 도제식 교육이 효과적이냐는 반문이다. 일례로 20년 전 언론사 수나 기자 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때는 일대일로 옆에서 가르쳐 주고, 취재 현장을 같이 다니는 식의 도제식 교육이 효율을 발휘했다. 지금은 매체 수나 기사량이 당시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 취재 영역도 다양해졌다. 선배에게 가르침을 받는 도제식 교육보다 다양한 취재 현장에 발을 담그며 직접 터득하는 게 더 빨리 취재 방법을 터득하는 길이다.
사스마와리가 완전히 없어져도 된다고 믿는 종합일간지 7년 차 D기자는 자신이 수습기자 교육을 맡았을 때 무리한 보고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메일로 보고를 받으며 ‘널널하게’ 교육한 셈이다. 그러나 인권침해를 하지 않고, 자유를 준다고 해서 수습기자들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기자는 “수습기자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던 내 방식에 만족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나중에는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밝혔다. 즉 사스마와리는 ‘제도’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매뉴얼이 없는 기자양성 관행일 뿐이다. 기자 교육이 1진기자 개인에게 달린 현 상황은 제도의 존재에 의문을 낳게 한다.
“한 사람당 하루 8~9매는 써야 하는데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수습기자를 굴리기는 하지만 그만큼 관리는 잘 안 됩니다. 도제식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상 1진이 직접 가르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논쟁적인 사스마와리의 가치
사스마와리는 좋은 기자를 길러내는 데 효과적이지도 않고, 폐해가 너무 명백해 없느니만 못하다는 주장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오늘도 수습기자들은 인권침해를 감수한 채 무리한 취재 경쟁에 뛰어든다. ‘왜 지속하는가’ 또는 ‘왜 이렇게 더디게 개선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크게 ‘대안이 없다’와 ‘쓸모가 있다’로 나뉜다. 전자는 사스마와리를 대체할 교육방식, 혹은 주관할 교육기관이 거의 없는 지금으로써는 존치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대안을 찾지 않는 게으름이 제도를 존속시켜 왔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후자는 반인권적 행태들은 개선해야 하지만, 도제식 교육이 여전히 효과적이라고 역설한다. 기사를 발굴하고 취재하는 방법을 빠르게 체득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사스마와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일간지 5년 차 E기자는 “잦은 보고가 수습기자에게 과도한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하지만 보고를 받는 선배도 똑같이 노력을 하는 셈”이라며 “수습기자 편에만 서서 사스마와리를 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2시간 간격 보고라면 선배 기자는 두 시간 간격으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후배를 위해 그만큼 시간을 쏟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아침 7시에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 짜증 나겠지만, 보고를 받는 선배로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해요. 즉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기사가 안 되는 내용도 챙기고 취재하게 해서 훈련을 시키는 거죠. 도제식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E기자는 기사 쓰는 기술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기에 불가피하게 잠을 희생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취재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고, 밤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는 “경찰서에서 야간 당직 서는 사람들과 만나려면 밤에 경찰서를 지키는 수밖에 없으므로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정해진 시간에만 훈련받기는 힘들다”고 단언했다.
이 밖에도 사스마와리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하고 배우고 체득할 기회, 자신의 한계를 만나고, 극복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밝힌 기자들이 있었다. 수습을 떼고 진짜 기자가 되기 전에 현장에 가혹하게 부딪혀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평균 수면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등 부당한 노동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첨예한 부분은 ‘사스마와리의 가치를 얼마만큼 인정하고, 어디까지 개선할 것인가’이다. 100명의 기자에게 묻는다면 100가지 답변이 돌아온다. 그 답변들에서 합의의 선을 찾는 노력과 논쟁이 필요한 때다.
출처: 단비뉴스 / 작성 : 이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