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근대성과 합리성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인 언론의 자유에 힘입어 고양돼왔다. 그러나 한국 언론계는 인력 충원∙교육과정부터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측면이 상존해 민주주의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언론사 수습기자 교육은 인권 침해적 과정으로 악명 높다. <단비뉴스>는 수습기자 교육의 실태와 폐해를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수습 기간에 동기들이랑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자살하고 싶다’였다.”
작년 12월 한 종합일간지에 입사한 A 기자가 수습 기간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초반 한 달은 한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요령이 붙고 나서 큰 사건이 없는 날에는 네 시간쯤 잤다. 온종일 경찰서와 법원, 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선배에게 보고할 기삿거리를 찾았다. 보고 간격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다른 언론에서 쓴 기사를 놓치거나 선배 마음에 들게끔 취재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자정이나 한 시에 마지막 보고를 마치고 나면 경찰서 안에 있는 기자실에서 잠든다. A 기자는 이 생활을 5개월 반복하고 나서야 수습기자 딱지를 뗄 수 있었다.
기자 사회에서는 지역 안에서 몇 개의 권역을 나누어 ‘라인’이라고 표현한다. 마포구 일대는 마포 라인, 종로 일대는 종로 라인이라고 부른다. 이 라인 안에 있는 경찰서, 법원, 검찰, 장례식장 등을 돌아다니며 기삿거리를 찾는 행동은 ‘사스마와리’, 잠복근무하는 경찰처럼 장기간 대기하며 취재하는 행위는 ‘하리꼬미’라는 은어로 부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방송연합회 등이 수습기자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긴 하지만 1~2주에 그친다. 사실상 두 방식은 한국 언론이 신입 기자를 교육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간이 아닌 수습기자
수습기자는 주 6일 경찰서로 출근한다. 때에 따라 일주일 내내 출근하기도 한다. 퇴근은 없다. 경찰서에서 자기 때문이다.
하루 근무시간은 16~20시간. 새벽 2~3시에 잠들어 4~5시에 일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일어나면 경찰서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아침 6~7시에 선배에게 보고한다. 3년 전에 입사한 지상파 방송기자는 “누워서 자면 못 일어나니까 앉아서 잠을 청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언론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습기자 신분은 한 달에서 반년 가까이 유지된다. ‘수습기자는 인간이 아니다’는 말이 통용되는 이유다. 하루에 두세 시간 자는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건강에 이상이 오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해 한 통신사 기자는 기자지망생 대상 워크숍에서 “마와리를 돌다가 과호흡 증세로 쓰러졌다”고 고백했다.
사스마와리의 시작은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간다. 언론사는 신입 기자가 짧은 시간에 취재 방법과 기사 쓰기를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보기에, 이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올 5월에 수습기자 교육을 마친 B 기자는 “신기한 게, 한 30년 위 선배들과도 마와리 돈 이야기는 통한다. 그때도 이렇게 했으니까. 세상이 변하고 기사 쓰는 방식도 변했는데 수습기자 생활은 안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할수록 돈 더 들어
이런 장시간에 걸친 고강도 노동에도 수습기자는 일한 만큼 돈을 받지 못한다. 수습기자가 받는 월급은 정규직 기자 임금의 70~90% 수준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수습 기간에는 최저임금의 90%만 지급해도 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또 하루 20시간 가까이 일하지만, 수습기자는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사는 수습기자의 취재를 위한 비용 지출을 꺼린다. 수습기자는 보고를 위해 단시간에 여러 곳을 돌아야 하고, 사건이 터지면 현장으로 바로 달려가야 하니 주로 택시를 이용한다. 하지만 극소수 언론사를 빼면 교통비를 전액 주는 언론사는 없다. 고육지책으로 수습기자들은 타사 기자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움직이는 ‘카풀’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회사에서 주는 돈이 모자라면 자기 지갑에서 대신해야 한다.
재작년에 입사한 종합일간지 C 기자는 “강남 라인은 한 달에 택시비만으로 150~200만 원 정도가 나온다. 워낙 넓어서 한 경찰서에서 다른 경찰서로 이동하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사 지원이 적으면 월급을 초과해 마이너스가 된다. 일하면 일할수록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지역 언론은 부담이 더하다. 입사하면 차를 사라고 권한다. 지역이 넓다 보니 “차가 없으면 취재가 불가능하다”며 은근히 압박하는 것이다. 지역일간지에 다니고 있는 D 기자는 “명목상 기름값을 주지만 통신비랑 합쳐서 취재비로 나오니까 모자라는 편”이라고 말했다.
욕은 정상, 존댓말은 비정상?
수습기자 교육은 훈련에 가깝다. 수습기자는 매일 취재 내용을 자신의 1진 기자에게 보고한다. 선배는 수습기자가 뭘 놓쳤는지 지적하거나 정확한 사실을 알아오라며 보완 취재를 지시한다. 살인 사건을 취재할 때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흉기로 몇 번 찔렀는지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어본다. 수습기자는 추가 취재를 한 뒤 선배에게 다시 보고한다. 이런 과정이 하루에 10번가량 일어난다. 선배의 지적과 지시가 많을수록 일은 고되지만, 그만큼 구체적인 사실을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군기 잡기’가 횡행한다는 점이다. 수습기자는 교육을 받는 동안 군대에서 쓰는 것과 같은 말투를 쓴다. 선배에게 하는 말은 ‘다’,‘나’,‘까’로 어미를 끝낸다. ‘했어요’ 와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 선배는 후배를 하대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오히려 수습기자를 존중하면 눈총을 받는다.
진보언론에서 일하는 한 기자는 “수습기자를 교육할 때 존댓말을 썼더니, ‘강하게 키워야 하는데 너무 떠받든다’며 주변에서 스트레스를 줬다”고 말했다. 수습기자에게 차라리 욕을 할지언정 존댓말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개인 차이가 있지만 수습기자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과 욕설을 뱉는 선배기자도 있다. 대개 지시를 내리는 1진기자는 1~2년 먼저 입사한 사람이다.
10년 꿈 접게 한 수습교육
보고 체계도 지나치게 강압적이다.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하면 1진 기자에게 질책을 듣는다. 아침 7시에 첫 보고를 하면, 수습기자는 그 이전부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정각이 되길 기다린다. 만일 1분이라도 늦으면 ‘똑바로 하라’는 말이 돌아오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선배가 거는 전화도 즉각 받아야 하고, 무리한 일을 시키더라도 해내야 한다. 통신사에서 일하는 E 기자는 “경찰들은 기본적으로 기사를 잘 주지 않는다. 기사를 잘못 쓰면 인사고과에 문제가 생기니까. 못 들어오게 막는데 선배가 무조건 들어가라고 해서 갔다가 형사반장이랑 몸싸움까지 했다”며 경험담을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중도 포기하는 수습기자들이 많아 ‘수습 끝날 때까지 기수마다 한 명씩은 그만둔다’는 말도 있다. 지난 6월 종합일간지에 입사한 F 기자의 동기도 입사 두 달 만에 그만뒀다.
“동기 중 한 명이 고등학생 때부터 기자를 꿈꿔서 10년 넘게 준비했다던데 그만뒀다. 선배가 아이템과 무관하게 군기 들인다면서 경찰들과 부딪치게 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니까. 1진들은 기사가 안 될 걸 뻔히 알면서 후배들한테 욕하면서 육하원칙을 알아오라고 묻는 거다. 그럼 세세하게 물어봐야 한다. 경찰들은 엄청나게 바쁜데 ‘기자 저 XX 왜 저러는 거야’라고 하면서 무시하거나 화를 낸다. 그런데 샌드위치는 오로지 수습기자 몫이고. 이제 기자는 안 맞아서 안 할 거라고, 언론 쪽은 더는 관심 없다고 하더라.”
“대학은 나왔느냐, 네가 인간이냐” 욕먹고, 잠 못 자고…
설문조사로 살펴본 수습기자 실태
<단비뉴스>는 수습기자 교육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신문·통신·방송사 기자 512명에게 설문조사를 요청했으며, 105명이 설문에 응답했다. 이 중 입사 5년 미만에 경찰서에서 먹고 자며 수습기자 경험을 한 응답자는 55명이었다. 최근 경향을 반영하기 위해 5년 차 이상 기자들에게는 수습교육 실태를 묻지 않고 의견만 물었다.
조사 결과, 수습기자들은 선배들의 폭언에 노출되고, 보통 주 6일 출근해 하루 16시간 이상씩 근무하면서도 별도 수당은 거의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폭언이나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69.1%), ‘없다’고 답한 사람의(30.9%) 두 배 이상이었다. 실제 수습 기간 가장 부당하게 느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배의 폭언을 꼽은 사람들이 많았다.
설문에 응답한 방송기자 A씨는 “‘대학은 나왔냐’, ‘네가 인간이냐’는 기본이고 각종 동물에 비유한 욕설까지. 말하자면 입만 아프다”고 했고, B씨는 “기존 기사에 나오는 갑질·폭언 사례보다 심할 정도”라며 경험한 일을 적었다. 방송기자 C씨도 “무작정 소리 지르고 욕해서 기를 누르려고 했던 것”이 가장 부당하게 느껴졌다고 서술했다.
‘일주일에 며칠 출근했느냐’는 질문에는 6일 출근했다는 사람이 72.7%, 7일 출근했다는 사람이 21.8%였다. 하루 근무시간을 묻는 질문에서는 ‘16~20시간 근무’(49.1%)와 ‘20시간 이상 근무’(38.2%)가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근무시간이 길다 보니 응답자의 74.5%는 수습 기간에 평균 4시간 미만으로 잤다. 이렇게 일하고도 수습 기간 동안 수당을 받았다는 기자는 21.8%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사스마와리’와 ‘하리꼬미’로 대표되는 수습기자 교육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기자들은 대체로 지금의 수습기자 교육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현행 수습기자 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평가하는지를 묻자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람(39%)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28.6%)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필요하다’는 응답이(40%) ‘불필요하다’고 응답(35.2%)보다 많았다.
효율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필요하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취재의 기본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과 ‘지금 상황에서 대안이 없다’는 이유였다. 신문기자 D씨는 “육체적·정신적으로 크게 힘든 점도 있지만, 기자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방송기자 E씨는 “사스마와리가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했다.
“현재 국내 언론사 중 수습기자에 대한 교육시스템을 가진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사스마와리가 없어지면 아예 교육이 사라지는 셈이다. 대안 없이 사라지면 교육 없이 보조적인 잡일만 시키며 알아서 배우라는 식이 될 게 뻔하다.”
출처: 단비뉴스 / 글 : 서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