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다이버즈>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헬다이버즈>는 코옵 멀티 친화적인 환경이기는 하지만, 코옵 이외에도 게임에는 비동기화 멀티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있다는 점이다. 게임이 지금까지 진행되면서 몇 명의 헬다이버들이 전사하였고, 몇 마리의 외계인들이 죽었으며, 사고로 몇 명이 죽었는지 등의 게임 전체 통계들이 게임 왼쪽 하단 방송에 기록되어 나타난다.
또한 몇 명의 플래이어들이 현재 섹터에서 활동하고, 행성에서 미션을 진행하는지, 또 같은 행성에서 어떤 플래이어들이 활동하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게임 서사에 포함시키고 게임 진행에 반영함으로써 이 게임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진행한다는 감각을 강화한다. 이런 점에서 헬다이버스는 MMO의 성격을 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광장이 아니라 수치와 통계로, 혹은 지나가는 풍경으로 다른 게이머들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비동기화 멀티 요소들은 사실 <헬다이버즈>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동접자를 멀티 메뉴에 공개하여서 얼마나 많은 게이머들이 멀티를 즐기는가를 과시하였던 <콜 오브 듀티>(이하 콜옵) 시리즈나, 몇 명의 사람들이 죽었는지를 보여주었던 <다크 소울> 시리즈나, 게임 외적이긴 해도 인포그래픽 등으로 게임 플레이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가르쳐준 다양한 게임 마케팅 사례까지.
이런 거대한 숫자의 스펙터클과 향연은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게임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한 앞으로 어떤 전망을 보여줄지에 대한 짧은 고찰이다. 그리고 짧게나마, 위와 같은 사례로부터 빅데이터와 게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빅데이터: 인간의 행위를 기록하다
빅데이터의 개념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같다: 이전까지는 기록되지 않았었고, 설령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그 양이 어마무지하게 방대하며 동시에 분석할 모델 등의 부재로 다루기 힘들었던 데이터들이 데이터 축적 및 분석 기술의 발달로 재조명받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미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하는 것을 빅데이터의 흐름과 조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빅데이터가 등장하면서 가장 각광받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SNS이다. 인간들이 자신의 행위를 네트워크상에 기록으로 남긴 것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분석함으로써 기업의 마케팅이나 학문 연구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디지털화되어 기록된다는 측면에서 게임과 SNS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가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공간에서 일어나며 필연적으로 행동이 데이터화 된다는 점에서 게임 역시도 빅데이터 기술이 적용될 가능성을 처음 내포하고 있었다. 다만, 이것이 발달된 네트워크의 등장 이전에는 개인이 내밀하게 보유하는 자료에 불과했었다.
과거의 게임들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통계 자료들을 예로 들 수 있다. <GTA 3>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몇 시간을 플레이하고 몇 명을 죽이고 얼마의 돈을 벌었는지를 드러내는 지표는 이미 흔하다면 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렇게 축적된 통계와 지표는 제작사나 유통사 등으로 집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개인의 자료를 넘어서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게임 외적 분야에서 빅데이터의 사용
게임상에서 모인 데이터들이 유의미한 모습을 보여주는 분야는 마케팅 분야이다. 이전의 칼럼에서도 인간이 숫자에 매료되는 것을 다룬 적이 있지만(참조: 게임과 숫자), 수많은 게이머들이 그 게임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른 게이머들의 구매 의사를 촉진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볼브>의 경우, 2K 마케팅팀은 게임 내에서 일어난 다양한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인포그래픽을 제작, 이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마케팅은 게임업계에 있어서 점점 흔한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수치의 스펙터클이라는 부분은 다른 빅데이터 기반 마케팅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며, 동시에 게임에 있어서는 ‘외적인’ 부분이다. 게임이 축적하고 있는 빅데이터들은 대부분 게이머에게 보여지는 풍경 또는 스펙트클로써 작용할 뿐이다. 그것이 직접적으로 게이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현재의 빅데이터 기반의 마케팅이나 기술, 산업에서의 활용은 일반적으로 1차적인 개념에 가깝다: 데이터가 발생하고 이를 추적하여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월마트가 위성을 띄워서 미국 전역의 월마트 물류를 추적하고 관리하거나, 유럽의 운송회사가 GPS 트래킹을 이용해서 물류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듯이 현재의 빅데이터는 빅데이터를 쌓고 그것을 관리하는 쪽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는 이를 분석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모델이 보급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즉, 빅데이터는 이제 막 시작된 기술이며, 동시에 게임에 있어서 빅데이터 역시도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시대 게임의 향방
현재 게임에서 발생하고 축적되며 통계의 형태가 되는 게임에서의 빅데이터는 이제 게임 외적인 풍경이나 서사를 넘어서 게임 내부로 들어와서 게이머의 행동을 통제하고 새로운 게임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 예측해볼 수 있다. 이미 아마존은 개인이 어떤 상품을 클릭하는지를 보고 그에 맞춰서 큐레이팅 서비스(고객이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페이지에 보기 좋게 배치하는 것)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정보들을 기반으로 ‘당일 배송’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즉, 빅데이터는 단순하게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게임이라는 매체 역시도 이러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행동을 통제한다’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분야가 될 수 있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상상이지만, 이런 가능성도 존재한다: <레프트 4 데드>에는 AI 디렉터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디렉터는 게임이 진행되는 진척상황을 보고, 언제 어떻게 좀비를 투입하여서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을지, 아이템은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등을 결정한다. 전적으로 게임을 예측 불가능하게 구성하려는 <레프트 4 데드>의 시도는 아쉽게도 몇 시간의 반복 플레이를 통해서 그 패턴을 금방 학습할 수 있다.
AI 디렉터에게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주어진 규칙이 있고, 이 규칙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다. (게임을 해본 게이머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게이머의 행동패턴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고, 더 나아가서 AI 디렉터의 규칙을 실시간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 굳이 <레프트 4 데드>가 아니더라도, 싱글플레이에 있어서 아이템과 몬스터의 배치, 패턴 등이 스크립트에 의해서 고정적인 것이 아닌 빅데이터 기술에 의해서 피드백을 받아서 유동적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도래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은 어디까지나 즐거운 망상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빅데이터 기술과 게임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이며, 이는 근시일이 아니더라도 게임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원문: Colors Of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