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이론을 보는 듯한 두 명의 여왕: 김연아 vs 박근혜
2013년, 대한민국은 두 여왕의 즉위식을 보았다. 2월에는 옛 공주가 청와대의 여왕으로 돌아왔다. 유신의 위대한 딸 박근혜는 당당히 청와대로 다시 돌아와 아버지가 잃어버렸던 옥좌에 다시 앉았다. 3월에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꽃피운 올림픽의 여왕이 다시 돌아왔다. 압도적인 격차로 대제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던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2년여만의 복귀전에서 또 한번 그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며 다시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근혜와 김연아, 김연아와 박근혜. 노출을 워낙 꺼려 한편에서는 ‘신중’, 한편에서는 ‘불통’의 이미지를 함께 지닌 예순이 넘은 노회한 정치인과, 아이스쇼에서 수많은 관중의 함성과 박수갈채에 화답하는 20대의 젊은 스포츠 스타 사이에 일견 공통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행보를 조금만 주의깊게 본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련과 역경… 부상 투혼: 디스크 팽윤 vs 대전은요?
승리의 순간마다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 차이 덕분에, 김연아를 ‘피겨 여왕’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니어 무대에 오른 이후, 김연아를 따라다닌 것은 사실 승리의 영광뿐만은 아니었다. 주니어 부문에서 활동할 때부터 고질적인 허리 통증과 디스크 팽윤이 그녀를 괴롭혔다. 디스크 팽윤이란 척추와 척추 사이를 이어주는 추간판(intervertebral disc, 흔히 허리 디스크라 부르는 것이 이것이다)의 섬유륜이 정상 위치에 비해 다소 밀려난 증상으로, 흔히 허리 디스크라 부르는 추간판 탈출증으로 발달할 수 있는 상태다.
그러나 통증이 괴롭히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주니어 부문의 세계선수권과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하며 당당히 피겨스케이팅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 자리잡았다. 2005년, 시니어 부문 데뷔를 1년 앞둔 해의 일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동갑내기 일본 선수 아사다 마오에 밀려 2인자 이미지가 강했지만, 주니어 마지막 해 바로 그 아사다 마오를 큰 차이로 누르면서 미래의 피겨스케이팅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부상 투혼을 얘기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빼놓을 수는 없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중 괴한에게 습격당했던 박근혜 대통령. 그의 뺨에는 여전히 그때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여성으로서 치명적인 얼굴의 상처를 입고서도 굳건하고도 의연했다. 그가 마취에서 깨어나 뱉은 첫 마디로 알려진 “대전은요?”는 그야말로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의 선거불패 신화 속에서도 이 이야기는 화룡점정이다. 뭐, 사실은 “대전은요?”가 아니라 집도의에게 건넨 “당신이 내 속살을 본 첫 남자네요”가 마취에서 깨어난 박 대통령의 첫 대사였다는 비화가 있긴 하더라마는.
최고의 실력… 그러나 쓰라린 패배: 김연아의 동메달 vs 박근혜의 이명박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김연아는 이미 데뷔 첫 해부터 메달을 놓치지 않는 강력함을 자랑했지만, 그렇다고 늘 승리의 감격만을 경험했던 것은 아니다. 시니어 데뷔 후 첫 세계선수권. 고질적인 허리 통증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고, 세계선수권은 그야말로 ‘적진’인 일본에서 열렸다.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를 완벽하게 해내며 세계기록을 세웠지만, 프리스케이팅 ‘종달새의 비상’에서는 점프에서 두 번이나 넘어지고 하나의 점프는 무효 처리 되는 등 평소답지 않은 실수를 범하며 3위에 그쳤다.
두 번째 세계선수권에서도 불행이 따랐다. 허리 통증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고,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투혼에도 불구하고 쇼트 프로그램 ‘박쥐 서곡’에서는 러츠에서 넘어지는 실수를 범했을 뿐 아니라, 석연찮은 판정 시비까지 겹쳤다. 김연아는 이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프리스케이팅 ‘미스 사이공’을 비교적 무난하게 연기해냈으나 이번에도 점수는 예상에 비해 높지 않았고, 결국 이 대회에서도 동메달에 그쳤다.
동갑내기 라이벌로 불리던 아사다 마오가 두 대회에서 은메달과 금메달을 가져가는 동안 김연아가 가져간 두 개의 동메달은 분명 값지지만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아쉬운 것이었다.
한편 박근혜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이미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가장 존재감있는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졌지만, 김연아에게 아사다 마오가 큰 장애물이었던 것처럼 박근혜에게도 큰 장애물이 있었다. 이명박이라는 큰 산이 그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는 선거인단으로부터는 더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여론조사에서 패배하며 대선 후보 자리를 이명박에게 넘겨준다. 김연아가 판정 시비의 희생자였듯 박근혜도 경선 규정의 희생자였던 셈이다. 또한 서강대 공대 재학 시절 대부분의 과목에서 최고학점을 받으며 최고의 지성을 증명받았던 그였지만, 경선 토론회에서 두 번이나 ‘이산화 가스’ 발언을 반복하는 등 실수(?)를 범하고 만다.
위대한 승리… 사상 최고의 기록: 피겨 신기록 vs 대선 신기록
김연아의 시니어 데뷔 세 번째 해,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 ‘죽음의 무도’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세련된 표현, 강력한 기술로 무장한 이 프로그램은 실로 적수가 없었다. 그 해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는 사상 최초의 200점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당당히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다.
이 압도적인 승리는 순식간에 그간의 라이벌리 구도를 해체해버렸다. 김연아는 그 전까지만 해도 아사다 마오 등과 함께 ‘우승권 선수’로 분류되었지만, 이 승리로 인해 피겨스케이팅의 구도가 챔피언 김연아와 그에 도전하는 다른 선수들의 구도로 재편된 것이다. 이 구도는 올림픽까지도 이어져,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는 228.56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과 함께 경쟁자들을 아득히 앞서며 챔피언이 되었다.
박근혜 역시 경선 패배 이후 절치부심하여, 2012년 대선 구도에서 압도적인 선두주자로 앞서나간다. 특히 여당의 실책과 정권심판론 가운데 펼쳐진 2012년 총선에서 오히려 과반의 의석을 얻으면서 야권연대에 승리하면서, 박근혜의 리더십에 대한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다. 결국 박근혜는 군부 독재 종식 이후로는 최초로 5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승리하였다.
승리의 영광, 그 배경…: 어머니 박(미)희 vs 아버지 박(정)희
김연아의 승리의 영광 뒤에 그 어머니 박미희 씨가 있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피겨스케이팅은 ‘귀족 스포츠’라 불릴 정도로 돈이 많이 들지만 국가적으로 밀어주는 스포츠도 아니고, 특히나 한국은 피겨스케이팅을 위한 빙상장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제반 사정이 낙후되어 있다.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한 이후에도 김연아는 훈련에 어려움을 겪었고, 훈련장의 환경 문제와 그로 인한 부상 악화, 스케이트화 문제 등 수도 없는 문제를 극복해야 했다. 김연아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그 재능이 꽃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여파였을까. 한 사람의 스포츠인을 꽃피우기 위해 뒤에서 묵묵히 토양을 만들어 온 또 한 사람의 매니저, 딸의 앞날을 위해 극성스러울 정도로 많은 것을 챙긴 엄마, 활자화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그리고 서로 상반되는 소문들이 그 어머니를 수식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김연아와 코치 브라이언 오서의 결별 사태 때는 이 결별이 어머니의 입김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이에 대해 김연아가 직접 반박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박근혜의 승리의 영광 뒤에도 박정희와 육영수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귀족’을 넘어 ‘왕족’, ‘공주’ ‘여왕’으로까지 불리는 모습도 피겨스케이팅이 ‘귀족 스포츠’라 불리는 것과 무척이나 닮았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의 죽음 이후 박근혜가 갑차기 청와대에서 쫓겨났다고 인식하는 부분이나, 경황이 없는 중에 6억원을 받았다든가 하는 부분은 ‘왕족’ ‘공주’ ‘여왕’ 등의 칭호와 더할나위없이 어울린다. 박근혜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이름이 없었다면 그 재능이 꽃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여파였을까.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은 장기 군사 독재자, 산업화의 선봉장, 활자화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그리고 서로 상반되는 평가들이 그 부모를 수식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물론 xxxxxxxxxxxxxxxxxxxxxxx 라든가 oooooooooooooooooo 라든가 하는 소문도 있다(데이터 말소, 코렁탕 방지). 그러고보니 이름도 비슷하고…
다시 한 번 왕좌로: 이제 시작인 평행이론
김연아는 다시 한 번 왕좌로 발걸음을 옮긴다. 올림픽을 한 해 앞둔 2013년 캐나다 런던 세계선수권에서의 압도적인 승리를 통해 그녀는 그녀야말로 여왕이란 이름에 어울림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은메달을 딴 카롤리나 코스트너, 동메달의 아사다 마오 등 경쟁자들이 있지만, 이미 해외의 피겨스케이팅 관련 포럼 이용자들도 실력을 비롯한 그 어떤 면에서나 그들이 김연아의 진정한 경쟁자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퍼스트레이디로서 활동하던 청와대를 떠났던 박근혜도 다시 왕좌로 돌아왔다. 2012년 대선에서의 압도적인 승리를 통해 그녀는 그녀야말로 여왕이란 이름에 어울림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대체 김연아와 박근혜가 어디가 닮은 것이냐고. 아니 뭐 박근혜와 메르켈, 박근혜와 대처, 막판에는 박근혜와 아웅산 수찌까지 닮았다고 하는 판인데 뭐. 이왕 인심 쓴 거 좀 더 쓰면 뭐가 어때서 그러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