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의 어느 쌀쌀한 겨울날 아침. 날씨를 체크했더니 기온은 영상 3도, 그런데 바람이 시속 13km 정도로 불기 때문에 체감온도는 0도라고 나옵니다. 풍속 냉각(wind chill)을 고려해 나오는 체감온도가 사실이라면 물이 얼어야 하는데, 아니 얼 조짐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물웅덩이에는 살얼음조차 끼어있지 않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누가 봐도 진눈깨비도 아닌 그냥 비였습니다. 웨더 언더그라운드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0도가 아니라 2도 정도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체감온도는 이렇듯 실제 날씨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체감온도를 도출하는 공식부터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가장 간단한 답이 될 겁니다.
“그 공식은 옷을 입지 않은 맨살이 추위에 노출됐을 때 동상에 걸릴 위험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겁니다.”
인체의 열역학을 연구하는 폴란드의 크리지즈토프 블라제즈칙(Krzysztof Blazejczyk)의 말입니다. 다시 말해 기온이 영상 3도라도 바람 때문에 더 추워지는 점을 고려한 체감온도가 0도라는 건 기온이 0도이고 바람이 전혀 불지 않을 때와 밖으로 드러난 맨살에 동상이 걸릴 위험이 똑같다는 뜻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얼마나 춥다고 느끼는지는 고려 사항이 아닙니다. 이 공식은 또한 우리가 얼굴을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바람을 맞으며 계속 걸어가는 상황을 가정한 것입니다. 바람막이가 있는 건물 뒤편 같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은 공식의 가정을 벗어나는 셈입니다. 체감온도라는 것이 대개 실제 우리가 느끼는 추위를 과장해서 나타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당히 특별한 상황을 가정했기 때문이죠.
체감온도가 부정확하다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 점을 문제 삼았죠. 2007년 다니엘 엥그베르(Daniel Engber)는 <슬레이트>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바람을 고려한 체감온도라는 건 일관성이 부족하다. 이를 부분적으로 바로잡는 작업에 매달리느니 차라리 현재의 체감온도 공식 자체를 모두 폐기하는 게 더 낫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은 이토록 부정확한 체감온도를 왜 기상예보관들은 아직 쓰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문제가 많은 지표라는 걸 몰라서 그러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죠. 최근 들어 과학자들이 기존의 체감온도 공식보다 실제 우리가 얼마나 추위를 느끼는지 훨씬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공식을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기온과 바람뿐 아니라 일사량과 습도 등을 모두 고려한 공식으로 좀 더 복잡하지만, 훨씬 더 정확하죠. 그런데 왜 이런 새 공식은 아직 체감온도를 대체하지 못한 걸까요?
체감온도 공식의 시작: 남극
그전에 지금의 체감온도 공식의 연원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 개념과 간단한 공식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남극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던 미국인 과학자 폴 사이플(Paul Siple)과 찰스 파셀(Charles Passel)이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열 손실이 더 빨리 일어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몸이 열심히 데워 놓은 주위의 따뜻한 공기를 바람이 날려 보내기 때문이죠.
사이플과 파셀은 바람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고자 기지 밖에 물이 든 병을 매달아 놓고 시시각각 변하는 기온과 풍속에 따라 병 속의 물이 얼마나 빨리 어는지를 측정했습니다. 이들은 바람의 영향력을 “풍속 냉각 지수(wind chill factor)”라는 이름으로 수치화했고, ‘시간당 제곱미터 면적의 공간에서 (인체에) 발생하는 열 손실이 몇 킬로칼로리’라는 식으로 이를 계측해 표를 만들었습니다. 복잡한 표시 탓에 이 개념은 주로 과학자들 사이에서만 통용됐습니다.
1960년대 들어 추운 지방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군대를 훈련하고자 했던 미군의 연구원들이 풍속 냉각 개념을 대중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복잡한 단위 대신 훨씬 직관적으로 바람이 이 정도 불면 몇 도 더 추운 곳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표현하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한 겁니다. 알래스카 공군 연구소의 찰스 이건(Charles Eagan)은 1964년이렇게 썼습니다.
“복잡한 단위가 낯설어 사람들이 이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유용하게 활용할 여지가 있는 척도가 외면받고 있다. 풍속 냉각 지수를 그에 따른 기온으로 변환해 표현한다면 많은 사람이 이를 이용할 것.”
이 아이디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내 TV와 라디오에서 날씨를 전하는 기상예보관들은 누구나 체감온도(feels like)를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풍속 냉각 지수는 얼마나 춥다고 느끼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죠. 인디애나대학의 모리스 블루스타인(Maurice Bluestein)도 이 점을 지적합니다. “(사이플과 파셀이) 남극에서 한 실험은 정확성과 객관성으로 따지면 실험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다분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수행된 것이죠. 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실제 느끼는 추위의 정도를 표현하려다 보니 현실과 전혀 다른 엉뚱한 예보가 나오는 겁니다.”
더 정확한 공식은 없을까
블루스타인은 2001년 캐나다의 과학자 랜달 오체브스키(Randall Osczevski)와 팀을 이뤄 미국 기상국의 지원을 받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단점을 보완해 제대로 된 체감온도를 도출해낼 수 있는 개정된 공식을 고안한 겁니다. 물병 속에 든 물이 어는 것을 관찰하는 대신 실제 인체에서 열 손실이 일어나는 과정을 실험을 통해 확인한 뒤 공식을 짠 결과 그전보다 훨씬 현실적인 값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블루스타인이 새로 짠 공식도 기본적으로 기온과 풍속 값을 입력하면 동상에 걸릴 위험을 수치화한 값이 나오는 식입니다. 실제 사람의 열 손실 과정을 관찰한 뒤 공식을 만들었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각기 다른 체형에 따라 열 손실이 일어나는 속도와 정도가 천차만별인데 모두의 체형이 똑같다고 가정했다는 점입니다. 캐나다에서 12명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추운 터널 안에서 러닝 머신 위를 걷게 했을 때 일어나는 열 손실을 측정했는데, 이 12명 안에서도 체형에 따라 열 손실 정도가 크게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체지방이 많은 사람이 동상에 걸릴 위험이 큽니다. 몸 안의 열이 잘 보존되기 때문에 오히려 신체의 가장 바깥쪽인 피부로는 열이 잘 전달되지 않거든요.”
하지만 기상국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상세한 설명보다도 사람들에게 동상의 위험을 상기시켜줄 수 있는 간단한 지표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블루스타인과 동료들은 열 손실이 일어나는 정도가 상위 5%인 최악의 실험 대상자를 기준으로 삼아 지표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쓰고 있는 체감온도 공식이 여전히 수많은 요인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배경에는 이런 의도가 있었던 겁니다. 일부러 누락하거나 단순화한 가정 몇 가지를 살펴볼까요? 우선 이 공식은 햇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전히 여러분은 바람을 맞으며 시속 5km 정도의 속도로 쉬지 않고 걸어갑니다.
“당신이 걷지 않고 가만히 서 있거나, 반대로 뛸 때도 이 공식은 들어맞지 않습니다.”
한 가지 더. 여기서 풍속은 보통 공항에 있는 관제소에서 측정한 값을 쓰는데, 도시 안에는 건물이나 나무 등 바람막이가 될 만한 것이 많기 때문에 이 풍속 또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블루스타인의 공식이 1950년대 공식보다 진일보한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더 정확성을 기하면서도 동상의 위험을 강조하기 위해 기상국에서 요구한 대로 여러 요소를 과감히 생략해 간단한 수치로 표현하는 데도 성공했죠. 그러나 여전히 밖에 나가면 일기예보의 체감온도보다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실제 체감온도에 영향을 미칠 만한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한 더 정확한 체감온도 공식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 기후 지표(Universal Thermal Climate Index, UTCI)는 기온과 풍속 외에도 주변 습도와 일사량, 그리고 이런 날씨에 사람들이 옷을 어느 정도 두텁게 입을지까지 예상해 체감온도를 산출해 냅니다. (재미있는 건 실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한 바를 토대로 이 지표는 사람들이 옷을 춥게 입는다고 가정한다는 점입니다) UTCI가 완벽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온도와 대단히 비슷한 값을 예측해 냈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를 실제 일기예보에 활용하는 나라는 적어도 지금 시점에는 전 세계에서 폴란드가 유일합니다.
미국 기상국은 기존의 체감온도 공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공식이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기 때문에 동상에 걸릴 위험성을 더 크게 계산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추운 날 옷을 더 따뜻하게 입어 동상에 덜 걸린다면 그것 자체가 사회적인 효용인 셈이죠. 기상국이 여전히 공식 발표에 기존의 체감온도 수치만을 쓰기 때문에 기상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일기예보에도 변화가 없는 겁니다. UTCI같이 새로운 값을 계산하고 적용하는 건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일 뿐 아니라 세분된 지역, 주변 환경에 따라 고려할 요소가 많으므로 꽤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상황을 알려야 하는 일기예보에 적합하지 않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체형과 체질이 다르고 서 있는 곳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다르며 사람들이 언제나 특정한 방향으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가정도 사실 터무니없는 가정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정확한 값을 도출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부 기상학자들이 이럴 거면 체감온도 개념을 아예 폐기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대신 누구나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만을 소개하자는 겁니다. 바로 기온이죠. 캐나다의 기상학자 브래드 브롤릭(Brad Vrolijk)은 말합니다.
“풍속 냉각을 기반으로 한 체감온도 개념에 우리가 익숙해지긴 했지만, 실제는 이 지표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