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폴로>, <하우스 오브 카드>의 두 배에 달하는 엄청난 편당 제작비를 들인 넷플릭스의 대작 TV시리즈이다. 2013년 넷플릭스는 이미 <하우스 오브 카드>로 미드계의 게임 체인저가 된 적 있다. 당시 시즌 전회를 한꺼번에 공개하며 스트리밍과 몰아보기를 새로운 트렌드로 만들었고, 배우 캐스팅 등 드라마 제작 과정 전반에 빅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넷플릭스의 <마르코 폴로>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뛰어넘는 대기획이었다.
현재 넷플릭스에 가입은 해 두었지만 볼 만한 컨텐츠를 탐색 중인 당신에게 <마르코 폴로>를 추천한다.
<마르코 폴로>는 어떤 드라마?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다. 드라마의 카피는 ‘세상이 충돌한다(Worlds will Collide)’인데, 2000년 <와호장룡>이 영화로 이루어 냈던 동양 문화와 서양의 접목을 미드가 시도하는 셈이다. 1980년에는 미국 드라마 <쇼군>이 16세기 일본에 불시착한 영국인 함장의 이야기를 그려내 인기를 끈 적 있다.
<마르코 폴로>에는 13세기 베니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의 긴 모험담이 화려한 무협액션과 휴먼 드라마 속에 담겨 있다. 그는 몽골 원나라에서 징기스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을 만나 관직을 얻었고, 그곳에서 17년간 살면서 중국 각지를 여행했다. 이후 페르시아로 시집가는 원나라 공주 호송단에 참가해 페르시아를 거쳐 1295년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마르코 폴로는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몇 차례 영화와 TV시리즈로 만들어졌다. 1962년 알랭 들롱이 마르코 폴로 역할을 한 이탈리아-프랑스 합작 영화를 비롯해 1982년엔 이탈리아 RAI TV에서 8부작 미니시리즈로 방영했고, 2007년엔 미국에서 3부작 TV시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껏 마르코 폴로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크게 흥행한 경우는 없었다. 13세기 동서양의 충돌이라는 실화는 서양 관객들에게 이국적인 한편으로 낯설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넷플릭스가 택한 전략은 <마르코 폴로>에 <왕좌의 게임>의 성공 공식을 대입하는 것이었다. <왕좌의 게임>은 시즌이 거듭될수록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HBO의 최대 히트작으로 지난 시즌4에서는 회당 평균 1860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해 그동안 최대였던 <소프라노스>를 제치고 역대 1위 미드로 등극했다.
프리뷰용으로 비평가들에게 제공된 이 드라마의 6회분을 미리 본 야후의 TV칼럼니스트 켄 터커는 <마르코 폴로>에 대해 “중국을 배경으로 한 <왕좌의 게임>”이라고 평했다. 그는 “해골이 땅콩처럼 부숴지고 목구멍이 진토닉에 넣은 라임처럼 찢어지는 잔혹드라마”라며 “쿠빌라이 칸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황제로 등장하고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의 장님 고수에게 훈련받아 무사로 재탄생한다”고 말했다. <왕좌의 게임>이 중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라면 <마르코 폴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어드벤처 무협드라마라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제작비는 총 9000만달러(1000억원)로 편당 제작비는 900만달러(100억원)에 달한다. 이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편당 제작비 400만달러, <왕좌의 게임>의 600만달러보다 많다. 참고로 현재까지 가장 편당 제작비가 많이 든 미드는 <더 퍼시픽>으로 무려 편당 2700만달러를 썼다.
드라마의 작가이자 총괄제작은 존 푸스코가 맡았다. 그는 영화 <크로스로드> <영건> <썬더하트> <히달고> <스피릿> 등의 각본을 쓴 작가로 2007년 이연걸, 성룡 주연의 <포비든 킹덤>의 각본을 쓰며 몽골 사막에 매료된 경험을 바탕으로 <마르코 폴로>를 구상했다.
제작을 맡은 와인스타인 컴퍼니는 <신 시티: 다크 히어로의 부활> <비긴 어게인> <장고: 분노의 추적자> 등을 만든 미국의 준메이저급 제작사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역시 와인스타인 컴퍼니를 타고 미국에 진출한 바 있다.
애초 <마르코 폴로>는 와인스타인 컴퍼니가 2012년 Starz라는 미국 케이블 방송국을 통해 방영하려던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당시 중국 촬영이 폭력과 성적 묘사 때문에 검열 문제로 난관에 부딪혔고 이 과정에서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Starz가 발을 뺐다. 마침 글로벌 스케일의 휴먼 드라마 콘텐츠를 찾고 있던 넷플릭스가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10부작으로 손을 봤다. 촬영은 중국 대신 이탈리아, 카자흐스탄, 말레이시아에서 이뤄졌는데 3월 베니스에서 시작해 8월 말레이시아에서 마쳤다.
주연 배우는 오디션으로 선발했다. 케빈 스페이시를 전면에 내세웠던 <하우스 오브 카드>와 달리 <마르코 폴로>에는 유명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마르코 폴로가 실화 속 인물인 만큼 유명 배우의 후광 효과로 인해 실화 속 인물이 묻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포석이다. 그러나 보통 할리우드가 스타를 쓰지 않을 때는 몸값이 비싼 스타 없이 기획만으로도 충분히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인데, <마르코 폴로>는 다행히 스타 없이도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은 드라마가 되었다.
제작진은 주인공 마르코 폴로 역할에 맞는 배우를 찾기 위해 런던, 호주, LA에서 오디션을 치렀지만 마땅한 연기자를 찾지 못했다. 그때 존 푸스코의 아내가 오디션 테이프를 돌려보던 중 우연히 무명의 이탈리아 배우 로렌조 리켈미를 찾아냈고, 그가 운좋게 9000만 달러 드라마의 메인 얼굴이 됐다. 올해 24세의 리켈미는 말레이시아로 날아가 운동, 무술, 말타기 등 혹독한 연기 훈련을 받았다.
또 <마르코 폴로>에는 다수의 동양 배우가 등장한다. 중국계 배우 친 한은 CNNGo 선정 아시아의 위대한 배우 25명에 포함된 배우로 할리우드에서도 이미 <다크 나이트> <컨테이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등에 출연한 바 있어 얼굴이 낯설지 않은 배우다. 최근엔 양자경과 함께 한국영화 <파이널 레시피>에도 출연했다. 이밖에 한국계 배우 릭윤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수현도 가세했다.
<마르코 폴로>는 400명이 넘는 대규모 스탭 중 무려 160명이 미술 스탭일 정도로 화려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신경 썼고, 문화 어드바이저와 역사학자를 따로 고용해 이야기가 세계 각국의 역사에 부합한지 또 문화적 충돌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예를 들면 황제 앞에서 활을 어떻게 드는지, 말을 탈 땐 방패를 어떻게 잡는지 하는 세세한 것들까지도 고증을 거쳤다.
존 푸스코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보편적인 이야기인 <마르코 폴로>는 세계 각국의 문화를 녹인 영웅담”이라며 “알려진 것보다 역사적 후광 뒤에 가려진 실제 이야기가 훨씬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 세계를 접수할까
넷플릭스가 <마르코 폴로>를 선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세계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 드라마 중 처음으로 국제 판권을 갖게 된 콘텐츠다. 이전까지 넷플릭스는 자제 제작 드라마의 해외 판권을 따로 팔았다. 미국 외 국가에선 넷플릭스가 아닌 다른 회사가 <하우스 오브 카드>나 <오렌지 이즈 뉴 블랙>을 방영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넷플릭스가 첫 자체 제작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만든 것은 실적 부진 만회를 위해서였다. 2011년 할리우드 스튜디오 등 콘텐츠 사업자들이 콘텐츠 공급 가격을 올리면서 넷플릭스는 실적이 적자로 돌아서는 위기를 맞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제작이라는 도박을 강행했다. 당시 나스닥 퇴출 위기에 몰렸던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고 타임워너에 맞먹는 미디어 기업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의 제작 배경 역시 마찬가지다. 넷플릭스가 <마르코 폴로>에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퍼부으며 전력을 다하고 있는 이유 역시 실적 부진 만회를 위해서다.
넷플릭스는 과거 가입자 증가율이 주춤하며 2014년 10월 16일 주가가 하루 동안 무려 22% 급락하는 충격을 겪었다. 주가는 그뒤로도 횡보를 계속하며 하향 곡선을 그렸다. 넷플릭스는 3분기 300만 명이 추가로 가입해 총 53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지만 이는 회사와 시장의 예상치를 하회하는 것이었다. 특히 미국 내에서의 가입자 증가율 둔화가 뚜렷했고 이에 불안함을 느낀 투자자들이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다. 또 콘텐츠 비용 역시 2분기 77억달러에서 3분기 89억달러로 늘었다. 넷플릭스로서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넷플릭스를 비롯해 훌루, 아마존프라임, 아이튠스 등 미국의 대형 스트리밍 VOD 서비스 업체들은 아시아 시장 진출에 소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할리우드 스튜디오 같은 콘텐츠 사업자들이 콘텐츠를 국가별로 따로 판매하기 때문이었고, 둘째, 아시아 실정에 맞는 과금 체계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경우만 해도 KT, SKT, LGU+ 등 통신 사업자들이 기존 고속인터넷망을 토대로 VOD 서비스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시장 진입이 쉽지 않았다. 또 불법 콘텐츠의 범람으로 인해 제대로 된 수익 확보가 힘들다는 점도 이들의 아시아 시장 진출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한 지금, <마르코 폴로>는 <하우스 오브 카드>에 이어 한국 시장을 접수하는 킬링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하우스 오브 카드>를 성공시켰던 넷플릭스의 빅 데이터 분석 시스템은 글로벌 시장을 노린 <마르코 폴로>에게도 유효할까? 넷플릭스의 전략대로 <마르코 폴로>가 글로벌 시장 공략 과정에서 첨병 역할을 하게 될까?
출처: 양유창의 창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