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의 핵심 인물이 나가고, ‘고졸 신화’의 성공한 여성 기업인이 입당했습니다. 80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더불어 민주당을 나가 새로운 정당을 모색하려고 하고 있고, 이미 기업에서 인정을 받았고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면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잘 나갈 수 있는 인물은 이 길 대신에 정치의 길을 택했습니다.
물론 정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희생’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받는 엄청난 혜택과 힘을 생각하면 그렇죠. 그렇지만 우리나라 1등 기업에서 이미 인정을 받은 40대 여성인 양향자 전 상무는 국회의원만큼이나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원이라는 자리가 ‘임시직’이기에 불안을 느낄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반도체 전문가이자 재계에서 널리 이름을 알린 그녀를 데리고 가고 싶어하는 기업이나 단체는 수두룩합니다. 그녀가 말한 정치입문의 명분인
“학벌, 여성 출신의 유리 천정을 깨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노력했다. 이젠 청년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만 계속해서 지켜진다면 그녀의 입당을 결코 나쁘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최근 ‘수저 계급론’이나 ‘헬조선’이니 라는 식의 웃을 수 없는 신조어가 범람하는 ‘신 계급시대’에 양향자 전 상무가 던진 메시지는 더 크게 와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양향자 전 상무를 상징하는 단어는 참 많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녀에게 가장 많이 달리는 수식어는 ‘고졸 신화’. 실제 그녀의 입당 소식이 전해지고 많은 언론들이 이 수식어를 사용하여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그녀는 ‘고졸’이 아니다 라는 식의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의 일생
– 1967년 전남 화순군 쌍봉리 두메산골에서 태어남(만 48세)
–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광주여상으로 진학
– 1986년 광주여상 졸업
– 1985년 삼성반도체 메모리설계실에서 연구보조원으로 근무
– 1993년 메모리사업부 SRAM 설계팀의 책임연구원
– 1995년 사내대학인 삼성전자기술대학에서 반도체공학 학사
– 2005년 한국디지털대 인문학 학사
– 2007년 DRAM 설계팀의 수석연구원
– 2008년 성균관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
– 2011년 플래시설계팀의 부장
– 2013년 상무로 승진
즉, 양향자 전 상무는 고졸으로 임원이라는 별을 단 것이 아니라 입사한 후에 대학원을 나와 석사학위까지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솔직히 여기에 굳이 반박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피상적인 부분만 본 주장이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양향자 전 상무의 최종학력은 석사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문화는 회사에 처음 들어올 때의 학력에다가 회사에서 어떤 능력을 보여줬는지를 더해서 승진 요인으로 넣습니다. 많은 분들이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똑같은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캠퍼스 출신인지, 주간인지 야간인지, 그리고 편입인지 아닌지도 하나하나 세세하게 파악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기업입니다. 어찌 보면 학력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죠.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 사람의 처음 입사했을 때의 조건과 학력을 중시하고,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고졸로 들어온 사람은 고졸로 취급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고졸로 회사에 들어와 그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사를 받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석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 한두 줄의 참고사항이 될 뿐 회사에서 그 사람의 학력 배경을 ‘석사 학력’으로 바꾸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양향자 전 상무가 삼성에 입사해서 성균관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고졸 신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일이 많은 삼성에서 일에다가 워킹맘의 역할에다 배움의 끈까지 놓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더 좋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석사 학위가 있기 때문에 그녀를 ‘고졸 신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우리는 양향자 전 상무가 더민주에 입당을 하면서 던진 이 한마디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탑 오브 헛소리에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나처럼 하면 너희도 성공할 수 있어’라는 식의 자기계발서가 여전히 범람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현실적이면서도 배려가 담긴 한마디. 시답잖은 위로보다 훨씬 낫습니다. 양향자 전 상무 입장에서는 인생의 큰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국회에 입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그녀의 행보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당을 할 때의 그 초심을 잃지 않고, 대한민국 정치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전달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원문: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