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포츠에서 심판은 경기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구성요소다. 심판의 잘못된 판정이 한 투수의 퍼펙트게임을 망쳐버릴 수도 있고, 가르시아에게 7게임 출장 정지를 내릴 수도 있고, 홍성흔에게 벌금 100만 원을 내게 할 수도 있다. 야구 경기가 있을 때마다 심판의 판정에 대한 팬들의 왈가왈부가 있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는 어떨까? 그들은 기계처럼 정확할까?
메이저리그 심판들의 평균 스트라이크 존… 읭?
야구 판정에서 가장 말이 많은 판정은 주심들의 ‘스트라이크 존’이다. 한국에서도 룰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스트라이크 콜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몇 번 있다. 한국은 아직 표본이 적지만, 메이저리그는 심판이 스트라이크로 판정한 공의 데이터만 해도도 50만이 넘는다. (좌타자 20만, 우타자 33만) 이를 그림으로 보자.
얼레? 상하 판정은 별 차이가 없는데, 좌우 판정은 굉장히 애매하다. 그림에 넣은 실제 야구공의 크기에 주목하자. 전체 콜 중에서 빈도가 높은 부분의 경계를 취한 것임에도, 좌우로 최소 공 1개에서 크게 3개 반 정도(!)까지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나마 우타자의 경우 인/아웃코너 관계없이 공 2개 정도의 여유를 보이고 있으나, 좌타자에 대한 판정은 그렇지 않다. 인코너에 대한 판정은 꽤 빡빡했던 반면, 아웃코너에 대한 판정은 굉장히 관대하다.
심판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는 스트라이크 존
위 자료는 리그 전체를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심판 개인의 콜 성향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다. 그렇다면 뭔가 애매한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왜 불만 제기가 적을까? 메이저리그에 홍성흔을 수출해야 할까? 이는 심판이 로봇이 아닌 이상, 심판 개개인의 스트라이크 존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아래는 메이저리그 최악의 심판 중 한 명인 밥 데이비슨과, 최고의 심판이라 불리는 짐 조이스의 스트라이크 콜 데이터다. 원래 빨갛게 돼야 하는데 그림완성을 다 못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밀도만 보도록 하자. 2012시즌 우타자 기준의 데이터로, Called Strike, 즉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직접 판정한 것만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 왼쪽이 우타자, 오른쪽이 좌타자의 위치.
밀도를 보면 밥 데이비슨이 우타자의 안쪽에 좀 더 후한 편이(라고 하기보다 대놓고 막 잡아준 느낌이 있다)었다면, 짐 조이스는 바깥쪽 승부에 좀 더 후했다. 두 심판 모두 스트라이크 존 위쪽의 부분에 대해 콜의 비율이 높은데, 이는 1. 전체 타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몸집이 큰 선수들의 자료가 저런 식으로 반영했거나, 2. 존 위쪽에 대해서 대체로 후한 콜을 줬을 것이다… 정도로 추론할 수 있다.
위의 자료는 시즌 전체를 나타낸 데이터이지만, 심판의 콜 성향은 시즌 전체만이 아니라 커리어 동안 거의 일정하게 나타난다. 심판의 성향을 잘 파악한다면, 그만큼 승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물론 기본적인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이건 심판이 개막장이 아닌 한, 구단과 선수들이 감안하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그러지 않으면 매일같이 판정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1년 단위로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 판정 자료를 나눠보면 개인적인 편차는 상당하다. 대부분의 심판이 존의 높이에 있어서는 규정을 준수하는 편이지만, 존의 너비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대부분의 주심이 좌타자의 바깥쪽에 대해서는 굉장히 후한 판정을 내린다. 그럼에도 심판들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존이 태평양인 주심은 그 태평양을 유지하는 것이 남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고, 존이 작은 주심은 또 그대로 그 크기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좋은 심판이 되는 길이다.
즉 핵심은 ‘일관성’이다.
류현진 첫 승,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얼마나 잘 공략했나?
메이저리그 선수 누구를 인터뷰해도 “류현진을 아는가?”라고 질문을 해야 하는 한국 언론이니 류현진 이야기를 좀 해보자. 심판마다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니, 당연히 선수들은 경기에 임하기 앞서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공부할 수밖에 없다. 아래는 류현진이 첫승을 올린 4월 7일 경기의 주심을 본 Dan Iassogna주심의 2012년 스트라이크 존이다. 우측의 0~1.0부분의 수치는 무시하기를 바란다.
좌타의 안쪽에 박한 판정을 내리는 반면에, 바깥쪽에는 그만큼 더 후한 판정을 내린다. 하지만 우타자에 대한 존 판정에 있어서는 좌우에 있어 나름대로 ‘균형적’인 면을 보여주는 편이다. 좌타자들이 바깥쪽 판정에 있어 불리한 점을 안고 산다는 게 그들의 생각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이 자료를 해당일(4/7) 류현진의 투구 분포도와 합쳐보자. 먼저 좌타자.
규정상 스트라이크 존의 너비는 약 1.4피트다. 하지만 주심의 존 판정상 좌타자에게 던진 공들은 거의 그의 ‘재량’으로 스트라이크를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위치였다. 좌타자에게 굉장히 효과적으로 써먹었던 슬라이더가 저 존의 득을 보기도 했다. 존 바깥으로 0.3피트 정도 나간 위치에 있는 공들이 스트라이크 콜을 받은 것도 있는데, 0.3피트면 공 한 개 반 정도 빠진 위치에 해당한다. 공 한 개 반정도 빠지면 TV로 보는 사람도 느낄 수준이니 류현진의 슬라이더가 심판의 성향을 잘 노렸다 할 수 있다. 다음은 우타자다.
우타자 안쪽에 대한 판정이 평균보다는 후한 심판을 만났는데, 좀 더 안쪽을 파고드는 승부를 했으면 어땠으려나 하는 생각이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로케이션 자체에 큰 문제는 없었고, 성적도 좋았으니 딱히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음 상대 선발이 애리조나 가서 제대로 용 된 이안 케네디인데… 그는 제구력 하면 ML에서 알아주는 수준급 투수다. 참 대진운도 지지리도 없어 보인다. 하긴 아무리 대진운이 없어도 한화보다는 편하게 던질 수 있겠지…
덤으로 스트라이크 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심판의 판단력 외에도 포수의 ‘미트질’을 꼽을 수 있다. 허나, 미트질의 고수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웬만한 실력으론 주심을 속이기는 어려우니 무시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