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까지의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는 안되고…”
한국의 산업 전망을 다루는 기사에서는 위와 같은 이야기를 자주 본다. 사실 산업뿐만 아니라 한국과학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즉 “지금까지 선진국의 성공을 빨리 쫒아가서 패스트 팔로워가 되는 전략으로는 앞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창조적인 뭔가를 새로 시작해서 어쩌고…”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그래서 새롭게 창조적으로 ‘뭘’ 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그건 님들이 알아서 하셔야죠.” 하지…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 자체가 너무 많이, 그리고 쉽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런 글을 쓰는 분들은 얼마나 창조적으로 생각해서 의견을 주시는 것일까. 즉, 누군가가 패스트 팔로워 드립 이야기를 꺼내니 다들 유행처럼 “패스트 팔로워는 안되고 창조적으로 뭔가를 만들어서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하고 어쩌고”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별로 창조적이지 않고 남을 팔로잉하는 것뿐 아닌가. 이미 남이 한 이야기를 패스트 팔로잉도 아니고 ‘레이트 팔로잉’으로 반복하고 계시는 분들이 ‘패스트 팔로워 노노’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자기모순 아닐까?
2. 일단은 패스트 팔로잉이라도 계속하기 위한 조건
패스트 팔로잉도 안 해보신 분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패스트 팔로잉을 통해서 업계 2~3위라도 계속 유지하는 것에는 노오오오력이 필요하다. 그냥 앞에 달려가고 있는 일등을 쌔빠지게 쫒아가는 것만으로는 2~3위를 유지하지 못한다니까. 앞에 달려가고 있는 일등은 100m 트랙처럼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방향을 바꾼다. 일등이 방향을 바꾸는 대로 순발력 있게 쫒아가지 못하면 2~3위를 유지 못할뿐더러,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후발주자들에게 금세 따라잡힌다.
레이싱 게임이라도 해보신 분이라면 바로 이해하겠지만, 일등은 코너에서 인코스로 파고들며 추월을 시도하는 2등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길을 가로막으면서 추월을 최대한 막으려고 하지. 2등을 유지하려면 역시 비슷하게 추월을 시도하는 3, 4, 5, 6등을 백미러로 살펴보면서 최대한 추월을 막을 필요가 있다.
게다가 1등이 방향을 바꾸면 이것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에서는 1등이 방향을 바꿀 것이라는 것을 예측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1등이 방향을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미리 1등이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바꿀 필요도 있다. 이미 1등이 방향을 바꾼 다음에 방향을 바꾸면 그것은 이미 늦다. 물론 그 예측이 틀어지면 2등의 위치도 손쉽게 뺏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2등의 위치를 유지하는데도 충분한 리스크를 걸어야 한다.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1등이 갈 방향을 미리 예측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어쩌다 운이 좋아서 1등의 위치를 차지하면 그때 가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2등, 아니 3등 위치도 불안한 레이서가 선두를 차지한답시고 남들이 안 가는 길,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은 모험도 아니고, 그저 멍청한 것이다.
3.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면 패스트 팔로잉이라도 제대로 해라. 거리부터 좁혀라
나의 전공 분야인 과학에 대한 예로 이야기해보자. 충분히 많은 연구비와 괜찮은 학생들이 있는 랩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가졌지만, 연구 결과의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해서 해당 분야를 리드하는 그룹에서 나오는 결과들에 비해서 훨씬 못 미치는 저널에나 나온다고 하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 격차를 좁힐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남들을 따라 하는 연구는 하지 말고 남들이 전혀 안 하는 연구를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충고는 아니다. 리딩 그룹이 하는 연구에 착안하여 이들의 확장 정도의 연구만 수행해본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분야를 이끄는 새로운 결과를 내기는 힘들다. 그런 경우에는 차라리 팔로잉을 먼저 확실히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운이 좋아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결과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아마 다른 쪽에서 그 결과를 계속 쫓아온 그룹에게 선두를 뺏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해서 원래 목표로 삼은 그룹과 격차가 줄어들거나 거리가 더이상 벌어지지 않는 순간부터 게임이 시작된다. 즉, 우리가 아는 것이나 저들이 아는 것이나 비슷해지는 순간부터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후발주자가 생각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선두주자가 이미 테스트해본 ‘새로운 아이디어인데 안 되는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후발주자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진정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되려면 일단 선두주자와의 격차가 거의 없어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선두 그룹이라면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2위의 자리도 놓치기 쉽다. 가끔은 우리의 선택이 선두 그룹의 선택과 다를 수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선택이 선두 그룹의 선택에 비해서 더욱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만약 그러면, 운 좋게 1위가 된다. 운이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세상만사의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1등이 되느냐는 대개 운이다. 선두권에 오느냐 못 오느냐는 노오오오력이 결정하겠지만.
4. 지금까지 자기가 제일 잘한 것이 뭔가를 생각해보자
꼴찌에서부터 출발하여 선두가 저기 보이는 2등, 3등까지 온 것만 해도 상당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까지 치고 온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만약 그게 그냥 노오오오력이라면, 그 노오오오오오오력이라도 계속해라. 그게 당신의 주무기이고 원동력이다. 괜히 자신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길을 가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