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죽어도 애플은 안 망했다. 오히려 주가, 매출이 더 올랐다. 망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 사람들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서 오늘내일하는 상황이 계속되더라도, 삼성 직원들이 “우리 회사는 이제 망하는 거냐. ㅠㅠ” 할 일은 없다. 물론 회사에 장기적인 영향이 없지야 않겠지만. 방가방가 마이너스의 손
기업체 오너의 유고로 회사의 존립이 흔들릴 정도의 회사라면 규모가 작은 소기업이라든지 자영업 수준의 업체 정도랄까. 설령 그런 곳의 사장이 어느 날 갑자기 사망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일자리를 찾아가면 그만이다.
1인 교수 책임 연구 제도의 문제
그러나 아카데믹 리서치는 어떨까? 가령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연구자가 있다고 하자. 스웨덴 관광 가서 N모씨 얼굴이 들어있는 금붙이 하나 받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일 년에 굴리는 연구비가 수백억 원에 이르고, 밑에서 근무하는 박사급 연구원이 수십, 수백 명에 달하는…
아무리 그런 킹왕짱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급작스럽게 사망하거나 연구를 못 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이 미쿡 혹은 한국의 연구자라면, 대개 그 밑의 연구원, 대학원생 등은 그 즉시 진로가 깝깝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그것도 사람에 따라서 케바케지만서도.
이전에 주변에서 본 게 있다. 이전에 한때 적을 두던 학교에 해당 분야에서 미쿡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소위 ‘대가’가 있었다. 포닥이 20~30명 정도 되고 대학원생, 테크니션 포함하여 50명에 이르는 소위 빅 랩이었다. 그런데 이 양반이 출근하던 중 주차장에서 심장 마비가 와서 바로 돌아가셨다. (누군지 궁금하다면, 이 분 이야기다)
학과에서 그 양반 밑에 있던 사람들에게 “너네들 6개월간은 샐러리를 보장해 줄게. 그 이후엔….” 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간접비를 받은 게 얼마니 그 정도는 해 주어야지.) 그 이후 6개월 이내에 그 큰 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사람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건물 앞에 심어져 있는 나무와 그 사람을 기념해서 심었다는 명패 하나.
“소기업에 다니다가 오너가 갑자기 사망해도 마찬가지가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마찬가지일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포닥이나 대학원생 등이 아카데믹 랩에서 얻는 것은 ‘급료’만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보수’는 ‘연구업적’으로 나온다. 미쿡 같으면 여기에 덧붙여 ‘자기의 지도교수의 Recommendation Letter’ 역시도 일종의 ‘반대급부’라고나 할까. 일종의 자신의 ‘보수’를 퇴직금 식으로 적립해 놓았다가 타가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러나 보스가 유고되면 그런 게 대개 싸그리 없어진다. 몇 년의 노력을 통해서 진행하던 프로젝트 등이 없어지기도 하고. 대학원생의 경우라면 랩을 바꾸어서 몇 년 동안 진행되던 일을 백지화하고 새롭게 시작한다거나 하는 깝깝한 상황도 펼쳐진다. 포닥이라면 한참 진행되던 연구를 논문화하지 못하고 다른 랩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비록 교수가 갑작스럽게 유고하는 상황이 아닌 은퇴하거나 정년퇴직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런 식의 ‘1인 오너에 의한 Small Business’ 식의 랩에서는 그동안 쌓아올린 역량이 한순간에 증발하는 일은 생길 수밖에 없다.
1인 교수 책임제가 한국 과학에 최적화된 제도인가?
반면, 일본식의 랩, 즉 한 연구실에 연구책임자 이외의 faculty가 있는 경우에는 이런 상황에서 좀 더 안전한 것 같다. Lab head가 유고되는 상황이라면 그다음의 사람이 이어받으면 되니까. 물론 저명한 Lab head가 유고한 상황에서 뒤를 잇는 사람의 역량이 이전의 사람에 미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것은 ‘1인 오너’ 시스템에서처럼 한순간에 그동안 쌓아올린 연구실의 역량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식의 체제가 항상 우수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연구비가 풍부하고 신진을 빠방하게 밀어줄 수 있는 여건에서는 ‘1인 오너’ 시스템의 연구실 운영이 좀 더 새로운 토픽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특히 한국과 같은 곳에서 현재와 같이 ‘1인 교수 책임제’ 시스템이 한국과학의 발전에 최적한 시스템인지에 대해서는 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교수가 유고되는 상황이 아니라, 처음 자리잡는 신진연구자가 제대로 된 지원도 없이(극히 일부의 대학을 제외하면 한국 대학에서는 제대로 된 ‘setup fund’라는 개념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정년보장 받으려면 “Nature 논문 내삼”까지는 아니더라도 “업적 점수 몇백 퍼센트 채워오삼” 하지 ㅠ) 세파에서 독립된 연구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와도 관련이 있다.
한국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학계는 미쿡에서 유학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 시스템이 모방되어 온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이러한 시스템이 그쪽에서 정립된 맥락을 모르면서도 “아 내가 본 미쿡의 시스템은 이렇던데, 거기가 짱이라능!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라고 해서 들어온 것들도 수두룩하다. 누군가도 미쿡물을 10년 이상 먹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수도 있다만
그러나 이제 한 번쯤은 그런 것들이 과연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지, 우리의 현실과는 적합한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 싶다. 어디 그런 게 한두 개이긴 하겠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