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커뮤니티에 영국의 정신 나간 무기라며 톨보이에 대해 심한 과장을 해놓은 글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더군요. 매우 두터운 콘크리트로 보호받는 유보트 기지 등을 파괴할 목적으로 5톤의 초대형 폭탄을 만들어 사용한 것인데, 지극히 정상적인 무기였죠.
톨보이에 대한 글을 본 김에 2차대전에서 사용했거나 하려고 했던 황당무계한 무기를 몇 가지 정리해보겠습니다. 물론 지상 순양함이나 플라이 윙과 같은 것도 많지만 그건 이미 설명했으니까 넘어가도록 하죠. 서류로만 남은 무기 중에는 요즘에 봐도 첨단이거나 만화에서나 나올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V3 대포
독일은 수세에 몰리자 보복의 뜻인 베르겔퉁스바페Vergeltungswaffe 무기를 연달아 개발해 사용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V1 순항미사일과 V2 탄도미사일이었고 V3는 언덕에 설치해서 프랑스에서 영국까지 포탄을 날리는 대포로 개발했습니다. 포탄이 포열을 따라 이동하면 2차 추진탄약이 터져서 포탄을 가속시키는 다약실multi-charge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1944년 5월 첫 시험에서 88km 탄착에 성공했고 2개월 뒤에는 93km까지 사거리를 늘렸습니다. 완성된 2문 중에서 하나만 실전 투입되었고 1945년 1/2월 1개월 동안 연합군이 탈환한 룩셈부르크로 183발 정도를 발사했는데 기대와 달리 부정확해서 142발만 떨어졌고 10명 사망, 35명 부상의 가벼운 피해만 입혔습니다.
도라 Dora와 구스타프 Gustav 열차포
제가 프라모델로 여러 번 샀지만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해서 모두 재판매한 무기입니다. 미국 애버딘 전차박물관에서 열차포(아래 사진)를 봤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대형무기에 집착하던 독일이 80cm 열차포라는 괴물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큰 대포입니다. 고질라 급의 무기였기 때문에 분해해서 열차로 이동한 후에 목표지에서 재조립해야 했고 무려 4,000명의 병력이 동원되었습니다. 연합군의 탐나는 사냥감이어서 대공포 1개 연대와 보병부대의 호위를 받았습니다.
구스타프는 겨우 48발만 발사하고 1945년에 파괴되었지만 1942년 세바스포톨 공성전에서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4.8톤에 달하는 포탄을 42발 날려 암반 30m를 뚫고 탄약창을 파괴했습니다.
무기 자체로는 공학의 결정체였지만 실용성 면에서는 군수물자와 귀중한 두뇌 모두를 낭비한 대표적인 무기였습니다.
쥐 폭탄
프랑스가 항복하고 본토를 위협받자 영국은 독일군에게 대대적인 테러를 감행하기로 합니다. 쥐의 사체 안에 플라스틱 폭탄을 채워 넣고 난방용 석탄 등에 올려두는 것이죠. 그것을 본 독일군은 쥐 시체를 난로 안에 던져서 없애려고 하겠죠?
문제는 어떻게 독일군 막사 안에 침투할 것인가였는데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쥐 폭탄을 운반하던 배가 독일군에게 나포되었고 그냥 그렇게 무산되었습니다. 그런데 영국 특수공작부는 쥐 폭탄을 대성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독일군이 쥐 폭탄에 놀라서 군사학교에 전시하고 죽은 쥐만 보면 비상사태라며 유난을 떨어 줘서 원래 계획했던 테러 효과를 충분히 거뒀기 때문입니다.
요코스카 MXY-7 오카 가미카제 폭탄 비행기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로 오카나와 상륙을 막으려고 했던 일본은 아예 1944년 9월, 조종사를 태운 자살폭탄 오카를 투입했습니다.
오카는 600~1,200kg의 폭탄을 장착한 무동력(9월 버전)과 로켓 동력(11월 버전) 폭탄 비행기로 목표물 근처까지 미쓰비시 G4M (연합국명 베티) 폭격기로 운반했다가 투하하면 조종사가 로켓 동력을 점화하고 목표물에 내려꽂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일본은 오카로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고 주장했지만, 전후 기록분석에서 구축함 한 척 침몰 정도의 전과만 올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총 852기가 제작되었습니다.
소련의 대전차 자살견
원래는 군사목표물 근처에서 개가 시한폭탄을 풀어놓고 돌아오게 훈련시키려고 했지만 가능할 리가 없었죠. 그래서 아예 접촉식 폭탄을 짊어진 자살견을 만들었습니다. 전차는 바닥이 가장 얇기 때문에 그 밑으로 기어들어가 터지게 하겠다는 계획이었죠.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소련은 300대의 전차를 부쉈다고 했지만 그건 소련 특유의 선전전이었고 기록으로는 2~30대 손상을 입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깜짝 놀란 독일군이 개만 보면 사살해 버렸고, 집으로 돌아온 영특한(?) 개가 친근한 소련군 전차 아래로 들어가는 바람에 더 이상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호버트Hobart의 신기한 전차
효과가 상당했기 때문에 여기에 끼워넣기에는 많이 억울해 할 무기입니다만, 당시에는 다들 입을 벌리고 봤으니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연합군은 D-Day를 맞아 희한한 차량을 대거 제작했고, 퍼시 호버트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가교 전차나 지뢰제거 전차는 독일군 전차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루르슈탈Ruhustahl SD 1400 “프리츠Fritz X” 유도탄
무선으로 조종한 세계최초의 유도탄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대함탄입니다. SD 1400 철갑탄에 유체역학적 디자인을 적용하고 4개의 작은 날개와 꼬리를 달았습니다. 개념은 매우 혁신적이었지만 투하 후에도 폭격기가 무선으로 조종해야 했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었습니다.
연합군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1943년 9월 9일, 이탈리아가 항복하자 독일은 북아프리카에 정박한 이탈리아 함대를 공격해서 연합군이 노획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전함 로마가 프리츠를 맞고 1,455명의 병사와 함께 침몰했습니다.
영국 순양함 스파르탄, 구축한 야누스와 수송선 여러 척이 침몰했습니다. 2,000개가 넘게 제조되었지만 200개만 사용되었습니다.
비슷한 것으로 헨셀Henschel HS 293 유도탄이 있었는데, 이것은 투하 10초 동안만 로켓을 점화했다가 나머지는 그대로 목표물로 돌진하는 폭탄입니다. 중간에 방향을 바꿀 수 없고 프리츠와 달리 철갑탄을 사용하지 않아서 주로 비무장 상선이나 경장갑 전함에 사용되었습니다.
비회전 투사탄Unrotated Projectile
근거리 대공무기가 부족했던 영국이 공중 지뢰밭을 만들겠다고 개발한 무기입니다. 로켓에 줄과 낙하산이 달려 있어서 그 지역을 뚫고 들어오는 전폭기가 선을 건드리면 비회전 투사탄을 잡아당겨서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개념 자체는 그럴듯했지만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바뀌어도 로켓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거나 거꾸로 아군 선박에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대전 초기에는 근거리 대공포가 워낙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했습니다.
육상에서는 Z 배터리라는 이름으로 근거리 대공미사일로 사용되었습니다.
X급 미니 잠수함
150톤 이하를 미니 잠수함이라고 부르는데, 원래 이탈리아에서 나온 개념이었고 겨우 4명의 승무원이 탑승해서 최대 시속 12km/최대거리 926km(해상, 잠항은 152km)의 성능을 가졌습니다.
잠수함을 목표물 아래로 최대한 접근시킨 후에 선체 양쪽에 달린 기뢰의 볼트를 풀어서 투하한 후에 탈출하는 용도였습니다. 독일 전함 티르피츠 Tirpitz에게 손상을 입히는 등 나름 전과는 있었습니다.
독일은 비버Biber(사진 참조) 등의 미니 잠수함을 보유했습니다.
골리아드 Goliath 궤도 지뢰
연합군은 개미귀신이라고 부른 자폭용 원격조종 궤도차였습니다. 1942년에 개발되어 유선으로 목표물까지 폭약을 운반해 터트리는 목적으로 4,600대가 제작되었습니다.
너무 둔해서 목표물까지 가기도 힘들었고 요행히 간다고 해도 폭약운반량이 너무 적었습니다. 개념은 시대를 앞섰지만, 기술이 따라주지 못한 대표적인 무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