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전문은행 인가 이후, 카카오뱅크가 언급한 ‘직접 결제’ 모델은 카드사 등 기존 결제 업계를 상당히 긴장하게 하였다. 안 그래도 먹고살기 어려워져 걱정인데 0% 수수료라니… 오늘은 이 ‘은행 주도의 직불 결제’ 모델에 관해 얘기를 해볼까 한다.
카카오뱅크의 ‘직접결제’란 무엇인가
혹시 직불카드(debit card)를 기억하시는가?
지금은 체크카드로 대체되어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는 꽤 많이 발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능적으로는 체크카드와 비슷하지만, 직불카드는 은행이 운영 주체가 되어 카드망과는 별도의 가맹 네트워크(은행 공동망)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직접 결제’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 그 조상님인 직불카드가 살았던 90년대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가 좀 특수해서 그렇지 보통 결제 시장에서 신용카드는 꽤 하이엔드(high-end) 서비스이다. 기본적인 신용판매 기능 외에도 할부, 리볼빙, 현금서비스, 카드론, 멤버십 등 여러가지 연관 서비스가 제공되며, 연회비는 물론 가맹점 수수료, 각종 이자와 취급 수수료 등이 부과된다. 이에 비하면 통장 잔액에서 실시간으로 빠져나가는 직불 결제는 사실 서비스라고 할 것도 별로 없는, 저가의 로우엔드(low-end)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90년대 로우엔드 결제 서비스로서 은행과 직불카드의 경쟁력은 꽤 괜찮았다. 광범위한 은행 고객 기반, 연관 상품(유동성 계좌), 발급의 편의성(지점), 미들맨이 없거나 적은 저비용 프로세스… 가맹점 네트워크가 좀 부족한 것을 제외하고는 저비용으로 고객에게 기본적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직불카드는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에 완전히 밀려버렸다. 유일한, 하지만 중요한 약점이었던 ‘가맹점 네트워크’ 측면에서 카드사가 엄청나게 빠르게 치고 나갔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네트워크 구축에는 돈이 많이 든다. 예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신용카드업은 가맹점 수수료 외에도 신용 대출이라는 예로부터 짭짤한 수익모델을 가지고 있으므로 네트워크(회원/가맹점) 확장을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고 가맹점 수수료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었던 시절이니 무슨 걱정이 있었겠는가.
1999년 처음 시행된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말 그대로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카드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일종의 정부 보조금이나 다름없었다. TV에는 카드 광고가 줄곧 나왔고, 동네 구멍가게에도 카드 단말기가 깔리기 시작했다. 누구나 하이엔드 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이렇게 우호적 환경 덕에 카드사가 이미 결제 서비스의 범용성을 확보한 상황에서 은행들은 굳이 생돈을 들여 별도의 직불카드 네트워크를 구축할 이유가 없었다. 직불 결제는 신용카드와는 달리 부가적으로 수익을 뽑을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네트워크에 투자할 만한 기대 수익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은행들이 직불카드를 포기하고 카드사의 체크카드에 숟가락을 얹은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카드사는 신용카드 가맹점 네트워크에서 쓸 수 있는 체크카드를 발행했고, 은행은 결제에 필요한 실시간 출금 서비스를 제공했다. 수익도 공유했다. 카드사는 가맹점으로부터 받은 수수료 일부를 실시간 출금 서비스에 대한 ‘계좌이용수수료’로 은행에 지급했다. 은행도 카드사도 만족할 만한 솔루션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있었다. 로우엔드 결제 서비스라 하기엔 체크카드의 거래 비용이 너무 높아진 것이다.
신용카드의 가맹 네트워크와 업무 프로세스를 그대로 가져다 쓰다 보니 은행-카드사-VAN사-PG사 등 중간 공정이 늘어났다. 또한, 카드 결제 망의 대체재가 없어 시장 참여자들이 비용과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력할 유인이 크지 않았다. 지금은 가맹점들의 반발과 당국의 정책적 개입 등으로 좀 내려갔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체크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은 신용카드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카카오뱅크의 당면과제
2015년으로 돌아와 보자. 카카오뱅크가 준비하는 ‘직접 결제’ 역시 저비용의 로우엔드 결제 서비스이다. 일종의 진화된 직불카드라고 볼 수 있다.
강점도 비슷하다. 일단 카카오의 플랫폼과 고객 기반이 있는 데다, 은행 인가를 받게 되면 ‘유동성 계좌’라는 무기를 장착하게 된다. 비대면 실명확인을 통해 지점 못지않은 접근성과 편의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카드사, VAN, PG 없이 은행-가맹점-고객의 심플한 결제 구조를 통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약점, 당면 과제는 역시 가맹점 네트워크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카드(신용/체크) 결제 서비스가 가장 대중화된 나라다. 카드 망의 커버리지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중국에서 알리페이 같은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카드 결제 서비스가 하이엔드에 머물러 있고, 카드 망의 커버리지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이미 구축된 싸고 괜찮은 네트워크를 경쟁 상대로 비용을 들여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물론, 공략의 여지는 있다. 홍보/영업에 비용이 들어서 그렇지, 일단 ‘카카오’의 이름을 내걸고 지금보다 낮은 수수료율로 결제를 해주겠다고 하면 굳이 마다할 가맹점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소비자 쪽인데, 결제 서비스 자체만으로는 이미 익숙해진 사용자들의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다만 카카오뱅크 쪽에서 얘기한 것처럼 주문 단계에서부터 결제까지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면 좀 다를 수 있다. 이후 지출 관리까지 제대로 해 준다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어찌어찌 해서 직접 결제가 충분한 가맹점 네트워크 확보하고,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여전히 남는 문제는 돈을 어떻게 버느냐이다.
기사에도 나왔듯이, 카카오뱅크가 당장 직불 결제만으로 돈을 벌기는 힘들다. 가맹점에 가격 경쟁력을 어필하고, 소비자에게 혜택 경쟁력도 가지려면 오히려 적자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직불 결제는 수익보다는 고객과 데이터 획득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그러면 새롭게 구축한 네트워크와 고객, 데이터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낼 것인가?
과거 은행들이 직불 카드를 포기하고 카드사와 협업하기로 했던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미 네트워크와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카드사들도 기존 BM의 수익성 악화 때문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다시 ‘인터넷 전문은행의 수익 모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중금리 신용 대출, 사업자 대출, 자산관리, 금융상품 판매, 커머스 관련 수수료/커미션…
내년에 영업을 개시할 두 사업자가 답을 찾고 있을 것이다.
출처: 변화와 혁신, 금융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