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시절 박찬희 교수님의 ‘경영학 개론 / General Manager’s Perspective’라는 수업 중 창업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아 나도 훗날 기업가가 되면 가족 같은 분위기의 멋진 회사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또 얼마 전에, 한국 스타트업에 들어간 분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파운더(창업자)가 가족같이 형-아우 지간으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자고 한다’.
한국인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만큼 따뜻한 단어가 또 있을까. 그런 단어를 수식어로 품은 ‘가족 같은’ 회사… 얼마나 멋진가. 행여 언론에 ‘가족 같은 회사’가 소개되면 한국인 특유의 정(情)과 인간미가 넘치는 곳으로 묘사되곤 한다. 특히 공사 구분이 확실한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해온 나는 이런 ‘가족 같은 회사’가 가끔씩 막연한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오곤 했다.
이런 가운데 내가 다니는 회사의 창업자 리드 호프먼이 쓴 책 ‘The Alliance’를 접하게 되었다. (리드가 직원들에게 한 권씩 보내주었다). 몇 장을 넘기지 못한 채 나는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이 책의 가장 큰 요지는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였기 때문이었다.
“Your company is not a family.”
호프먼은 회사가 가족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논리를 통해 설명한다.
회사의 거짓말
Companies expect employee loyalty without committing job security
회사는 직원의 충성심을 요구하면서 그 대가인 고용 보장은 약속하지 않는다직원의 거짓말
Employee’s say they are loyal, but leave the moment a better opportunity comes
직원은 애사심이 있다고 하지만 더 좋은 기회가 생기는 순간 바로 이직을 한다
이런 양측의 거짓말로 인해 성립된 관계는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결국 lose-lose 하는 상황을 만든다고 책은 설명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회사는 능력 있는 직원들을 잃게 되고, 직원은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없다. 이 대안으로 호프먼은 회사-직원 관계를 ‘동맹‘ (alliance) 의 개념으로 보기를 주장한다.
동맹 관계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인다:
Mutually beneficial deal = 상호 이익이 있음
With explicit terms = 조건이 확실하고 명시적임
Between independent players = 독립적인 주체 사이에 성립됨
한국인의 관점에서 봤을 땐 확실히 인간미가 떨어지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회사-직원 관계에 있어서 ‘가족같은 관계’라고 서투르게 포장하는 것보다 더 솔직하고 공정한 접근 방법이다. 가족 같은 회사라고 말해놓고 직원을 해고하거나 직원의 미래에 투자하지 않는 게 어떻게 보면 더 계산적이고 비인간적인 게 아닌가?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나 역시 정으로 해주는 게 아니라 개인의 성취를 위해 회사 업무를 하는 것이 윤리적이고 공정한 거래가 아닐까.
미국 온디맨드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의 일인자인 넷플릭스(Netflix)도 그들의 ‘culture deck’을 통해 ‘We’re a team, not a family’라고 명시하고 있다. 프로구단들이 선수들을 영입하여 공통된 목적(=우승)을 향해 노력하는 것처럼 회사도 ‘가족처럼’ 지낼 사람이 아닌,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모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맞다.
아쉽게도 The Alliance 책으로 인해 나의 ‘가족 같은 회사’의 환상과 꿈은 날아가 버렸다. 새로운 직원이 팀에 합류할 때 ‘welcome to the family’라는 정감 넘치는 말도 이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전체 이메일을 보낼 때도 그전에는 All, Friends, Fam, Guys 등 내 입맛대로 정감가는 표현을 다양하게 써왔지만, 이제는 ‘Team’이라는 호칭을 기본으로 사용한다.
아쉽지만 맞는 말이다…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
원문: Andrew Ahn님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