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인공이 바로 ‘꽃’입니다. 저같이 둔감한 사람에게 사실 ‘꽃’은 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필요할 때 한 송이를 사든, 꽃다발을 사든 그때그때 가까운 꽃가게에서 사죠. 동네 꽃가게에서는 배달도 해줍니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동네에서 쉽게 살 수도 있고, 필요하면 배달도 되는 꽃시장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요. 이 업체들은 꽃이라는 감성재에 한 차례 더 ‘감성’을 덧씌웠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쁜 꽃이 더 예뻐졌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냥 받아도 예쁜 꽃에 더 예쁜 포장, 매번 달라지는 구색, 저렴한 가격(때에 따라)을 느낄 수 있죠. 꽃은 먹을 수 없지만, 같이 포장된 마카롱은 맛있게 먹을 수 있겠죠?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이 두 업체의 공급망 물류 운영전략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꾸까는 한때 국내에 돌풍을 일으켰던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정기배송)’ 모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원모먼트는 역시 국내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당일 배송(Same-day delivery)’ 모델을 사용하고 있죠.
더 재밌는 것은 원모먼트가 사업 초기 2개월 동안 서브스크립션 커머스 모델을 운영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서브스크립션과 관련된 모든 사업을 철수시켰죠. 그렇다면 꾸까가 서브스크립션을 활용하여 얻는 이점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원모먼트가 서브스크립션을 버리고 당일배송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기업의 이색(2色) 공급망을 해부해보겠습니다.
꾸까, 서브스크립션이라고 들어봤니?
꾸까는 지난해 4월 서브스크립션 업체 글로시박스의 COO를 맡았던 박춘화 꾸까 대표의 경험을 살려 시장에 진입한 업체입니다. 플라워 부케를 정기배송(Subscription)해주고 있습니다. 플라워 스타트업 한 관계자에 따르면 꾸까는 한국에서 꽃을 판매하는 업체 중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페이스북 좋아요는 현재 10만 명이 넘었죠.
정기구독으로 재고 제로화에 도전
꽃이 잘 팔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름다운 꽃? 감각적인 포장? 당연합니다. 그래야 매출이 올라가겠죠. 바꿔서 질문해보죠. 꽃을 팔아서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할까요?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꽃을 많이 파는 것’ 둘은 ‘꽃을 파는데 드는 부가적인 비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꾸까의 ‘서브스크립션’은 바로 이 두 번째 방법과 연결됩니다. 사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수요예측’은 굉장히 큰 장벽이 됩니다. 특히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재화를 판매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더욱 큰 부담이 되겠죠.
그러나 정기구독 사업모델은 수요예측이 용이합니다. 고객이 배송받기 원하는 시간이 확실하기 때문에 재고를 구비할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필요에 따라 공급업체를 통한 조달, 상품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핸드부케라는 품목은 제작에 전문성은 요구되지만, 원재료를 공급하고 제작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드는 재화가 아닙니다. 실제로 꾸까의 창고에는 꽃과 관련된 재고가 거의 없죠.
재고가 줄면 무엇이 좋을까요? 필요 이상의 원자재를 구매하지 않아도 됩니다. 관리부담도 덜하겠죠. 즉, 공급망 전체의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화룡점정 ‘큐레이션’
꾸까는 2주마다 새로운 꽃들을 선정하여 핸드부케를 만들어 고객에게 배달합니다. 고객들은 저렴한 가격에 핸드부케를 구매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부케에 들어가는 꽃들은 직접 선택할 수 없습니다. 부케에 들어가는 꽃은 꾸까가 큐레이션하죠.
큐레이션 서비스에도 비용감축의 미학은 숨어있습니다. 꾸까는 서울권역에서 가장 큰 꽃 도매시장인 고속터미널과 양재 도매시장에서 주기적으로 꽃을 구매합니다. 농장에서 도매시장으로 공급되는 꽃들은 농장 상황 및 계절에 따라 그때그때 공급량이 다릅니다. 제철인 꽃들은 당연히 공급량이 많고 가격이 싸겠지요? 반면 개화기가 지난 꽃들은 공급량이 적고 가격도 비싸질 것입니다.
꾸까는 계절, 상항에 따라 가격이 저렴한 꽃들을 취사선택해서 구매합니다. 서브스크립션 수요를 기반으로 형성된 구매력은 대량 구매에 따른 규모의 경제를 가능케 만들며, 이는 경쟁업체에 비해 싼 가격에 핸드부케를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사실 꽃배달 스타트업 중 ‘큐레이션’을 하는 곳은 굉장히 많습니다. 유명 플로리스트가 전면에 나서서 부케를 제작하고 있음을 홍보하고 있죠. 고객은 이를 통해 꽃 구성의 다양성, 그리고 제작되는 꽃의 전문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꾸까의 큐레이션 모델이 ‘아름다운 부케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공급업체의 공급량을 고려해서 충분한 공급량과 최적의 가격을 가진 꽃들을 선정하고, 고객에게 가능한 저렴한 가격의 부케를 공급하는 것. 즉, 큐레이션은 정기구독에 더하여 비용감축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됩니다. 꾸까의 핸드부케 가격이 9,9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부터 판매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싼 가격에 판매됨에 불구하고 마진율은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꾸까 박춘화 대표의 말을 인용합니다.
“국내 화훼 시장의 가격은 굉장히 유동적으로 변합니다. 심지어 대량 구매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격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가격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꽃을 구매하여 구성이 다른 핸드부케 카테고리를 여러 가지 만드는 방식으로 꾸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모먼트, 당신의 순간(의 위기)을 위하여
원모먼트는 올해 7월 서비스를 론칭한 업체입니다. 핸드부케, 바구니를 서울, 경기지역 3시간 배송, 강남 등 일부 지역은 90분 배송을 해주는 것이 강점입니다. 즉 ‘빠른 배송’이 무기인 업체입니다.
재밌는 것은 초기 원모먼트가 꾸까와 같은 ‘서브스크립션’ 모델로 시장에 진입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원모먼트 임규형 대표의 말을 인용합니다.
“처음 서브스크립션 시장에 진입했을 때 당시 시장규모로 2, 3위를 다투던 업체 하나가 저희한테 잠시나마 밀려났습니다. 시장의 가격 교란자가 된 것이죠. 그런데 사실 저희는 애초에 서브스크립션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당시 원모먼트는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강조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는데요. 이 모든 것은 이후 원모먼트가 계획했던 사업을 하기위한 일련의 준비단계였습니다.
서브스크립션은 거들 뿐
원모먼트가 서브스크립션 모델을 운영한 것은 단 두 달. 이 기간 동안 원모먼트는 페이스북 좋아요 1만 개를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값싼 정기배송 상품, 그리고 꽃이라는 재화의 특성상 ‘바이럴’이 잘 됩니다. 특히 꽃을 좋아하는 여성분들에게는 효과가 더 좋지요. 좋아요는 마구 올라갑니다. 주변인들에게 “이 꽃 사줘!”하면서 태그하는 경우도 심심찮습니다.
네. 원모먼트는 마케팅을 위해 ‘서브스크립션’을 활용했습니다. 단 두 달 만에 사업은 ‘당일 배송’ 모델로 피벗(Pivot) 되죠. 심지어 핵심고객 또한 바뀌어 버립니다. 기존 서브스크립션 모델이 주기적으로 싼 가격에 핸드부케를 정기적으로 소비하고 싶은 ‘젊은 여성’이라면, 원모먼트의 당일 배송은 25세~35세 ‘남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왜 당일 배송인가?
앞서 언급했듯 원모먼트는 ‘당일 배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당일보다 더 빠른 3시간 배송, 90분 배송을 하고 있죠. 꽃이 당일에 급하게 필요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네. 꽃을 소비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입니다. 남성은요? 꽃 사서 뭐해 먹겠습니까. 그 돈으로 술 먹겠지 그들이 꽃을 절실히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같은 연인들의 기념일이죠.
남자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특별히 감춰뒀던 감성이 폭발하며 꽃을 사는 것일까요? 남자들에게 꽃이란 선물입니다. 가령 오늘이 여자친구와 300일 기념일인데,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선물도 못 샀어요.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요.
잘못했다고 빌까요? 아닙니다. 순간을 모면할 방법이 있지요. 좋은 레스토랑 하나 당일 예약하고, 당일 배송 받은 꽃 한 다발을 마치 미리 준비한 것처럼 여자친구한테 건네어 준다면요? 심지어 예쁜 포장을 열면 평소 여자친구가 그렇게 좋아하던 마카롱이 들어있어요.
그렇게 위기가 될 수 있었던 하루는 나도 좋고, 여자친구도 좋고, 원모먼트도 좋은 메리 해피데이로 바뀔 수 있습니다.
가격이요? 당연히 서브스크립션 부케보다는 비싸요. 하지만 당장 결제한다고 해서 서브스크립션 상품을 눈앞에 대령할 수가 없는데 지금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당장 위기는 넘겨야 하잖아요. 원모먼트 고객의 70%가 25세~35세의 남성인 이유입니다.
속도를 만드는 것은 배송이 아니다
재밌는 것은 빠른 배송을 강조하는 원모먼트가 정작 요즘 유행하는 ‘직접배송’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원모먼트의 속도는 ‘배송’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원모먼트의 빠른 배송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요?
원모먼트의 서초동 사무실(겸 작업실)은 원자재를 매입할 수 있는 양재꽃시장과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위치해있습니다. 임 대표는 화훼시장에 꽃이 많이 들어오는 날인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 맞춰 새벽 5시에 플로리스트와 함께 시장에 방문하여 원자재를 매입하죠. 고객들의 예약주문량에 맞춰 원자재를 매입하며, 평균 고객주문량 시계열 데이터에 기반을 두어 추가 안전재고를 산정하여 추가로 구매합니다.
이렇게 구매한 꽃을 상품화되기 전 단계인 ‘반제품’의 모습으로 다듬고 세팅하는 것이 오픈 시간인 오전 10시까지 할 일입니다. 오전 10시 이후에는 그때그때 들어오는 고객 주문에 시시각각 대응합니다. 원모먼트는 고객주문 발생과 동시에 배차를 시작합니다. 배차된 이륜차 퀵라이더가 원모먼트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는 평균 30분이 소요됩니다. 이 시간동안 상품이 완성되어야 고객에게 약속한 90분 배달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30분 안에 상품제작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모먼트는 단시간 제작을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채용했습니다. 하나는 생산 시스템의 공장화입니다. 원모먼트는 플로리스트 하나 당 1~2개의 상품생산만 전담시킵니다. 이는 플로리스트의 숙련도를 올려서 상품의 품질은 물론 작업속도까지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입니다.
둘은 앞서 미리 준비한 ‘반제품’입니다. 주문 발생 전인 오전 10시 이전에 원자재를 미리 다듬어서 ‘반제품’ 화 한 것이 작업속도를 단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임 대표에 따르면 원모먼트 플로리스트의 평균 생산시간은 꽃다발의 경우 8분, 꽃바구니의 경우 15분입니다. 이후 포장을 하는데 이는 이륜차 기사가 도착하기 전에 모두 완료되죠. 원모먼트는 이렇게 구축한 공급망을 통해 평균 재고율 5% 미만을 달성했죠!
마치 공장화된 것처럼 원자재 조달부터 제조라인을 통합한 원모먼트의 공급망은 흡사 도요타의 JIT(Just In Time)를 보는 듯합니다. 이륜차는 원모먼트의 창고를 그저 거쳐 갑니다. 기사가 도착하는 데 걸리는 30분까지 이미 고객에게 배송될 상품은 포장까지 완료됩니다. 결국, 원모먼트의 빠른 배송은 ‘배송’이전의 공급망인 ‘조달’, ‘생산’, ‘포장’ 과정의 철저한 준비를 통해 나타나는 결과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정답은? 꾸까의 서브스크립션, 원모먼트의 당일 배송, 정답은 무엇일까요?
사실 없어요. 두 업체는 꽃을 팔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같은 시장에 있지는 않습니다. ‘고급화된 꽃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을 강조하는 꾸까. 꽃을 소비하는 여성을 직접 타겟팅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저렴합니다. 9,900원부터 가능합니다. ‘소중한 이에게 주는 선물을 멋지게 대행해주는 것’을 강조하는 원모먼트. 꽃을 선물로 구매하는 남성을 타겟팅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더 비싸요! 39,000원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어떤게 더 시장에 파급력이 있고 더 잘 팔리고 하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저 같은 무덤덤이가 봐도 기분 좋아지는 꽃을 맘껏 볼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게 좋은 것이죠! 가끔 여자친구와 다투거나 하는 어마무지한 일이 생겼을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는 업체가 하나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고요.
원문: 엄지용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