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의 카카오, 초록색의 네이버, 애플과 알리바바 그 수많은 프랜차이즈와 SNS, 그리고 짝짓기와 배달 앱 등. 요새 잘나가는 기업이나 사업 하나둘 이름을 대보자. 플랫폼? 말이 좋아 플랫폼이고 생태계이지, 모두 얄미운 매개 비즈니스다.
(연세대학교 임춘성 교수, 매개하라 中 )
그야말로 매개의 시대입니다. 연세대학교 임춘성 교수의 저서 ‘매개하라’에 따르면 알리바바, 아마존, 페이스북, 카카오가 제품, 공장 하나 없이 남들이 수십 년, 수십만 명 투자해 만든 것을 단숨에 능가해버린 이유는 바로 그들이 매개의 천재였기 때문입니다. 매개자는 연결자가 아닙니다. 연결을 주선하는 중간에 있는 존재입니다. 실제 서비스를 공급하지도, 소비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중간에서 매개할 뿐이죠.
앞서 임춘성 교수가 언급한 카카오를 예로 들어봅시다. 카카오택시는 ‘공급자’와 ‘소비자’의 중간에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실제 택시를 보유, 운영하고 있지는 않죠. 또 다른 매개자로 화물 운송 주선 사업자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운송수단, 창고 등 물류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물류서비스가 필요한 이들과 실제 서비스 공급자를 이어줄 뿐입니다. 대표적인 화물 운송 주선 스타트업으로는 ‘고고밴’이 있습니다.
이런 매개자들이 처음부터 길목을 붙잡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처음엔 누구보다 절실하게 길목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죠. 어느 정도 이상의 사람들이 길목에 모이기 시작하니, 그 때부터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길목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소위 말하는 매개 비즈니스의 핵심이 일정 숫자 이상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확보하는데 있는 이유입니다. (물론 매개자들 중에서는 공급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혹은 소비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매개자도 있지만 그 부분은 이번 글에서 배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카오의 사례는 재밌습니다. 기존에 이미 지키는 자가 존재했던 매개시장에 진입하여 새롭게 시장을 재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카오가 장착한 무기는 시장의 지지, 즉 공급자와 소비자를 통해 명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카카오는 지난 5일 대리운전 서비스인 ‘카카오드라이버 프로젝트’를 준비한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보도자료를 인용합니다.
카카오드라이버에 대한 내부 검토를 마친 카카오는 수도권 5개 대리운전 기사 단체(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 대리운전노동조합, 한국노총 대리운전 노동조합, 한국 대리운전 협동조합, (사)전국 대리기사 협회, 전국 대리기사 총 연합회)와 함께 간담회를 진행한다.
대리운전 기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공정한 경쟁을 위해 카카오드라이버가 갖춰야 할 정책 및 서비스 구조에 대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카카오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정책을 만들기 위해 대리운전 기사뿐 아니라 서비스 이용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폭 넓게 소통해 나갈 계획이다. 출처
응?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건데… 잠시 작년으로 타임워프해봅시다.
다음카카오는 카카오택시 서비스 출시에 앞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상생하는 모델 구축에 중점을 뒀다. 앞서 서울특별시택시운송사업조합 및 주식회사 한국스마트카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전택노련과도 협력 관계를 맺음으로써 기사 회원 확보는 물론, 기사 회원의 활발한 참여를 통한 안정적 서비스 환경 조성에 힘을 얻게 됐다.
다음카카오는 지난 3월 카카오택시 론칭 이전에 택시기사들과 관련된 업체들과 잇따른 업무협약을 추진했습니다. 카카오택시는 불과 론칭 몇 개월만에 시장을 석권하고, 카카오의 온디맨드 전선을 구축하는 대표 서비스가 되죠. 그리고 카카오가 대리기사 서비스에 진입하기 전에 행한 행보, 즉 공급자의 지지를 우선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지난 카카오택시의 사례와 너무나도 똑같습니다. 다만 협약의 주체가 ‘택시기사’에서 ‘대리기사’로 바뀐 것 뿐입니다.
재밌는 것은 카카오가 주장하는 대리운전 기사와 서비스 이용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에서 배제된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카카오가 시장에 진입하기 이전에 대리운전 시장에 존재했던 매개자인 대리운전중개업체입니다. 소위 말하는 ‘대리운전협회’가 카카오의 진입에 정면 반발하는 이유입니다. 대리운전협회는 대리운전기사가 아닌 대리운전중개업체의 연합체입니다. 그런데 이 대리운전협회가 시장에 비집고 들어오는 카카오를 막아낼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있습니다. 시장의 공급자인 대리기사들 사이에서는 기존 대리운전중개업체에 불만이 꽤나 팽배해 있었다는 사실이죠.
취소비를 기사에게 돌려주지 않고 상황실이 수취하도록 정책을 만든 로지소프트가 대리기사가 받는 온갖 스트레스와 ‘똥콜’의 주범이다. 물론 그런 정책에 동의하는 상황실도 별반 다를게 없는 것들이다. (출처: 네이버 대리운전기사 카페)
여기서 말하는 상황실은 기존 소비자의 전화를 받는 ‘콜센터’, 로지소프트는 대리운전 관제, 발주 시스템(앱)을 개발, 운영하는 국내 최대규모 대리운전 솔루션 업체입니다. 카카오의 대리운전 진출에 정면 반발하고 있는 ‘대리운전협회’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죠. 대리기사(공급자)들의 불만, 대리기사들과 협약을 통해 시장에 진입한 카카오, 그리고 발등에 불 떨어진 대리운전중개업체… 대리운전협회는 이제 카카오의 진출에 단순 반발하는 것 이상의 대응을 시작하는데요.
뒤늦게 공급자를 챙기는 모습입니다만, 아무래도 이런 대응은 꽤나 늦은 것 같습니다. 대리운전 시장은 카카오택시의 사례처럼 카카오라는 새로운 매개자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입니다. 그리고 카카오의 등 뒤에는 서비스 공급자인 대리기사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습니다. 소비자의 지지는 ‘충분한 공급자를 확보함으로 발생하는 좋은 서비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보되겠죠. 물론 카카오가 챙기는 이해관계자에 대리운전중개업체는 배제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카카오가 진출을 선언한 ‘대리운전’ 시장이 ‘이륜차 퀵시장’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국내 최대 대리운전주선 솔루션 업체 ‘로지소프트’는 대리운전 이전에 퀵시장에 먼저 진입했던 업체죠. 대리운전 시장과 퀵시장의 공통점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1. 우리는 무법지대
대리운전, 퀵은 모두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자유업종입니다. 속된 말로 오토바이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퀵 서비스를 할 수 있죠. 대리운전은 더합니다. 운전면허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진입 가능합니다. 그러나 시장에 진입한 기사들이 당장 퀵콜, 대리콜을 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 소위 말하는 콜센터와 배차 솔루션이라 불리는 기사용 앱입니다.
이들은 시장에 선진입한 매개자로써 시장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법이 없기 때문에 독과점한 업체를 규제할 만한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퀵 업계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지금 퀵 시장은 ‘인성데이타’가 8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사가 많기 때문에 주문이 가장 원활하게 빠진다. 대리시장도 마찬가지다. ‘로지소프트’가 기사가 제일 많기 때문에 주문이 많이 빠진다. 기사들은 주문이 많은 앱을 사용한다. 주문이 곧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과점 업체와 나머지 업체들 간의 양극화는 더더욱 심해진다.
2. 공급자의 불만팽배
앞서 대리운전 시장의 공급자인 대리기사들의 불만이 쌓여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퀵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퀵 기사들은 업계 특유의 ‘전투콜 방식’과, 플랫폼(앱) 개발 업체들의 운영 행태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전에 작성했던 기사를 인용합니다.
전국 퀵서비스 라이더연합회 정호승 회장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플랫폼 개발 업체들의 운영 행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인성, 로지, 손자 같은 앱 개발 업체들은 서버를 여러 개 확충하여 주문을 분할,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퀵 라이더들은 원래 하나의 앱을 통해 열람할 수 있는 주문들을 여러 개의 서버를 통해 나눠 보게 되었다”며
“가장 큰 문제는 각각의 서버마다 월 사용료가 부과되는데 정작 앱 개발 업체들은 이런 서버를 나눈 특별한 기준조차 없다”고 밝혔다. 앱 개발 업체들의 이런 행태는 그저 퀵 라이더들에게 더 많은 앱 사용료를 걷기 위한 횡포라는 것이 정 회장의 설명이다. 출처
3. 명분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 퀵 시장과 대리 시장은 무법시장입니다. 무법시장이기 때문에 일부 업체가 특수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지만, 무법시장이기 때문에 새로운 업체의 진입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할 제도적 장벽 또한 없습니다. 또한 시장의 서비스를 공급자의 불만도 팽배한 시장입니다. 이런 시장에 거대기업 카카오가 들어온다면요? 게다가 협업의 대상으로 시장 공급자의 손을 잔뜩 붙잡고요. 소비자와의 보다 편리한 연결은 덤입니다.
대리운전협회의 반박 근거가 ‘골목상권 침탈’ 그 이상을 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사실 카카오가 진입한 시장은 골목상권이라기에는 너무 큰 시장이기도 하죠. 앞서 매개 비즈니스의 핵심이 ‘일정 숫자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카카오택시는 공급자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시장에 선진입했던 동부콜, 나비콜과 그 이후 우버택시를 대체하는 서비스로 자리매김했죠. 소비자의 지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카카오가 새로운 대리시장에 진입하는 명분은 여전히 ‘공급자의 지지’ 입니다. 그렇다면 기존 시장을 지키고 있던 매개자들의 명분은 무엇인가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탈’인가요? 그리고 앞으로 카카오가 업계의 예측대로 퀵 시장에 진입한다면 그 시장을 지키고 있는 매개자들의 명분은 무엇이 될까요? 여전히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탈’인가요?
임춘성 교수에 따르면 매개자는 만든 자보다 더 가진 자이고, 비용 있는 소유보다 개념 있는 통제를 추구하며, 책임 없는 권력을 행사하는 자입니다. 카카오가 자리를 가져간 대리운전협회의 선례처럼 공급자의 지지를 잃고 통제권을 잃은 매개자는 순식간에 무너져내릴 수도 있습니다.
원문: 엄지용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