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유학생들의 진로 상담을 해줄 때 흔히 듣는 말이 ‘저는 영어를 잘 못 해서 컨설팅이나 미국 회사는 지원 못 할 것 같아요’ 이다. 이런 경우에 상대가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못한다는 사실이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도 영어 잘 못해요. 그리고 제 주변엔 영어 진짜 못하지만 회사에서 정말 잘 나가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의사소통을 정말 잘해요.’
나는 언어를 잘 하는 것과 의사소통을 잘 하는것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있다면 한국사람 모두가 정치인 못지 않은 언변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인 언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니엘 헤니처럼 멋지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아닌, 백종원처럼 효과적인 의사소통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상대방에게 강렬하고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전달
- 상대방을 사로잡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침
- 의사결정의 속도와 질을 높임
나 역시 의사소통의 달인은 아니지만, 십여 년 전 손짓 발짓 섞어가며 컨설팅 회사 인터뷰를 진행한 이후로 수많은 것을 보고, 듣고, 실수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 경험들을 토대로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정리해 보았다.
1. 의사소통을 하는 목적을 확실히 해라
‘실리콘밸리 임원들이 회의하는 법’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내가 어느 사람에게 왜 이메일을 쓰는지, 대화하는지, 회의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정하도록 한다.
업무와 관련된 의사소통에서는 크게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의 목적으로 나눌 수 있다. Inspire (영감을 주다), Inform (정보를 전달하다), Inquire (정보를 요구하다), Decide (결정을 내리다). 각각의 목적들에 맞게 어조나 몸짓, 그리고 태도를 결정하고 조절하면 상대방도 이에 맞추어 반응할 것이다.
2. 나의 입장을 정립하는 습관을 지녀라
미국에서는 의제를 제시하거나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 개개인의 의견을 무척 중시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관점을 정립하여 표현할 필요가 있다.
토론 문화가 발달한 곳에서는 처음 토론을 시작했을 때 제시된 의견들과 토론을 마칠 때 결정된 의견이 상이하게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정답문화’에 익숙한 많은 한국인은 다른 것 = 틀린 것 이라고 생각하고 대세에 따르거나 혹은 조용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엔 조금 불편하더라도 의견이 다르든, 설령 틀리든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논리들을 남들에게 설명한다면 상대방과 더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3. 메시지를 최대한 단순화 시켜라
내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지나친 미사여구의 사용이다. 특히 업무와 관련해서는 단순한 어휘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것을 ‘caveman talk’라고도 하는데, 원시인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말하자는 뜻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프로젝트 진행 상태: 좋다 vs. 나쁘다
- 목표 대비 실적: 초과 달성 vs. 달성 vs. 미달
- 신사업 잠재력: 크다 vs. 작다
4. 무조건 두괄식이다. 무조건.
귀납법적 논리와 미괄식 산문으로 훈련받은 사람으로서 연역 논증을 바탕으로 한 두괄식 표현은 익숙해지기 너무 어려웠다. 거두절미하고 나의 주장을 강하게 날리는 두괄식 표현은 심지어 조금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두서없이 뭐라는 거야?’)
하지만 두괄식 표현은 직장에서 효과적인 의사소통하는데 핵심이다. 우선, 많은 사람은 최종 결론을 알고 싶어 하지 내가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 큰 관심이 없다. 행여 관심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구구절절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없다.
또한, 두괄식 표현을 통해 논지의 핵심을 초반에 확고히 함으로써 용두사미 식의 시시한 결론을 방지할 수 있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그 이유는 바로 A, B, C 때문이지’ 같이 두괄식으로 대화나 발표를 진행한다면 첫 문장부터 상대방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5. 미리 이해 당사자들의 암묵적인 동의를 받아라
컨설팅을 하면서, 그리고 고위 간부회의에 참여하게 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면 ‘이해 당사자들과의 관계’가 발표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발표자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열심히 준비한 내용을 마술쇼처럼 ‘짜잔~’하고 멋지게 발표하고 관객들이 ‘우와~’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상상한다. 하지만 실상은 보기 좋게 ‘깨져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해 당사자들과의 관계 부재에서 일어난 일이다.
특히, 민감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의사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최종 의견을 제시하기 훨씬 전 의견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부터 이해 당사자들을 끌어들여 큰 방향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또 그들의 피드백들을 살펴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해 당사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과, 아무런 창의성 없이 그들의 원하는 대로 결과물을 제공하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의사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수려한 언변과 완벽한 버터 발음을 가진다는 것이 아니다. 깔끔한 논리와 이해하기 쉬운 구조, 그리고 이해 당사자들과의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기는 결과물이다. 영어 못한다고, 또 발음 안 좋다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의사소통을 하도록 하자.
출처: Andrew Ahn의 블로그